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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유지향 Apr 16. 2024

어쩌다 장군차

맨땅에 헤딩하듯 장군 차 농사에 발을 들였다. 청개구리 뛰어들 듯 멋모르고 시작했다. 천여 평의 밭에 이년생 차나무 묘목 9천 주를 심었다. 시작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처럼 남편 어깨도 덩달아 한껏 올라갔다. 그는 3년만 기다리면 푸른 차나무밭이 펼쳐지게 될 거라며 큰소리를 쳤다. 초록물결 넘실대는 다원의 안주인이 되면 매일 좋은 사람들을 불러 향긋한 차를 마시며 소담 소담 이야기꽃을 피우리라. 속는 셈 치고 남편을 믿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도는 3월은 아직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오락가락했다. 연둣빛 새순을 펼치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만 삐죽이 서 있는 나무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작고 연약한 존재는 야생의 거친 땅에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속이 빠짝 빠짝 타들어 갔다. 남편을 향한 원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무에 물을 대느라 녹초가 되어 돌아온 사람을 향해 타박을 퍼부었다. 남편은 대꾸할 기력도 없다는 듯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가도 다음날이면 새벽같이 차밭으로 나갔다. 그 무렵 오랜 세월 잘 가꾼 차 농원에서는 첫물차를 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만을 지나면서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이름도 낯선 온갖 잡초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차밭이 풀밭이 되어갔다. 한 뼘 크기의 차나무가 금방이라도 풀에 덮쳐질 듯했다. 남편 혼자서 그들과 씨름하며 여러 날이 지났을 때였다. 멋쩍은 눈빛으로 어린 딸을 내세워 sos를 쳤다.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아빠랑 밭에 갈까?’ 살살 녹는 달콤함을 미끼 삼아 어린 딸을 데리고 차밭으로 갔다. 혼자서 불쑥 저질러놓고 슬쩍 뒷감당을 맡기는 남편이 야속했다.

억지로 끌려 나온 소처럼 멀뚱멀뚱 지켜보고만 있자니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남편은 밉고 못마땅했지만 거친 땅을 더듬거리며 단단하게 뿌리내릴 곳을 찾고 있을 어린 생명을 생각하니 애가 탔다. 다섯 명이 천여 평 밭의 풀을 매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큰 아이들도 아빠에게 이끌려 밭으로 나와야 했다. 작은 벌레 하나에도 질색팔색하며 벌벌 떠는 큰아이는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둘째도 엉덩이를 뒤로 뺐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잡초와의 전쟁에 매달려있던 남편은 아이들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채근에 구불구불한 길을 한 시간여 달려 도착학 곳은 잘 가꿔진 차밭이었다. 빗방울을 매단 찻잎들이 싱그러운 초록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운 좋게 주인장에게 차 대접을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연스레 차 농사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남편은 올해 처음 장군 차 묘목을 심었는데 생존율이 좋지 않아 힘들다는 말을 꺼냈다. 그제야 남편은 차 농사는 나무를 키우는 농사이니 풀과의 전쟁은 수월할 줄 알았다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차 농장 주인은 묘목 식재 후에는 뿌리가 새로운 토양에 적응할 동안 풀도 뽑지 말고 나무를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아차 싶었다. 특히 차나무는 배수가 잘되는 경사지나 구릉에 심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 말에 한 대 더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무식함으로 손발이 괜한 고생을 사서 했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몰려왔다. 옆에 앉아있던 남편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모른 척 딴청을 피웠다.

30년 차 베테랑 선배 농부의 말에 겉으로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려 당장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지경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섣부르게 일을 불쑥 저질러서 온 가족을 힘들게 한 남편을 깨 볶듯 달달 볶아주리라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머쓱한 표정으로 연신 뒷머리를 긁어댔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따발총 쏘듯 쏟아져 나오려던 잔소리를 간신히 꾹꾹 눌러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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