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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Feb 22. 2022

다시 뉴질랜드에 갈 수 있을까

글쓰는 플로리스트 열 번째 이야기

  내가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미처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여행가기가 이렇게 힘들어질 줄은 몰랐다. 내가 꽃집을 열기 전까지, 그러니까 코로나19가 덮치기 전까지 여행은 참 쉬웠다. 짝꿍은 일의 많고 적음이 명확한 편이라,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남들이 여행가기 힘든 시즌에도 길게 여행을 다녔다. 아이를 낳고는 여행이 조금 쉽지 않아졌지만 그 과정이 지난했을 뿐 참 쉽게쉽게 떠났다. 


  꽃집의 자영업자가 된 지금의 내게 여행은, 탈옥이다. 창살없는 감옥에서 잠시 도망칠 순 있다. 사실 전적으로 내 마음이다. 하지만 모든 탈옥처럼(해본 적 없지만...) 곧 돌아와야 한다. 월세가 나를 붙잡을지니. 그리고 떠난 시간 만큼의 가중처벌, 그러니까 문을 닫은 기간의 매출 손해를 감내하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침대에 누울 때마다 잠꼬대처럼 말한다.


여행가고 싶어...

  결혼하기 전 짝꿍과 뉴질랜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약 3주간에 걸쳐 큰 맘 먹고 20대의 남녀가 새로운 대륙으로 떠났을 때, 그때 우린 정말 즐거웠다. 물론 짝꿍은 5000km 넘게 주행하며 입술도 부르트고 살도 쪽 빠져버렸지만, 전혀 다른 세계로 간다는 게 그렇게 신나는 일인지 우리 둘 다 처음 알았다. 당시엔 국내에 정보도 별로 없던 트래킹(루트번 트래킹)이라는 것도 도전했었다. 북한산 한 번 올라가본 적 없는 나를 데리고 꼬박 2박3일동안 산 속을 걷는 일정이었는데, 홈페이지의 사진만 보고는 짝꿍도 나도 만만하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진이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웬걸....하루 종일 걷다보니 해발 2000m의 만년설 속을 걷고 있었다. 이건 좀 과분하게 추운 아름다움이었다. 먹을 것도 옷가지도 부족하게 챙겨갔고 나는 산장에서 오들오들 떨며 짝꿍의 침낭까지 뒤집어 쓰고 겨우 잠에 들었다. 짝꿍은 사흘 내내 내 짐을 짊어지고 만년설 속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여행 내내 끊고 있었는데, 그 만년설을 배경으로 담배를 피우는 할머니 두 분을 보더니 대뜸 가서 한 대 빌려 피고 왔다. 그날의 그 맛을 지금도 이야기하곤 한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산을 내려오며 마주한 경이로운 풍경들, 우리나라에 살며 상상도 해본 적 없던 반지의 제왕 속 바로 그 모습들. 그리고 그 속에서 숨쉬는 것만으로도 요정이 된 것 같은 기분은 지금도 눈감으면 그대로 떠올릴 수 있다. 손주를 데리고 트래킹을 하는 길쭉한 유럽인들을 보며,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뉴질랜드 트래킹만 8개째 하고 있다는 유일한 동양인, 중국 대학생 두 사람과 콩글리시로 대화하며 도전하는 삶이 참 멋있다고 이야기했다.


  뉴질랜드의 가장 강렬한 경험 중 하나는 역시 번지점프였다. 퀸스타운 인근의 유명한 카와라우 번지점프에 도전했다. 짝꿍은 회전목마만 타도 어지러워하는 사람이었지만 한 번만 눈 감으면 되니까 해보자고 내가 꼬셨다. 나는 워낙 놀이기구에는 자신있는 사람이라 번지점프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뛰어내리는 순간 깨달았다. 

  아 이느낌...

  아 이거였어 맞아....

  이건 아니야....

  이건 싫어... 

  아직도 안 끝났어...

  아..


  저점에 도달했을 때 다시 줄이 나를 높은 곳까지 끌어당겼다. 두 번째 추락이 시작됐다. 아아...또야..


  온몸이 경직된 채로 구출된 짝꿍과 함께 계단을 기어올라 사무실로 가자 기념사진을 판매하고 있었다. 노란머리 흰 피부의 외국인들은 그 와중에도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데, 나와 짝꿍만 고문당하는 사람처럼 몸이 이상하게 뒤틀려있고 얼굴은 가진 근육을 모두 모아 찡그리고 있었다. 거기까지 가서 사진 한장 못 건졌다.


  괜히 했어 괜히 했어. 짝꿍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다리가 후들거려 운전도 못하겠다고 했다. 나도 한동안 심장이 쿵쾅댔다. 그런데 그렇게 괜히 뛴 그날의 한 걸음이 지금은 사무치게 그립다. 한 번만 더 뛰어내리고 싶다. 우리나라의 펜션 숙박비를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게 싸고 멋졌던 여러 숙소들, 저녁 6시면 모두 문을 닫고 사위가 조용해지던 마을의 풍경들, 테카포 호수의 일몰과 은하수, 글레노키 호수에서 젓던 카약의 노, 하루 종일 풀을 뜯는 양들의 엉덩이를 하루종일 지나치며 달렸던 도로의 풍경들.


  태양도 하늘도 풀도 동물도 사람도.

  모든 존재가 삶에 자신있어 보이던 그 풍경들이 그립다. 그곳에서 나도 조금은, 자신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이제 다시 만나기 이렇게 어려워질 줄 미처 몰랐다. 아들을 낳고 꼭 다시 한 번 셋이서 뉴질랜드에 가보자고 짝꿍과 약속했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시작됐고 그러다 꽃집 사장이 되었다. 틈만 나면 나랑 놀자고 보채는 남편과 아들에게 다정한 웃음 한번 지어주기 힘든 지금, 뉴질랜드를 꿈꾼다는 게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꼭 한 번만 더. 뉴질랜드 하늘 아래 그저 자연에 흐드러진 꽃들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번만 더 누워보고 싶다. 그런 꿈을 안고 오늘도 가게 문을 연다. 창살없는 감옥에 갇힌 수많은 빌딩의 수많은 동지들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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