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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Feb 09. 2022

아이를 낳고 인생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글쓰는 플로리스트 여덟 번째 이야기

나쁜 엄마의 좋은 삶


  내 인생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인생을 위해 그를 사랑하는 걸 멈춘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니, 떨어져있는 지금 이 시간조차 감당하기 힘들다. 글을 쓰기 전부터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새벽 5시, 출근 준비를 하다 자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배게보다도 작던 아이가 길고 길어져 어느덧 침대를 제법 차지한다. 갓 여섯 살이 된 볼따구 특유의 보들보들함을 어루만지고 있으면 다시 침대에 눕고 싶어진다. 옆에 몸을 붙여 꼬옥 안고 입냄새를 맡고 싶다. 작고 단단한 궁둥이를 토닥이고 발이 얼마나 컸나 손에 올려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쾅 

  아들과 엄마를 한 공간에 담아두던 문이 닫힌다. 문을 닫고 돌아서면, 역시나 나쁜 엄마가 된 것만 같다. 아니 그 전에- 벌써 너무 보고싶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꽃시장으로 가야한다. 나쁜 엄마도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갈 자격과 의무가 있다.


  아들을 가진 건 결혼 직전이었다. 결혼 약속을 하고 웨딩촬영을 할 무렵, 아이가 생겼다. 물론 계획에 있던 건 아니었다. 그 소식을 처음 알던 날, 짝꿍은 먼 거리에서 출장 중이었는데 일을 마치고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내 의사를 물어보았고- 나는 당연히 낳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내 인생 가장 잘한 선택이자 내 인생 가장 무거운 선택이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나에게는 당연한 결정이었지만 그 결정이 내 인생의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지는 미처 몰랐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왜 그걸 아무도 미리 알려주지 않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물론 다 알았더라도 낳았겠지만,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텐데 말이다.

  아이를 낳고보니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육아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다정하고 침착하게 엄청난 체력을 유지하며 밤새 신경써줘야 하는 존재를 사랑하지만, 나는 그 사랑에 능력있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 에너지 넘치는 엄마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아쉽게도 나는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으면 꿈틀꿈틀 내 처지에 대한 비관이 올라오는 그런 종류의 엄마였다. 


  아이를 사랑할수록 내 인생의 에너지는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짝꿍은 육아에 잘 맞는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체력도 좋았다. 육아의 상당부분을 짝꿍이 도맡았음에도 내 갑갑함은 쉬 해결되지 않았다. 짝꿍에게 쏟아내는 짜증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심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든 게 짝꿍 탓 같았다. 그런 모진 말들을 너무 자주 쏟아냈다. 지금도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 짝궁은 마음 깊이 털어놓지 않는다. 그저 그런 시간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이가 울어도 기차는 간다


  결국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원에 복학했다. 원예생명공학 석사가 되기 위해선 세 학기와 석사논문이 남아있었다. 함께 입학한 동기들은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는 아이를 낳느라 뒤처졌다는 생각조차 서러웠다. 새롭게 사귄 학기의 후배들과 좋은 인연을 만들어나갔지만, 그땐 그런 당연한 '전망'을 할 능력도 없었다. 모든 것에 비관적이었다. 동기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집에서 아이를 보던 짝꿍의 전화만 몇 통 와도 내 인생의 어떤 걸 빼앗기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이따금 여행도 하고 아이와 둘도 없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 나는 내 인생을 향해 매진했다. 석사 논문을 쓰는 주말이면 내 신경에 거슬릴까봐 짝꿍은 아이를 데리고 집밖으로 나갔다. 근처에 여의도 공원과 한강이 없었다면- 아마 짝꿍도 한계에 부딪혔을지 모른다.


  모진 엄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석사 학위를 따내고 다시 화훼장식기사를 1년 간 준비해 합격하고 창업을 준비하고 창업을 해내는 시간동안,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한 살이 다섯 살이 되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갓난아이와의 시간이, 빵긋빵긋 웃거나 엉엉 울거나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존재와의 시간이 지금에서야 사무치게 그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도 자랐고 나도 자랐다. 그것이면 됐다.


인간은 생각보다 튼튼한 존재야

  짝꿍은 이따금 나의 무심함을 타박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이의 튼튼함을 믿으라고 말해준다. 아이는 작지만 작은 존재가 아니다. 아빠와 시간을 잘 보내고 있으니 제 나름대로 적응하고 성장해 나갈 어엿한 인간일 것이다. 걱정하지 말자. - 라고 해놓고 본인은 돌아서서 끙끙대고 있다-


이제는 가끔 배송도 함께가는 우리 가게의 소중한 동료가 된, 사랑하는 아들

  



  여전히 나는 무심한 엄마다. 매장을 연 지 1년이 안된 지금도 하루하루가 버겁다.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밥을 지어준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단 둘이 데이트를 간 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들에게 엄마가 다정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간에 내 인생과의 거친 사투를 벌이는 게 맞는 일일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사실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다. 짝꿍을 믿고 아이를 믿고 - 그리고 엄마 인생이 행복해야 아이의 인생이 행복하다는 상투적인 말을 믿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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