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와 무료의 기준, 공공적 마을공동체성

by 조이스랑

마을공동체 사업과 활동에서 유료와 무료의 기준, 공공적 마을공동체성

인생을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망은 누구나 있다. 하지만, 공짜 기회가 많으면 도전 정신, 특히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정신 자세가 사라진다. 마을 활동도 이런 사람 심리가 따라간다. 자기가 활동 주체성을 가질수록 자긍심이 생긴다. 공짜로 배웠으면 좀 공짜로 마을에서 나눠주려는 마음을 갖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공짜에 길들여지면, 계속 받기만 하려는 심리가 생길 수 있다. 보조금 사업을 다 공짜로 풀어버리면, 나중에는 참가비 만원 내는 것도 싫어할 수 있다. 또 아는 사람만 참가하게 해서 끼리끼리가 될 수 있다. 정보의 선점이다. 선착순으로 마감시키면 항상 재빠르게 참가하는 사람만, 아는 사람만 참가하기 쉽다.

나는 보조금 사업을 받아, 공짜 수업을 함부로 마을에서 풀지 않았다. 아이들 수업은 물론, 성인 활동까지 유료 학습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개인의 꿈에서 마을공동체까지, 마을공동체에 관한 사업 범위를 개인 취미여가 프로그램에서 민주시민교육으로 통합시키려고 했다. 공공적 마을공동체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를 기준점으로 보았다. 마을교육공동체는 어른은 혜택 받으면 안 되는가? 어르신은 경로당이 있으니까 경로당 프로그램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가? 경로당 안 가는 늦은 중년의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평생학습 차원에서, 공동체적 차원에서 다 같이 만날 수는 없는가. 아니, 꼭 그렇게 고유성만을 강조해서 따로국밥이 되어야 하는가. 진짜 공동체는 마을의 모든 사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단 한 번의 학습기회라도, 누군가를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어야 한다.

마을의 변수는 아주 많다.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종교라면 신앙심에 호소할 수 있겠지만, 과거 농경사회의 마을처럼 생계적으로 함께 해야 하는 구조도 아니다. 때문에 운영자의 통제 능력을 벗어나는 변수가 많다. 운영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 마을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계획과 현실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볼 수 있다. 어쩌다 한 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따라서 예상되는 가정들을 검토해서 마을공동체 활동을 힘들게 하는 문제를 최대한 예측하고 대응방안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특히 활동 참가에 대한 변수를 생각해보자. 이 활동이 인기가 있을 것인가? 대박일까, 쪽박일까. 참가자가 예상보다 많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이 선호한다면 왜 일까? 참가자가 적다면 왜 그럴까. 날짜는 적절할까. 보조금 외에 들어가야 할 공금은 어느 정도일까. 공금은 충분한가. 비용이 부족하다면 누가 충당할 것인가.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공금이 개인적 욕구나 소소한 것들로 쓰이고 있는가.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만 지출되어야 한다면, 어떤 규정이 필요할까. ‘모두를 위한 마을 그리고 마을을 위한 모두’는 가능할까. 공동의 목적이라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마을에 같이 산다는 이유로 익명의 다수를 위한 지출은 어떤 비용에서 충당하는 것이 적합할까.

이러한 고민으로 나는 참가비에 대해 사업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실천이 없고, 공동체적인 활동 목적이 없는 강좌는 개인적으로 100% 자부담 사업으로 진행한다. 즉 수강자가 강사비와 재료비를 100% 지불한다. 취미여가 프로그램, 다수의 아이들 프로그램이 여기에 해당되었다. 성인이 선호하는 자격증 프로그램도 가급적 100% 자부담으로 진행했다. 다만 이들이 모여서 공동체 활동으로 응답하는 경우는 달랐다. 마을에서 자원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일부러 만들었다. 그때만은 확실한 공적 공동체성이 있기 때문에, 강사비나 재료비, 연주비까지, 자격증을 취득했을 경우는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했다.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개인 학습과 성장으로 국한되면, 자부담 100%로 시작했다. 공동체에 기여하는 활동이 있으면 유료와 무료 사이에서 자부담 금액을 조정했다. 어른이더라도 원예수업이면 100% 자부담으로, 마을 화단에 알뿌리를 심고 잡초를 뽑으면서 특강을 들으면 100% 무료 활동이었다. 악기(기타, 우쿨렐레, 바이올린 등) 수업이면 100% 자부담으로, 마을공동체 행사에서 악기팀이 합주를 하면 강사비와 연주비를 지급했다. 학습에 투자한 비용을 마을에 기여하면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손글씨 수업은 100% 자부담으로, 마을공동체 공간에 손글씨 작품을 비치하거나 마을 전시회 준비를 위해서라면 100% 강사비, 재료비를 지원했다. 송편을 만들어 개인이 다 가져가면 100% 자부담, 일부를 마을 사람들과 나누면서 소통하면 100% 무료 특강으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고 소통해야 하는 프로그램, 주민이 선호하지 않지만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활동은 100% 무료특강으로 가능하면 최고의 강사를 섭외하려고 했다. 어떤 활동이든지 참여를 독려해야 하는 상황이면 첫 시작은 무료 특강으로 진행해 누구나 부담 없이 오도록 했다. 그 후 유료 학습으로 전환했다. 칼로 무 자르듯 이건 유료, 이건 무료가 아니었다. 마을 전체를 놓고, 지속성을 고려하고, 참가자 형평성을 따져가며 조정하려고 애썼다. 지자체 보조금이 아니라, 자체 마을공동체 활동 사업비에서 필요하면 학습비의 일부를 지불했다. 어르신이나 엄마들은 자신에게 투자하기를 주저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누구나 마을 활동이나 학습에 최소의 부담으로 참가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마을공동체 사업은 사전에 참가 신청을 하고, 행사에 나오는 사람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사전 참가 신청은 했지만 당일 참석하지 않는 사람까지 공동체 활동 참가자로 보면서 재료를 챙겨주지 않았다.

소모임으로 일정 인원이 모여야 강좌가 개설되는 경우, 강좌가 개설된 후 수강료를 환불하지 않았다. 강사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4명이 5만 원씩 내기로 하고 섭외된 강사인데, 강의 첫날 당일 1명이 결석하고 수강료는 지불하지 않은 상태라면, 강사가 받을 수 있는 비용이 20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줄어든다. 남은 3명이 1/n로 나눠 부족한 강사비를 채워야 할까? 아니면 강사가 수입을 줄여서 15만 원만 받는 것이 맞을까. 나는 강사에게도 수강 약속을 지킨 신청자 3명에게도 불이익이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강사가 많은 금액을 받고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최소 금액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부족한 강사비를 마을공동체 사업비에서 지불했다. 보조금 지원사업비가 아닌 마을 자체 사업비에서 지불했다. 예고 없이 당일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 때문에 전체 강의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마을공동체 활동을 책임지는 임대사업소에 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다. 마을활동가를 전문가로 인식하고, 활동가 재량을 최대한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이런 사례를 보고, 1명이 취소되어도 괜찮도록, 다음 달 수강료를 인상했다. 1인 7만 원, 3인이면 개설이 가능하도록 말이다. 수강자가 없었을까? 아니다. 그렇게 인상해도 학원보다 저렴했고, 강사는 학원보다 훌륭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마을 수업이 폐강될 리가 없었다. 수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수강료를 납부한 상태에서 취소한 경우라면 취소한 사람에게 환불하지 않았다. 물론, 수강자에게 미리 이런 환불 불가 이유를 설명했다. 공동체가 뭔가. 문화센터 강좌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룹 수업으로 정해져 강사의 동의를 구한 수업이, 일부 변심한 참가자 때문에 강사에게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 신뢰가 깨지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공동체 프로그램이 어떻게 다른지, 기초교육을 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재료비도 내지 않고, 마을공동체 요리 수업을 신청해 당일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미리 준비된 재료도 없는데, 사전 신청도 안 하고 당일 나타나, 꼭 하고 싶다며 끼워달라고 생떼를 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마음 상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응대해야 할까. 그래서 여분의 사업비가 필요하고, 여분의 재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분의 재료가 늘 준비된다는 걸 알고 이를 악용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단정 짓지는 못할 것이다. 마을의 변수를 최대한 예측해 당황하지 않도록 준비해 보자. 마을활동가라서 항상 다 양보하고 뒤집어쓰며, 땜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활동가도 감정 있는 사람이다.

활동가로서 보조금 사업을 할 때 행정에 확인하고 싶은 사항도 있다. 마을공동체 활동 보조금 사업을 했을 때 평균적으로 추가 금액은 얼마나 들어갈까? 객관적, 평균적 소요비용이 과연 10%일까? 자부담 10%이면 모두 충당될까? 형식적 자부담 10%가 아니라, 현실적 자부담 비용을 행정은 과연 알까? 정확한 데이터로 확인하고 싶다. 왜 자부담을 사업도 시작하기 전에 미리 통장에 넣어두어야 하고, 그것으로 사업 가능성을 바라보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서류상 비용이 지급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지급된 비용을 환수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가?

작가의 이전글아무나 하는 마을활동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