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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Feb 22. 2022

배송을 하며 알게된 세상

글쓰는 플로리스트 열한 번째 이야기

  꽃집은 일이 참 많다. 꽃만 사와서 만들어 팔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힘에 부치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중 가장 벅찬 일은 다름 아닌 배송이다.


  코로나19 언택트 시대, 배송은 시대정신이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꽃은 배달 수요가 많다. 여의도 지역은 특히나 빌딩숲 속 직장이 많아 구석구석 배송요청이 온다. 오토바이 퀵을 잡을 수 있다면 배송 걱정은 아무래도 덜하겠지만 꽃을 오토바이에 실어 보낸다는 게 나는 영 마음에 걸린다.


  배송을 위해 여물게 포장하고 꽃다발을 들고 가게 문을 열자마자 바람이라도 휭 불면 마음이 덜컹한다. 물론 꽃들이 잘 버텨주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꽃다발을 품에 꼬옥 안고 종종걸음을 내딛는다. 그래서 차량배송을 신청하곤 하는데 이게 참 잡기가 쉽지 않다. 퇴근시간 강남배송은 모두 기피한다. 배송시각 직전에 배정이 취소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닫고 혼자서 배송길에 나선다.


  택배며 우편물이며 배송을 받아보기만 했지 날라보긴 처음이었다. 입장바꿔 생각해본 건 처음이랄까. 특히 내가 쇼핑을 하러 가곤 했던 큰 빌딩으로 배송을 가면 남다른 대우에 놀라곤 한다. 물론 건물 자체의 지침에 따라 그저 안내하는 것일 뿐이겠지만, 소비자였을 때가 왕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어떤 건물도 배송기사를 환대하지는 않는다. 조금 덜 퉁명스러운 응대가 있을 뿐.


  신분증을 내고 출입증을 받아 들어가는 거야 코로나19시대에 안전과 보안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전화번호도 적어준다. 꽃을 배달하기 위해 이정도 개인정보 유출이야 감내해야겠지. 그런데 처음으로 화물엘리베이터를 안내받았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멀쩡한 엘리베이터들이 저렇게 복도에 많이 있는데, 굳이 돌고 돌아 화물엘리베이터에 탑승해야 한다. 이런 엘리베이터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게 배송기사들을 위한 배려인지 배제인 건지는 사실 의문이다. 화물엘리베이터는 몇 개 되지도 않고 굉-장-히- 느리다.


  겨우 화물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을 때, 그 거대한 공간과 어두운 조명은 처음 보는 엘리베이터의 풍경이었다. 나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건 또다른 택배 기사님들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건물 유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사람들 -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각종 기계실을 점검하는 분들, 음식물 쓰레기를 나르는 사람들까지. 그 모든 게 어우러진 독특한 냄새가 묵직한 공기가 돼 엘리베이터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 안에서 꽃다발을 꼬옥 소중하게 안고 있는 나의 모습이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다.


  한번은 주문주신 분이 배달 층수를 잘못 알려주셨다. 내가 받은 출입증은 내가 요구한 층에만 갈 수 있는 것이어서 여의도 꼭대기 어딘가에 내려 한참을 잘못 찾아다니다 다시 로비로 돌아와 다시 올라갔다. 그렇게 30분이 넘게 흘렀다. 그리고 그날, 길가에 정차해둔 내 차를 cctv가 아주 정확하게 찍어 과태료를 물었다. 당연히, 남는 게 하나없는 장사였다.


  물론 모든 건 원칙과 법에 따라 이뤄진 일이니 내가 불평할 여지는 없다. 다만 내가 받는 물건이 어떤 경로를 통해 나에게 도착하는지 알고나면, 조금은 더 그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경로가 조금은 편안해져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우리 매장에 오시는 모든 배송기사님들께, 가능한 친절하게 응대하려 한다. 그렇게 몇 번의 화물엘리베이터를 타고 길가에 정차해둔 차로 전력질주를 해야 한 가정의 생활이 꾸려질까를 생각해보면- 조금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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