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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Feb 08. 2022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력을 발휘하기

글쓴느 플로리스트 일곱 번째 이야기

따르르르릉


  가게 오픈 1일차. 전화벨이 울린다. 벌써부터 예약 문의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든다.

  마케팅 업체다. 실망감도 잠시, 사탕발림 가득한 설명을 듣다보면 쉽게 전화가 끊어지질 않는다. 얼마를 내면 얼마의 기간 동안 이런 노출이 가능하게 해드린다. 이런 성과를 낸 적이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멍청한 선택이다. 아마 그분들 입장에서는 익숙한 루틴의 일상적인 업무겠지만, 처음엔 그런 전화가 올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 흔들렸다.


나만, 뒤처지게 되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으로 움직인다.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은 아니지만 분명히 그렇게 배웠다. 그리고 그 경쟁은 실전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유경쟁이잖아! 열심히 해, 너도 할 수 있어!' 같은 응원의 순간은 사실 별로 없다. 얼굴도 정체도 모를 목소리가 내 귀에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러다가 너만 탈락한다고.


첫 번째 지옥, 네이버 플레이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같은 드라마틱한 살육은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초보 사장이 알게 된 실제 경쟁에 비하면 조금 우스꽝스럽다. 현실은 훨씬 세련되고 음험하게 나를 압박한다. 이젠 자영업자들의 목숨줄이 되어버린 네이버 플레이스가 대표적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여의도 꽃집'을 검색해본다. 가게를 열었을 때는 4페이지에 있던 우리 가게 이름이 이제 1페이지에 노출된다. 처음에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 뿌듯했다가 1페이지에 노출되는 다섯 개의 가게 중 순위가 왔다갔다 하는 걸 보고있으면 금세 초조해진다. 4등이었다가 5등이 되면 곧 나락으로 다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여기 내 가게가 있다!!! 매일 눈뜨자마자 내 가게가 네이버에 잘 있나 검색해본다
나만, 예민한 걸까?


외로우니까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경쟁은 계속 외로움을 부추긴다. 나만. 나만. 나만. 

  나만 못하고 나만 안 하는 것 같은 감각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여의도의 다른 꽃집들을 네이버에서 눌러본다. 블로그 리뷰가 엄청나게 많은 곳도 있고 영수증 리뷰가 하루에도 여러 개씩 올라와 칭찬 일색인 곳들도 있다. 물론 자유 시장에서 마케팅을 어떻게 하느냐는 개인의 마음이다. 영수증 리뷰가 휑한 우리 매장의 네이버 플레이스 페이지를 보고 있으면 엄청나게 불안해진다. 


  자유시장경제라는 것은 결코 실력있는 자의 승리를 곧장 담보해주지 않는다. 실력을 기르고 나면 그 실력을 펼칠 방법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 그것은 실력 자체에 투자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더 불확실하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사실 지금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원칙을 가지고 마케팅 업체의 제안들을 모두 거절하고 손님분들께 일일이 영수증 리뷰를 부탁드리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아직은 가게를 연 지 얼마되지 않아, 그저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내 실력'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런 낭중지추의 일이 자연스레 일어날 거라는 기대감이 남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한 날에는 그런 기다림마저 '게으름'으로 느껴진다.

예쁜 사진을 찍어야한다는 스트레스가 이렇게나 클 줄은 미처 몰랐다...



두 번째 지옥,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은 더욱 더 세련된 지옥문이다. 세상 모두가 행복하니 너도 행복을 전시해- 라는 인스타그램의 로직은 나같은 개인사업자에겐 더욱 날카롭게 적용된다. 세상엔 꽃집이 정말 많고 인스타그램에는 예쁜 꽃집이 너무나 많다. 모두가 나보다 팔로워가 많고 모두가 좋아요를 나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 그렇지 않은 계정들, 나처럼 이제 시작해 아둥바둥 성장 중인 계정들은 어느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성공해보이는 계정만이 무의식 깊은 곳에 계속해 노출된다. 

  어느 날인가 인스타그램을 혼자 공부하던 짝꿍이 어떤 꽃집의 좋아요 현황을 보여주었다.(짝꿍은 무엇이든 공부해보는 모범생 스타일이다.) 알 수 없는 외국계정들이 많았다. 소위 '인스타 마케팅'업체의 작품이었다. 나만 안 하는 걸까. 

나도, 해야하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나는 자본주의에 항복한 셈이다. 퉁명스럽게 끊었던 마케팅 업체의 전화를 이제는 내가 찾아보기 시작한다. 더는 외롭기 싫어 나도 인스타그램 마케팅 업체의 도움을 받아보았다. 몇 달 간 작은 매출의 상당부분을 마케팅 업체가 왕창 떼어갔다. 사실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매달 계약 갱신일이 다가오면, 혹시나 그동안 마케팅 업체가 있어서 이만큼이라도 매출이 나온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연장을 선택했다. 


  그러다 지난 달 그만두었다.

  그냥, 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업체에서는 웬일인지 사정사정하며 연장하자고 했지만 다음에 뵙겠다고 정중히 인사했다. 


  내 외로움, 내 불안감은 그냥 내가 마주하기로 했다. 좋은 업체를 만나 좋은 성과를 거둔 많은 사장님들이 계실 것이다. 그 노력을 비판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도 언젠가 다시 그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의 나는 그저 내 외로움과 내 불안이 내 실력을 향상시키는 자양분이라는 기초적인 사실을 힘들지만 받아들여보기로 한다. 모든 글은 성공한 사람들의 글이다. 언젠가 내가 '성공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때 지금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내 용기를 칭찬할지 어리석은 치기를 비웃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성공하지 않은 지금의 내 마음이 조금 틀렸을지라도 중요할 거라 믿는다. 가장 깨끗해보이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도 그것일테다. 


  오늘도 작은 매장 안에서 세계와 연결된 마케팅 세계에 외롭고 슬프고 힘들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모든 사장님들께- 작은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줄줄이 줄줄이 잘 풀리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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