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평생교육전문가의 마을공동체 썰전(戰)
마을활동가로 일했던 나의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 직업적 소명 의식을 가지고 전국단위의 시민단체에서 실무자로 일한 경험을 갖고 있다. 결혼도 같은 분야, 직장에서 봉사자로 일한 평생학습 전문가와 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을 붙잡고 날마다 평생학습, 마을공동체 수다를 떨었다. 나의 썰에 절대 전(戰)으로 응답하지 않는 남편은 철저한 경청자였다.
“이런 건 정책적으로 만들어져야 해, 이 마을공동체 활동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진 사업인지 현장은 몰라. 국가 시스템이 뭔지, 광역과 기초단체는 어떤 맥락인지 전혀 모르잖아. 어쩌면 보조금 사업이 10년이 지나도 하나도 변한 게 없을까, 20년 전 보조금 회계와 달라진 게 뭐가 있어? 우리나라 학습동아리가 정말 스웨덴 서클(circle, 스웨덴식 학습동아리)을 제대로 카피했다면 이럴 수는 없지. 문제 해결은 없고 취미여가만 가져왔잖아.
통합시스템으로 한눈에 전국을 볼 수 있는 평생학습 현황판이 왜 안 되는 거야? 스웨덴도 되고, 독일도 되는데.... 어디서 어떤 프로그램을 누가 참여했는지, 어디서 강사를 찾고, 어디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평생학습을 한눈에 다 볼 수 있어야지. 그래야 학습 기회가 누구에게 가고 있는지, 평등의 관점에서 알 수 있는 거야. 노인, 청소년, 장애인, 이민자 참여 현황은 전혀 알 수 없잖아. 장애인만 해도 완전히 세분화해서 볼 수 있어. 지체장애부터 발달장애성인까지 평생학습을 다 구분해서 한 번에 검색하면 나온다고. 그런 분류 자체가 평등의 관점이야. 우리는 왜 참여인원을 성과라고 해? 다양한 기준으로 봐야 하지 않겠어? 평생학습마을은 체계는 있지만, 현장성은 떨어져. 마을에서 일하는 평생교육사가 활동가로 일하지 않아서 그래. 학습마을 매니저, 코디네이터, 명칭도 다 다르고 구조화도 안 되어 있어. 마을공동체는 체계는 없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를 완전히 열정 페이 시켜. 누가 참여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시스템이야. 성과지표가 정확하지 않아. 마을이 다 다른데 왜 다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거야? 동원된 참여인원일 수 있는데 말이야.
전문가 버전, 대중 버전, 읽기 쉬운 버전으로 사업보고서를 만들 수 없어? 지식이 좀 부족하면 이해 못할 언어잖아. 공부 안 한 사람은 도저히 뭔 말인지 모를 것 같은데? 그럼 소외되는 거잖아. 스웨덴이나 독일 보고서를 참고했더니 다르더라고. 온 국민이 알아야 하는 정보는 보고서를 몇 개나 만들더라고. 전문가 버전, 대중 버전, 학습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아주 쉬운 언어 버전. 연간 계획서, 결과보고서, 연구보고서, 정책보고서, 웹사이트도 마찬가지야. 하나의 기준만 갖지 않았어. 가능하면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하고 볼 수 있는 시스템이야.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연구를 안 하는 것 같아. 최신 자료를 찾아보려고 했더니 연구 보고서가 별로 없어. 또 보려면 다 로그인 하래. 로그인 안 하면 정보는 아예 볼 수 없는 거야? 숨바꼭질하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어. 국회도서관 같은 곳을 안 가도 디지털로 해결되면 좋겠어. 스캔으로 보관한 옛날 자료도 키워드로 검색 가능하게 디지털화를 해주면 얼마나 좋겠어?
독일은 교회도 정치교육을 하는 공간이라고! 몇 발자국만 가면 되는 거리에 학교가 있는데, 독일은 성인교육을 위해 야간에 학교 개방하잖아! 민주시민교육이 왜 따로 놀아야 해? 마을 취미여가 프로그램과 얼마든지 연계하면 되잖아. 15분 짬 특강, 동영상 강의를 취미여가시간에 섞어도 되고.
마을공동체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을 갖춘 곳이 될 수 있어! 어느 누가 나 우울증이에요 그러면서 정신건강지원센터를 제 발로 찾아가겠어? 소수겠지! 마을에서는 누가 힘들어하는지 금방 알 수 있잖아. 그래서 마을공동체가 중요한 거라고. 작은 마을과 연계하면 기관의 일이 더 효율적일 수 있는데, 기관 담당자는 마을활동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잖아.
아무나 마을활동가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지속성이 없지. 누가 평생 열정 페이 하면서 살 수 있겠어? 작은 마을 단위가 프로그램 운영하기가 제일 힘든 곳이야. 제대로 하려면 평생교육사나 사회복지사처럼 적어도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기관 프로그램이 작은 마을이 못하는 일을 해줘야지.
장애인 평생교육을 장애인 기관에 맡기면 사회복지사 참 헷갈리겠네. 복지 차원의 프로그램과 평생학습은 다른 건데... 평생학습 맥락에서 장애인 대상의 평생 학습을 촉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찌 보면 평생학습은 필수라기보다는 선택이잖아. 필수는 강요된 느낌이잖아.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자유롭고, 행복한 거지. 평생학습이 행복을 주는 건 맞아. 강요하지도 않고, 줄 세우기도 하지 않고. 국가역량강화 시스템으로 비형식, 무형식의 학습까지 평생학습을 체계화하면 얼마나 좋겠냐고. 우리나라는 대학 전공만 쳐 주잖아. 전공 안 하면 그 분야에서 5년 이상 공부해도 학위 없이는 어림도 없지. 강사 자리 구하기도 힘들어.
평생학습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그 이야기를 대학교 때 들었어. 피터 드러커 때문에 평생학습에 코 꿰인 거지....”
남편이 관할하는 일이 전혀 아닌데도 여기서 주워듣고, 저기서 보고 깨닫고 배운 것을 여과 없이 쏟아낼 때가 많았다. 그 나라에 가지 않았지만 해외자료까지 찾아보게 되면 평생학습을 촉진하는 다른 나라 정책에 감동하니 할 말은 많았다.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우리나라는 현장 연구가 없으니 속상했다. 피터 드러커의 평생학습에 감동하고 이 일을 선택해 20년이 지났는데 실천 현장은 변함이 없었다. 평생교육 예산은 1%가 못 미치고, 시민교육은 0.1%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질리도록 들었다. 마치 몇 푼 안 되는 보조금 사업의 회계처리가 까다롭다는 이야기처럼. 강산이 몇 번 변해도 늘 되풀이되는 말이었다.
우리나라도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고 상상까지 가미해 별별 말을 다했다. 남편의 일은 주로 전문가를 만나는 일이었다. 현장보다는 현장을 감독하는 실무자, 리더를 연구하고 정책을 만들고, 학식이 많은 사람들과 이루어졌다.
나는 마을, 저 밑바닥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장에서 혹독하게 겪는 현실적인 일이었다. 마을공동체가 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학습을 하며 날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통할까, 마을 학습 체계, 지속성, 프로젝트의 공공성을 고민했다. 마을활동가라는 이름보다 평생교육사라는 정체성을 갖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평생교육을 아는 전문가가 작은 마을 현장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교육사라기보다는 마을활동가로 소개되었다. 상관없다. 나는 평생학습을 사랑한 마을활동가였고, 평생학습으로 마을공동체를 확장한 평생학습마을 프로젝트를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