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젊은 세대, 소통하는 마을 문화 만들기
2012년 동탄2동 나루고등학교 근처, 신도시의 젊은 세대 30~40대 초반의 연고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 허허벌판 미분양 택지였던 곳에 마당 있는 작은 듀플렉스 주택이 들어섰다. 개인 공간인 거실과 마당을 개방하면서 마을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마을을 땅콩 마을이라 불렀지만, 마을 사람들은 마을 네이밍 공모와 투표를 거쳐 ‘숲으로 통하는 마을’이라 이름 붙였다. 땅콩집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필봉산 아래 있는 집이라면 우리 마을이다. 공간을 개방하고 공동체성을 가진 주민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했다.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우리 마을 가족들처럼 주체적이면 되었다. 단순 참가자가 아닌 주최자가 되는 주민, 우리 마을이 소통하고 싶은 이웃이다.
필봉산 정기가 좋아서였을까. 2013년에도 새로운 공동주택 및 단독주택 유입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도시개발계획이 어찌 된 건지 마을공동체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기반 시설이 전혀 없었다. 그 흔한 경로당도 없고, 상업시설도 들어올 수 없는 주거전용지역이다. 마을에는 코딱지만 한 놀이터와 아무도 찾지 않는 완충지 역할의 근린공원만 있을 뿐이다. 주거 특성으로 인한 단절을 피하고 싶었다.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문화공동체 프로그램을 우리끼리 만들었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주민들의 소모임, 만들기도 어렵지만 없어지기는 더 어려운 소모임이다. 바로 마을 학습동아리이다. 그렇게라도 서로 소통하고 싶었다.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의 문화 욕구를 해결하고 싶었다.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 진짜 이웃이 되었다. 연고지가 없는 주민이 모여 새로 생긴 마을로서 지난 8년 간 다양한 마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 우리 마을에서는 그냥 이름만 알기를 원치 않았다. 누구네 집 아이들로 만족할 수 없었다. 누구네 집 엄마, 아빠로 충분하지 않았다. 어떤 끼가 있는지, 가슴속 꿈은 뭔지 아는 수준을 넘어, 그 끼를 발산하는 자리까지 함께 만들어 가고 싶었다. 마을음악회를 열면 우리가 주인공이 되었다. 함께 무대를 만들고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도전을 받아들였다. 필봉산에 올라 필(Feel)을 받고, 마을 놀이터에서 공동체에 대한 감(感)도 잡았다. 마을 주민끼리 교류도 활발했다. 틈만 나면 문화예술이 어울리는 소모임이 만나 작은 축제가 되었다. 마을 주변의 다양한 문화적 자원을 활용했다. 곰팡이 피는 과정을 지켜보며 진흙으로 EM 흙공을 만들었다. 오산천 다리 위에서 완성된 흙공을 던지고 자전거를 타고 탄요유적지, 다정마을을 지나 예당마을을 끼고돌아 홍사용 문학관을 달린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고 향유하는 마을, 바로 우리 마을이다.
학습 모임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역시 역량을 강화하고 소모임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운영 지원이 필요하다. 1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 많은 사람들이 이사 가고 또 이사 왔다. 생애주기가 바뀌는 시기, 아이들이 자라고 은퇴한 집, 또다시 마당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집... 모두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이웃이다. 코로나로 잠시 쉬어가는 지금, 우리가 다시 맘 편하게 만날 수 있을까.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때, 새로운 이웃도 마당과 거실을 열어 줄 수 있을까. 다시 학습하는 마을이 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지난 우리 마을 이웃처럼 언제까지나 마을에서 학습하며 행복했던 추억을 이어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