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소재가 어떻게 삶과 철학이 담긴 글이 될까
내가 사는 집에게 ‘친애하는’이란 말을 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이리라. 나의 집에게 나도 친애한다는 말을 쓸 수 있을까. 그런 말을 쓸 수 있으려면 내 인생의 고통을 오롯이 껴안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고통 덕분에 성장했고 삶을 사랑할 수 있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인생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할 수 있겠다.
글쓰기 수업을 하며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는 책을 추천받았다. 집에 대한 기록을 삶과 연결한 수필이라고 한다. 어떤 글이 멋진 에세이가 되는 걸까. 궁금했지만 정작 소개받은 책을 앞에 두고도 마음을 다해 읽어갈 수 없었다.
이제는 1년 이상 지속된 백수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미래에 보탬이 되는 실질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근 관심을 갖게 된 주제 중 하나가 디지털 미디어와 미디어 리터러시이다. 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2020년 독일의 성인교육 조사에서 비롯되었다. ‘디지털화’는 독일이 몇 년간 추진하고 있는 국가 프로젝트이다. 독일이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는 시스템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부문에서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에 가지 않아도 성인교육과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모든 자료 조사가 가능했던 것은 독일이 구현한 디지털화 시스템과 구글이 제공한 번역 툴 때문이었다. 로그인하지 않아도 자료를 다운로드할 수 있었고, 필요한 자료는 모두 디지털화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성인교육 관련 기관 몇 곳만 둘러봐도 모든 자료가 공개된 덕분에 가능했다.
2021년 서울시 도서관 프로젝트의 일부를 맡게 된 것은 내 성향 탓이다. 뭔가 공부를 하면 조금이라도 결과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2020년 잠깐 가졌던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관심을 어떻게 해서든 뭔가 써먹을 수 있는 성과로 만들어 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성취감을 맛보고 싶은 성향 탓에 내 이름을 어둠에서 끌어내 밝혀야겠다고, 제대로 해야 한다고 되뇌고 있었다. 작년 봄 서울시 평생교육 프로젝트에 연구보조원으로 해외자료조사를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다시 서울시라는 이름에 세뇌되고 있었다. 서울시가 하면, 다른 도시가 따라 할지도 모르잖아? 그러니 끝내주게 잘해야만 해. 나를 갈아 넣는 정신노동을 자처하면서 했던 해외조사 자료는 빛을 보지 못했다. 서울시장이 다른 나라로 떠났으므로. 내 열정을 불태웠던 작업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또다시 서울시라는 이름에 압도당하여 나는 서울시 도서관이 독일의 연방정치교육원 못지않게 멋진 디지털 도서관을 열지도 모르잖아? 상상하고 있다. 당분간 글이고 뭐고 다 관두고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책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모두 미디어에 쏠려 지나온 집들에 관한 하재영 작가의 기록이 마음에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그대로 반납하기는 아쉬워 도서관에 가는 길에서라도 읽어보자 했다. 아이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아직 어둠이 내리기 전,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으며 천천히 걸었다. 내가 매일 도서관에 가는 길은 몇 사람이 지나도 거칠 것 없이 넓은 인도를 끼고 있다. 새강마을 용사로, 누구랑 부딪칠 걱정 없이 걸을 수 있기에 신호등을 만날 때만 잠시 책장을 덮으면 되었다.
다른 주제에 마음이 빼앗겨 눈에 들어오지 않던 글이었는데, 어라. 걸으며 읽으니 쏙쏙 한 문장 한 문장이 깊은 사색으로 인도한다. 왜 나만 공간이 없을까, 나도 집에 대해 한 숨 쉴 때가 참 많았는데, 작가가 내 마음을 다 읽어 내린 듯했다. 사소한 주제에 대해서도 깊은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에 좋은 글이라고 칭찬하는가 보다. 짐작이 갔다. 그렇다. 분명 하재영 개인의 공간, 집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도 한 때 집안을 돌아보며 생각했던 공간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의 뒷부분, 20대, 30대 머물렀던 집과 결혼 후 공간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가 공감이 되었다.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하며 가난했기에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집, 아니, 방. 읽을수록 전업작가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있다. 품위는 어쩌면 존엄성 인지도 모른다. 사람으로서의 품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누구나 가지고 싶고, 지키고 싶은 이상. 작가는 어떤 이상을 품은 것일까. 육 개월을 방에서 나가지 않고 글을 썼다는 건 작가로서의 품위 때문이 아니었을까. 월세를 내기 위해 무작정 써야 하는 생계적 작가로서 지켜야 하는 품위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가난한 길을 포기하지 않아 이제 알려진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아직 덜 알려졌나? 어쨌든 그녀가 쟁취해 얻은 일이 있다는게 부럽다. 작가가 아니어서 내 이야기는 생각 속에만 머물다 사라졌지만, 그의 생각은 글이 되었다. 살아있는 생각이 되어 독자도 자신이 살아온 집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글을 읽다 잠깐잠깐 상념에 빠진다.
나 또한 결혼 후 몇 번의 집을 거쳤지만, 온전히 나만의 공간은 없었다. 주방 식탁이 책을 읽고, 뭔가 작업을 하는 공간이라, 딸이 말한다. 엄마, 이게 식탁이야, 책상이야? 책 좀 그만 쌓아 둬.
내 일이 있어야 했는데, 나도 일하는 여자가 되어야 했는데... 그런 아쉬움이 늘 남는 것도 어쩌면 공간의 부재 탓인지도 모른다.
과연 10년 전 그때로 돌아가면 집을 선택하지 않고, 직장에서 계속 일하기를 택했을까? 집안일이 나의 적성에는 맞지 않다는 걸 집안 식구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경력 단절을 깨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 사흘 동안 눈물을 흘리는 동안, 동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비혼이었고,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아 본 적 없었기에, 아이 치료가 우선이지, 엄마가 되어서 왜 저럴까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무덤과 같은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말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이가 끝을 알 수 없는 재활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날, 커리어우먼으로서 내 인생은 끝났다고 나도 믿어버렸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글이 좋았기에 도서관에 도착에 마저 끝까지 읽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의 프레임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삶을 방해하고 축소하는 가부장적 결혼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을 창조해나가는 과정의 연장선상으로서의 결혼” 이야기를 했을 때, 나도 지금이라도 나를 창조해나가는 과정으로 결혼을 바꿀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니, 바꿔야 한다고 스스로 도전하고 있었다. 그래야 혼자여도 괜찮은 내가 되는 것이니까. 잠시 읽기를 멈추고 곧장 서가로 달려가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를 찾았다. 두껍다. 한숨에 읽어 내릴 수 있는 글이 아니었다. 생각하면서 천천히 씹어 먹으며 읽어야 할 책이야. 이 책은 다음에 봐야 해. 다음을 약속하고 서가에 그대로 두었다.
나의 집 이야기를 할 차례다. 수도 없이 집을 둘러보며, 잡초가 우거진 마당을 둘러보며 나에게 말했다. 이 집에 이사 온 건, 아이 때문이었지. 엘리베이터에 집착하는 아이 때문이었지. 그 아이만 아니었어도 아파트에 사는 건데... 그 아이만 아니었어도 동탄 2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 갔을 텐데... 이 땅콩집에서 살면서 좋은 기억이 있었나? 좋은 추억이 있었나? 행복한 적이 있었나? 아니, 결혼을 통틀어 행복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결혼하자마자 임신, 출산을 경험하며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타인의 목소리에 내 삶을 맡겨버렸다. 그렇게 집에 머물자 목표를 둘 만한 커리어우먼에 걸맞은 일이 없었다. 집안일과 육아에서 늘 완패당하면서 만성 우울의 상태로 들어가 버렸다. 결혼은 곧 후회였고,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고 되뇌며 살았다. 정신없이 아이 재활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진했고 충전을 받을 만한 곳은 없었다. 늘 지치고 피곤했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집을 집답게 바꿔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때가 있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2월이었다. 마을공동체 활동도 멈추었던 때라 인테리어에 관한 책을 잔뜩 빌렸다. 열심히 읽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딸은 자기 방을 바꾸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딸은 열심히 자기 방을 페인트 칠하고, 침대를 사고, 원하는 책상을 샀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자 또 이야기했다. 더 큰 방으로 바꿔야 한다고. 방이 너무 더우니 에어컨을 놔주던지, 에어컨 있는 방을 달라고 했다. 딸이 원하는 방을 갖고 아들과 남편도 자신만의 개인 공간을 마련했다.
내 공간을 마련하려고 하던 차에 나는 서울시 프로젝트 보조연구원으로 투입되었다.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말의 꼬임에 넘어갔다. 그것은 박사까지 공부하고 싶었지만 공부하지 못한 나의 로망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영어를 할 줄 알고, 평생교육을 아는 사람 중 시간이 많은 사람, 아니 시급 알바보다 못한 저임금을 받으면서 3개월 동안 온전한 노동력을 바칠 사람은 나 같은 사람밖에 없다. 돈도 안 되고, 연구결과에 이름도 올라가지 않는 일을 누가 하겠는가. 대학원생도 마다할 일이 맞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외면하지 못했다. 그렇게 서울시 정책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나의 집에 대한 노동은 한 달도 가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저자가 그랬듯 나도 이 땅콩집에서 안온할 수 있을까. 무성한 잡초를 바라보며, 책 쓰기가 끝나면 기념으로 마당을 바꿔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11월 책 작업이 끝나면, 다시 야심 차게 나의 공간을 만들어 보리라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이 땅콩집에서 얼마를 살지 모르지만, 나는 이곳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보리라. 여기서 울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걸, 여기서 나는 다시 일어섰고, 다시 원했던 결혼생활을 꾸려갈 생기를 찾았노라고, 이 집을 떠날 때 나의 일을 찾게 해 주어 참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