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플로리스트 아홉 번째 이야기
개업 후 처음 맞이하는 발렌타인데이, 요즘 세상에 누가 발렌타인데이를 챙겨-! 라는 나의 방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문이 쏟아졌다. 모두 하루 이틀 전에만 더 챙겨주셨어도 좋았을텐데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꽃다발을 만들다보니 목요일이 된 지금에서야 조금 정신이 든다.
사람들은 이렇게나 꽃을 많이 산다. 그런데 사실 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1년에 한 두 번 사는 게 평균적일 거라 꽃집을 잘 고르거나 나아가 꽃집에서 꽃을 잘 사는 법을 고민할 일은 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꽃을 잘 사는 법만이 아니라 꽃집을 이용하는 매너, 꽃집을 이용하는 꿀팁 같은 걸 공유해보기로 한다. 사실 꽃을 공부한 시간은 오래됐지만 이제 매장 2년차 초보사장의 생각이고, 다른 매장이나 업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모두 아는 건 아니라는 점 꼭 양해 부탁드린다.
꽃다발의 가격은 얼마가 적절할까. 가성비 가장 좋은 가격대는 무엇일까. 주문주시는 많은 분들의 첫 번째 고민이다. 혹시나 너무 비싸게 사는 건 아닐까-? 아니, 그러다가 혹시 너무 없어보이진 않을까-?
사실 가격이라는 건 워낙 민감하고도 어려운 문제다. 꽃은 일종의 '농수산물'이어서 매일매일 경매시장에서 넘어올 때부터 가격이 새로 매겨진다. 매일 꽃 도매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지만 그때그때 가격이 다르니 우선 '정찰제'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시즌이 되면 카네이션 가격은 엄청나게 치솟다가 시즌이 끝나면 카네이션은 '싼 꽃'의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나의 경우에는 거의 매일 꽃시장에 가는 편이다.(수요예측 바보사장...재고관리 실패사장....) 그래서 구해온 꽃들의 가격을 거의 정확하게 알고 있고 해당 상품 디자인에 들어가는 노임 등을 늘 일정한 계수로 곱해 가격을 정한다. 그런 식으로 꽃다발 가격을 최종적으로 정하는 건 각 꽃집 나름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이건 좀 더 돈을 벌고 싶은 꽃집 사장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제품의 완성도만을 놓고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예전부터 유지되어온 소위 '소형꽃다발 3만원'짜리를 필요에 의해 찾으실 수도 있겠지만, 만약 중요한 자리에 선물로 드리거나 사진을 잘 찍기 위한 용도로 찾으신다면 해당 꽃집의 중형다발 가격대를 물어보고 1~2만원 추가 구성을 부탁드리는 걸 추천드린다. 소형은 어딘가 '디자인'이라고 할 요소가 개입하기가 힘들다. 한편 흔히 판매되는 중형사이즈는 생각보다 꽃과 소재를 다양하게 넣기가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그정도 사이즈(중형+a)가 됐을 때, 가격대비 꽃의 종류나 양- 그리고 무엇보다 디자인적인 완성도가 가장 높아지는 것 같다. 꽃집 사장 입장에서 조금 더 큰 주문이니 내심 더 신경쓰일 수도 있고 말이다.
꽃은 미리 사는 게 가장 좋다. 무조건 예약이 최고다.
꽃시장은 통상 양재와 고속터미널(서울 기준)으로 열리는데, 월-수-금이 새 꽃이 들어오는 날이다. 그리고 화요일은 수입 꽃이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월화수금을...매일...) 방문하는 꽃집이 성실하게 꽃을 데려오는 곳이라는 전제를 하고 본다면, 해당 요일에 그 매장에 가서 당일 들어온 꽃을 사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약이 더 좋은 이유는, 미리 예약을 하면 거기에 맞는 꽃을 꽃집 사장이 가장 신선한 날에 데려올 수 있다는 데 있다. 본인이 원하는 꽃을 안성맞춤으로 만들고 싶다면- 꼭 3일 전 예약하시는 걸 추천드린다.
우리 매장 기준으로 본다면, 원하는 디자인을 정하고 거기에 들어갈 꽃을 구하기 위해서는 두 번의 꽃시장 방문이 가장 좋다고 계산한다(예를 들면 월요일 국산꽃, 화요일 수입꽃). 시장에 갔다가 손님이 원하시는 꽃이 없어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두 번의 기회가 있으면 안심하고 제작할 수 있다. 그러니 손님 입장에서, 본인이 원하는 꽃을 예쁘게 지정해 만들고 싶으다면 최소 3일 전에는 매장에 예약을 주시는 게 좋다는 말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를 새벽 꽃시장으로 또 내모는 글을 스스로 쓰고 있는 것 같지만....그래도 시장에서 내 눈에 예뻐보이는 꽃들을 왕창 사오는 것보다야 예약된 꽃들을 사는 편이 꽃집 입장에서도 훨씬 낫다. 예약은 윈윈이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나는 꽃이 조금만 시들면 모두 잘라버린다. 이렇게 쓰고보니 너무 생명을 경시하는..그런 사람이 된 것도 같지만, 기성품이 아니라는 핑계로 꽃의 소매가격은 비싼 편이기에 그만큼 품질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꽃 선물은 대부분 매장에서 픽업하는 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실제 주인공에게 전달될 때가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나치게 얼굴이 크고 활짝 피어있는 꽃을 재고처리하듯 꽂는 걸 피하려 한다. '활짝 핀' 꽃은 상품 제작 후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에는 예쁠지 모르지만 사실 '곧 질 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활짝 핀 꽃이라고 다 금방 지는 것은 아니다. 꽃의 종류에 따라 오래가는 꽃들이 따로 있다. 이런 걸 슬쩍 꽃가게 사장님께 물어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손님 분들 중에는 나의 애정하는 장미들을 보고 '이건 얼굴이 너무 폈네'라고 핀잔주며 거들떠 보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는데 T.T 그 장미...오래 가는 장미입니다.
그리고 요즘처럼 대낮에도 한파가 몰아치는 날에는, 꽃을 들고 이동할 때 엄청난 주의가 필요하다. 꽃은 보기에만 멀쩡(?)해보이지 사실 그 안이 물로 가득찬 존재라 한파에서 조금만 바람을 쐬다보면 꽁꽁 얼어버린다. 꽁꽁 언 꽃은...다시 살릴 수가 없다. 매장에서 나가는 상품들 모두 비닐포장을 해드리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나조차도 까먹을 때가 있으니 필요에 따라 매장에 먼저 요구하는 것도 좋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꽃 얼굴이 다치지 않게 꼭 습자지 등으로 추가 포장을 요구하셔야 한다.
화무십일홍...이랬던가. 아쉽게도 절화(자른 꽃)은 오래 살 수 있는 생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는 방법들은 있다. 여의도꽃집 포레스트윌로우에서는...정성들여 만든 고급 케어카드를 무상으로 드리고 있으니 그걸 참고하셔도 좋겠다(T.T) 꽃을 보존하는 방법과 함께 지금까지의 글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0) 중요한 꽃다발이라면, 원하는 디자인을 최대한 요구하기 위해 최소 3일 전에 예약해주세요.
0-1) 예산이 허락한다면, 해당 꽃집에서 판매하는 중형 사이즈의 사진와 가격 안내를 받고 +1만원 정도를 추가해 주문해주세요.
1) 다시 한 번 강조, 들고갈 때 기온이나 충격에 유의해주세요. 이동거리가 제법 되시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신다면 꼭 꽃집에 비닐포장 혹은 습자지 포장으로 꽃 얼굴을 보호해달라고 하세요.
2) 들고간 꽃, 혹은 선물로 받은 꽃은 집에 들고오자마자 풀어주세요. 화병을 깨끗이 씻고 절화보존제가 있다면 물과 함께 넣어 화병을 준비해주세요.
3) 꽃의 줄기 맨 끝부분을 사선으로 1cm 정도 잘라줍니다. 꽃이 물을 빨아들이는 수관이 막히지 않도록 하는 거에요-
4)에서 아주 귀찮다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으실텐데, 사실 꽃은 싼 상품이 아니고- 선물주신 분의 정성, 그리고 꽃을 매일 보았을 때의 효용가치를 생각하신다면 꼭 그렇게 해보시길 추천드린다. 생각보다 아주아주 오래 향기와 함께 보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일단 네 개를 써놓고 보니 업계의 비밀을 폭로한 건 없나 걱정되기도 하지만...내가 사랑하는 꽃이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