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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유지향 Sep 30. 2024

관절들의 비명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

후퇴는 없다는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한숨만 푹푹 나왔지만 여기서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약이 바싹 올랐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푸른 군대의 전투력에 비하면 확연한 수 적 열세였지만  공격작전을 감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으리라.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펼쳐 나갔다. 그들은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았다. 침입자들의 맹공격에 맞서는 것이 여간 만만치 않았다. 각각의 부대가 그들만의 비밀병기를 가지고 있듯 혈기왕성한 푸른군사들은 그들 나름의 비밀작전이 있는 듯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열흘간의 맹렬했던 전투는 뺏고 빼앗기는 접전의 연속이었다.

팽팽하게 대치하던 방어선이 뚫리고 드디어 푸른 군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진 자리에 가녀린 차나무들이 초록 잎 서너 장을 매달고 우뚝 섰다. 이쯤 되면 저들도 어쩔 수 없을 테지. 머지않아 투항의 깃발을 흔들어 주리라 내심 기대하며 쉼 없이 막바지 반격의 고삐를 바짝 죄어 나갔다.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날씨는 점점 더워져 30도를 오르내리고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른 더위에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내리쬐는 밭에서 새벽부터 어둑해질 때까지 벌이는 사투에 우리 부부의 전투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우후죽순, 파죽지세로 맹공격을 퍼부었다. 땅 밑 곳곳에 빈틈없이 매복해 있던 수천수만의 푸른 군사들은 지치기는커녕 뜨거운 태양빛을 에너지 삼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해왔다.


곳곳에 단단하게 푸른 성벽을 쌓는가 하면 빽빽하게 푸른 그물을 쳤다. 그들의 푸른 성벽 앞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발은 푸른 그물에 꽁꽁 묶여버렸고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어린 나무들은 그들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푸른 감옥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제야 움켜쥐고 놓지 않았던 호미가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스르르 주먹이 펴지며 저절로 무릎이 '탁' 쳐졌다. 주인 잘못 만나 혹사당했던 관절들이 덩달아 비명을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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