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누가 해도 똑같은 캐릭터
자- 선수입장하는 케이퍼 무비
한국 영화를 비꼬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자- 선수입장' ‘도둑들’의 성공 이후 우후죽순 쏟아져나온 각종 케이퍼 무비 (여러명의 기술자가 팀을 꾸려서 보물을 훔치는 이야기)에는 도식화되어 있는 캐릭터들이 있다. 기술자와 조력자, 해커와 정신적 지주, 그리고 시선을 홀리는 팜므파탈과 초짜 신입. 이런 캐릭터 분포를 비단 진부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건 일종의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의 기초와도 같은 구조이기 때문에 석유를 빼돌리든, 보석을 훔치든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대부분 주인공의 역할을 맡게되는 기술자 파트의 캐릭터 성격이 지나치게 고착화 되어있다는 것이다. 점핑 온 더 밴드웨건의 민족 답게 한 번의 성공 이후 쏟아져나오는 카피캣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캐릭터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그 발단이 된 시초는 타짜의 조승우가 보여주는 고니라는 캐릭터인데, 호기와 열정은 있지만 아직 세상물정 보는 시야가 좁은 초짜 시절을 지나 베테랑의 기량을 얻게 된 후 특유의 능글맞음으로 실력자들을 농락해나간다는 이 성장형 기술자 캐릭터의 성공 이후, 수많은 유사 영화에서 주인공이 시련을 통해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럼에도 강력한 적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되는 지에 포커싱하지 않고 이 ‘능글맞음'에 꽂혀 소위 먼치킨 (작품의 세계관에서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주인공) 성향만으로 인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웹소설이나 숏폼 콘텐츠의 부상으로 인해 보는 이가 캐릭터의 성장을 기다려줄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는 하지만, 속도의 문제를 생략의 문제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스토리의 구조 중 1막에는 주인공이 다른 세계로 넘어갈 명분과 사연이 들어오게 된다. 그러니 여러 갈래의 선택지 중에 굳이 이 스토리에 맞는 모험을 떠나야 할 당위가 들어오고, 대다수의 경우가 그 당위를 안고서 캐릭터에 공감과 애정을 가지고 그를 주인공으로 인정하게 된다. 만약 주인공이 아닌 악당의 사연이 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면 그 악당이 주인공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1막의 과정을 거세할 것을 요구하다보니 신입 주인공의 성장이나, 혹은 그 분야에 목을 매게 된 주인공의 사연 대신 곧바로 모든 사건을 능글맞음과 여유로움으로 헤쳐나가는 플롯이 선행하게 되니 캐릭터가 표면화되는 단점을 안게 된다.
그 결과, 천편일률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파이프라인, 도굴, 그 외 나왔던 많은 케이퍼 무비에서 주인공은 어떠한 고민도 없이 어떤 위험리스크도 없이 팀을 꾸리고 악당을 뒤통수 치며 원하는 것을 얻은 뒤에도 아무런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떠난다. 그 모습이 마치 허세 가득한 졸부의 느낌이 들어 관객이 캐릭터에 얹혀 감정을 내어줄 기회가 사라진다. 배우만 같고 캐릭터는 같은 그러니까 서로 상호치환시켜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같은 ‘케이퍼 무비'의 스테레오 타입에 ‘자- 선수입장' 같은 조롱섞인 밈이 만들어져 버렸다.
물론 처음 오프닝에서 관객을 사로잡지 못하면 금세 팔짱을 끼고 관람이 아닌 비평의 시야로 작품을 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장르물일 수록 캐릭터의 내피가 공고해야 이어져 나올 사건의 파도에 함께 몸을 실을 수 있다. 물론 사연을 전시하느라 템포가 늦춰지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겠다. 하지만 사연보다는 당위이고 그 당위란 것이 솔직할 수록 매력과 차별점을 갖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많은 작품들이 주인공이 위험한 모험에 나서는 동기로 돈을 선택한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소위 한탕 거하게 뛰고 탈출하기 위해. 그 동기를 위해 세팅된 사연에는 대부분 아픈 가족이 들어온다. 가족주의에 호소하며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기위한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보장된 설정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도박꾼이 된 고니의 동기가 ‘가족의 돈을 모두 탕진시켜 버려서' 라는 것을 기억해봐야 한다. 그가 기술적 성장을 통해 성공을 한 뒤에도 가족과 대면하지 못하고 고광렬을 대신 보내 빚을 갚게 했는 지도 떠올려봐야 한다. 관성적으로 아픈 가족이 등장하지 않아도 소재와 캐릭터의 결을 선택한 사연이 들어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