복통과 명상

중학생 나는 깨닫은 자였나

by 고홋

초등학교 때 나는 자주 배가 아팠다. 아침을 먹지 않은 날도 아픔이 찾아왔다.


학교가 가기 싫어서 그랬을까.

아니, 난 친구들과 잘 지냈다. 수업 시간엔 발표하고 싶다고 1분에 손을 10번이나 넘게 들기도 했다.


어느 날 정말 배가 아팠던 날이 있었다. 전날에 뭘 잘못 먹었는지, 정말 물리적으로 아픈 배였다. 화장실을 참다 참다 겨우 갔었다. 좁고 어두웠던 칸막이는 완전히 내 공간이 되었고, 그곳에서 시간을 얼마나 보냈는지 모르겠다. 거기서 멍 때리고 있었다. 해결해야 할 일은 다 해결한 채로.

거짓말처럼 그때 이후로 때때로 이유 없이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의 내 머릿속은 오늘 학교 가서 배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머리를 얼른 말리고 티셔츠 속에 드라이기를 집어넣었다. 따뜻한 바람이 배에 닿으면 그 생각이 점차 녹아서 빠져나가는 듯했다. 배가 따뜻하면 배탈은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옷에 뜨거운 바람이 닿아서 나는 정체 모를 화학적인 냄새도 모든 아침의 일부가 되었다.


그 초등학교 6학년은 어김없이 배가 아팠고 어떤 날엔 수업 시간에 나가 쉬는 시간에 돌아오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화장실 칸막이는 좀 더 커지고 밝아졌으나 더 이상 편안한 공간이 되어주지 못했다. 회전목마처럼 제자리에서 돌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초등학교 교실과 달리 나의 중학교 1학년 5반은 열차와 같아, 잠시 내리기로 결정하면 부리나케 쫓아가야 했던 곳이었다. 수업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다짐했던 나였다. 누가 달리는 기차에서 내리냐며.


초등학생과 비교하여 성숙해진 사고 회로 덕분일까? 당시 14살이었던 나는 복통이 그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만 구성된 것이며 물리적인 무언가가 내 장을 누르고 탈출하고자 하여 아픈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실제로 내가 참지 못하고 험한 꼴을 보일 상황이라면 정말 화장실에 가고 싶을 것이다.


고통과 실제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분리하고 싶었다. 배가 아픈 건 아픈 것이지만, 그저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이라는 추상적인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복통에 의해서 지구가 자전을 멈춘다거나 내가 참지 못하고 테러를 저지르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몸이 출처인 원인에 의한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를 몸의 작용과 완전히 분리할 수 있었다.


어차피 원인이 있는 복통인 경우에는 바로바로 화장실 달려가기 바빴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참지 않고.


내가 지금 복통을 겪는 것도 몸이 보내는 신호일뿐 사회적/육체적으로 가해지는 변화가 없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방법이었다. 정말 스트레스에 의한 복통이었는지, 이 방법을 적용한 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를 삶의 모든 방향에 적용해서 초월적인 힘을 유도할 수 있으면 참 좋겠으나 당장은 한 번에 침대에 일어나는 것도 힘든 지금이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라고 생각해서 아픔이 사라졌다. 명상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와 분리하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 경험을 복기해 보는 이유도 명상에 대해서 알아보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생각이 나서 재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고통을 나와 분리하고 관찰하며 효과를 본 경험 말이다.


현자였던 것일까?

그날도 어김없이 수업 진도 따라가느라 명상하느라 고생이 참 많았던 1학년 5반 뒷자리의 한 학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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