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공유하고 있는가
우리 자신의 발견은 세상의 발견보다 중요하다. 찰스 핸디의 말이다. 이 세상의 어떤 발견보다 우리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이며, 어떤 노력을 통해 얼마나 성장 가능한 존재인지를 제대로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 말을 곱씹으며 마을활동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없나 고민했다. 너무 지쳐있는 사람에게는 쉬어갈 기회를, 자신을 좀 더 깊이 생각하며 다음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을 기회를, 능력 없다고 자신을 치부하는 사람도 성장할 기회를, 열정 페이에서 벗어나 제대로 돈을 벌 기회를, 마을 주민이나 마을 강사, 리더, 활동가는 가져서는 안 되는가. 그런 기회가 있다면 마을에서 성장하여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나가도 된다. 도시의 마을이 그런 기회를 줄 수 없다고 언제까지나 붙들어서는 안 된다. 아니, 붙들 수도 없다. 그러니 마을이 발판이 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성장할 기회를 충분히 누려서, 넓은 세상으로 가면 마을을 회상할 때 얼마나 기쁘겠는가.
함께 만들어 가는 꿈, 별처럼 빛나는 마을
나의 꿈, 이웃의 꿈, 마을공동체로서 갖는 꿈, 마을 사람들과 함께 꾸는 꿈... 어떤 꿈이든지, 서로 알고 있는가?
마을공동체, 제대로 하려면 첫 단추는 꿈이다. 그것도 활동 참가자 개인의 꿈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일, 인생의 로망이었던 꿈을 찾고, 나누는데 시간을 아끼지 말자. 초기 공동체 활동에서는 익명의 불특정 다수보다 실명의 활동 참가자 중심이 좋다. 이들의 재능, 자원을 기반으로, 추구하고 싶은 마을을 이야기하고, 마을 안에서 이들의 꿈과 재능이 마음껏 꽃 필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꿈, 재능 다 파악할 수 있을까? 마을의 꿈까지? 가능하다. 그런 얘기를 나누면 친밀도는 한순간에 올라간다. 처음 만난 마을활동에 반할 수 있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시작한 지 첫날, 몇 개월, 아니 몇 년이 흘러, 자신의 고민을 나눌 사람도 만났고, 자신의 재능도 생각해봤고, 자신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면 얼마나 행운이겠는가. 마을에서 내 꿈을 이룬다? 사람들이 내 꿈을 지지해주고, 꿈을 펼칠 기회를 준다? 당장 살고 싶은 마을이다. 대박 마을이다.
내가 마을공동체를 시작할 때 그랬다. 행사 중심이었으니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항상 보는 얼굴이니 00 엄마, 아이 이름은 알았다. 1년 반이 흘러 워크숍 형식으로 구조화된 교육을 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재능과 어렸을 적 꿈,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음식, 여행, 책, 영화..... 사소한 것을 나누면서 몰랐던 00 엄마를 아주 깊이 만났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자 우리는 공동체 프로그램을 짰다.
“00 엄마가 화가가 꿈이었다니, 아이들 미술 프로그램 맡기면 어떨까요?”
“그래요. 우리가 전문가 프로그램하는 것도 아니고, 마을이잖아요. 해 봐요.”
“진짜요? 저는 전공자도 아니고, 한 번도 미술 가르쳐 본 적 없어요. 자신이 없는데 같이 차시별 미술 프로그램 짜면, 해 봐도 될까요?”
마을의 아이들 미술학습, 그림 사냥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들과 차시별 마을 미술 프로그램을 짜서, 수채화, 유화, 마을 놀이터에서 산책하며 마을 건물을 그렸다. 결과물을 지도로 만들어서 마을지도가 되었고, 아이들 미술 오브제 수업이 크리스마스 대형 현수막으로 마을에서 활용되었다.
“00 엄마가 첼로가 인생 로망이었대요. 마을에서 고생을 자처하며 봉사하는데, 인생 로망 한 번 마을에서 풀어 줍시다. 이참에 첼로 수업 열자고요. 수강자 안 모이면, 내가라도 같이 배울 테니 한 번 모집이나 해봐요.”
그렇게 해서 마을에 바이올린, 첼로 수업이 열렸다. 첼로가 인생 로망이었던 00 엄마는 몇 년 후 악보를 외워, 외부 공연을 뛸 만큼 첼로 앙상블 멤버로서 활약했다.
미술, 현악기, 요리, 리본공예, 독서논술, 우쿨렐레... 모두 첫 워크숍에서 파악한 참가자들의 재능과 관심사, 꿈을 기반으로 시작한 마을학습모임이었다. 서로의 꿈을 알았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자체적인 강사 양성과정을 열 수 있었다. 강사 양성과정이라는 사업으로 엄마들은 외부 전문가에게서 자신의 관심사를 좀 더 깊이 배웠다. 그리고 과정이 끝난 후 마을에서 재능을 풀어주었다. 마을 주민강사가 된 것이다. 관심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마을 학습 동아리는 억지가 아니었으니 지속성이 담보되었다. 프로젝트 보조금이 없어도 자부담으로 쭉 진행될 수 있었다.
서로의 꿈과 재능을 공유하는 시간을 협택 마을에서는 공동체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반이나 지나서야 가졌다. 민간임대아파트에서 마을공동체 활동을 시작할 때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나는 첫 만남, 첫 시간, 마을공동체 기초교육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꿈 이야기를 앞당겨 나누도록 했다. 그리고 협택 마을 사례와 같이, 이 참가자들의 재능을 기반으로 마을공동체 활동 방향을 그렸다. 사진을 배우고 있는 직장인에게 사진 찍을 기회를, 캘리그래피 강사에게 마을공동체 공간 꾸미기를, 서예, 원어민 영어회화, 원예, 요리... 모두 첫 마을공동체 기초교육 참가자들의 재능이었다.
마을공동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개인의 꿈을 나누기보다는 마을의 꿈만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사업만 얘기하다 헤어지면 관계가 끊어지기 쉽다. 마치 일 때문에 만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럴듯해 보이는 하나의 마을사업으로, 누군가가 주도한 한 때의 일시적 이벤트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가 되면, 마을사업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만날 때마다 하하호호, 그래그래, 다 이해해, 말해봐, 다 들어줄게. 둘도 없는 마을 친구가 된다. 만나기만 하면 아이디어가 샘 솟는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니, 마을활동은 계속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