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태엽이 풀린 시계처럼 느릿느릿 갔다. 하루에 네 대 뿐인 버스는 드문드문 알이 빠진 옥수수처럼 띄엄띄엄 있었다.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기라도 하는 날은 화가 있는 대로 났다. 그런 날은 뼈가 녹아 사라진 듯 바닥을 딛고 서있기 힘들어서였는지 억울한 마음이 독사처럼 똬리를 틀곤 했다.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던 시절이었다. 한 움큼의 알약을 세끼 밥처럼 넘겨야 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입맛이 없어도 거를 수 없었다. 엄숙하고 경건한 제의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치러내야했다. 그러는동안 한 계절이 가고 또 한 계절이 오고 있었다. 땅밑에서 올라오는 온기에 물감 번지듯 초록이 눈 뜨고 꽃망울은 부푸는데 나는 여전히 무거운 무채색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나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멀리서 바라보면 평화로웠고 가까이서 보면 위태로웠다.
일주일 치 약봉지가 손에 들려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석 달만이었다. 사흘마다 향수를 뿌린 듯 포르말린 냄새가 옷에서 진동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빨았지만 냄새는 없어지지 않았다. 잔향이 아득하게 남아 코끝을 따라다녔다. 담당의사는 일주일 뒤로 진료예약을 잡아두겠다고 했다. 약이 바뀌거나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간격이 늘어났다. 사흘마다 오가던 것을 일주일에 한 번만 가면 되었다. 병원에 덜 들락거릴 수 있게 된다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차트를 적느라 고개를 숙인 담당의사의 입에서는 더 이상 어떤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병원행이 언제쯤 끝나게 될 것이라는 기약은 없었다.
터미널에서 수시로 들고나는 대형버스의 목적지 팻말을 멍하니 들여다보며 우두커니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터미널을 거기에 놓아두고 정하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느릿느릿 걸었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앞으로 한 시간 반 후에 올 것이다.
마침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는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시장통의 전 부치는 기름 냄새며 생선 좌판 비린내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를 따라왔다. 시장골목을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멀미가 올라왔다. 시장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깨질 듯한 두통에 몸을 휘감았다. 주저앉으려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어 전봇대에 등을 기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번개 치듯 날카롭던 통증이 조금 무디어졌다.
건너편에 보이는 도서관 건물로 들어갔다. 출입문에서 최대한 가까운 쪽 의자에 엉덩이를 털썩 내려놓았다. 도서관 안은 책을 정리하느라 움직이는 발소리에 정적이 깨지는가 싶다가도 이내 다시 조용해졌다. 여러 겹의 묵향 같은 냄새가 지그시 내 정수리를 누르는 듯했다. 머리가 점점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제야 서가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책 등을 더듬으며 작가의 이름이나 제목을 훑어가며 눈인사를 건넸다. ‘헤르만 헤세’나 ‘윤동주’ ‘천상병’ 같은 이름과 《여자의 일생》이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책 앞에서는 손끝으로 글자를 따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낯선 이름과 제목들 앞에서는 다음에 꼭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을 했다.
그날 이후 읍내에 유일하던 도서관을 쥐방구리 드나들듯 들락거렸다. 일주일에 한 번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은 도서관 처방전도 필수적으로 발급되었다. 병원에 가지 않는 날도 책 냄새를 찾아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드는 건 당연했다. 이생진 시인의《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함께 덜컹대는 시골버스를 타고 어두컴컴한 산길을 돌아 집으로 오던 날은 하늘에 별도 총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