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르겠다, 배움을 재촉하는 자각
스스로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생존에 필요한 열정을 잃고 머지않아 소멸된다. -쉼보르스카-
오늘도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책 한 권을 붙잡는다. 오늘의 책은 [메시지가 미디어다], 스마트폰 시대의 사회변동과 메시지 전략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을 보고 '왜'라고 묻는다고 말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며 '왜 안돼?'라고 물었다. 나는 어떤 질문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싶은가. 나는 모르겠다. 이 모른다는 자각이 배움을 재촉한다.
소니아 리빙스턴은 미디어 리터러시란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에 접근해서 분석 평가하며,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결국 그대로 믿지 말고 의심해보라는 것이다.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 맞는 말이다. 의심과 회의가 없다면? 팩트 체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선거가 끝나고 유권자는 가짜 뉴스에 근거해 후보자를 선택할 수도 있는 시대이니까.
인터넷이 극화를 조정하는 이유는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 때문이다. 비슷한 성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것을 믿게 된다. 팔로잉과 팔로워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소셜 미디어가 집단 극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집단 극화의 가능성을 계속 알려주고, 자각하도록 알려주어야 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공공의 책임인가?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서는 소셜 네트워크를 만든 회사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맞춤형 다각화를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한 시대이다.
지식 습득의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 구글 노잉과 네이버 검색창이 일상화 되었다. 하지만 깊이 있는 탐색은 인터넷 다운로드 보다 책 읽기를 재촉한다. 읽기 위해 책을 펴는 나는 어쩔 수 없는 X세대인가. 꼭 그렇다고만 볼 수 없다. 깊이 있는 읽기가 가능한 시스템이라면 얼마든지 인터넷 다운로드를 할 것이다. 하지만, 짧은 뉴스, 짧은 글을 선호하는 시대적 흐름 때문에 긴 글을 다운로드 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