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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유 Jun 02. 2023

추억과 현재

토막 에세이-일상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이마트 24 편의점에서는 트럭이 적재해 온 물건들의 톤수를 재주고 돈을 받는 ‘계량’ 일을 같이한다. 물건들은 다양하고, 적재된 물건을 실으러 오는 분들 또한 다양하다. 어떨 땐 배추, 어떨 땐 폐콘, 어떨 땐 폐아스콘, 어떨 땐 맥주병이나 소주병을 재주기도 한다. 근수를 달아주는 것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해주기에, 다행히도 내가 할 것은 시간을 정확히 체크하고 전표를 발행하는 것 정도밖에 없다. 한 번에 차량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아무튼.

늘상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편의점 일과 계량 일을 병행하던 나의 눈에 뜨이는 손님이 있었는데, 바로 거래처명이 ‘강남구청 도로관리’로 되어있는 한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늘 깔끔한 검정 맨투맨을 입으며, 알이 동그란 안경을 썼다. 깔끔한 옷차림에서 보이는 성격답게 머리카락도 늘 흐트러짐이 없으며 말수는 적지만 쾌활하다. 아저씨는 뚫어져라 전표를 확인하곤, 늘 빠르게 편의점 문을 열고 바삐 나가곤 한다.

나는, 이상하게 그에게 친근감을 느껴, 편의점에 세 번째 그가 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을 무렵, 그에게 말을 걸었다.


"강남구청 도로관리면... 여기서부터 정말 강남까지 쭉 가는 건가요?"


아무도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는지, 아저씨는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뗐다.


"네. 강남까지 쭉 가요. 물건 싣고, 여기서 강남까지."


"... 정말인가요?"


"네, 강남에 가요. 한복판에 내려서 물건을 나르죠."


말을 마치고 다시금 서둘러 나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지금은 잠실새내역으로 이름이 바뀐, 신천역 3번 출구 가까이에 산 적이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곳에서 살 수 있었다는 게 돌아보면 참 행복이었다.


당시 늘 바빴던 엄마의 일로 인해 몇 번 안 되는 추억이지만, 집 앞을 나가 3분만 걸으면, 상설시장인 새마을 시장이 있어 엄마 손을 잡고 행복하게 시장 구경을 하며 엄마와 함께 '오렌지 분식'에 들어가 뜨끈하고 양 많은 모듬 떡볶이를 입 안 가득 넣곤 했다.

앞다투어 줄지어 유명 닭강정 집에서 닭강정을 사 가는 손님들의 모습도 진풍경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내가 살던 집 근처의 5분 거리 내엔 없는 게 없었다. 이쪽으로 눈을 돌리면 편의점이 3개나 있고.

전철을 타도 한쪽은 삼성역 코엑스, 다른 쪽은 롯데월드로 가니 어린 나는 마냥 즐거웠을 수밖에.

일이 생겨 지금 내가 사는 곳, 경기도 여주로 이사를 왔지만 나는 늘 그곳이 그립다. 여러 번 이사를 다녀 잠깐 스쳐 갔던 곳이라 해도, 늘 바빴던 엄마와 시장을 구경했던, 생각할수록 아득하고 몽글몽글한. 따스하고 소중한, 중요한 기억들은 전부 그곳에 남아 있으니.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내 안에 남아있다 못해 내게 스며들어버린, 잔존하는 반짝거리는 추억들을 찾아내고, 밤이 찾아오면 가끔 마음속에 은은한 등잔불을 켜고선 그 추억들을 잔잔하게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그런 것.

추억들을 다시 겪을 순 없지만, 그것은 내게 남아 고스란히 나의 일부가 되어 나의 '현재'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나는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시간이 흐르면 현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 될 테고, 지금 내가 알 수 없는 나의 미래는 나의 '현재'가 되어, 또 그때의 나를 빛낼 테니.

계속해서 흐르는 시간과 몇 번의 계절, 바뀌어버리는 것들, 그리고 수많은 추억들 속에서 내가 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오늘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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