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위한 선택, 평생학습 마을공동체

by 조이스랑

소통을 위한 학습, 평생학습 마을공동체

내가 마을공동체를 시작한 이유는 조금 특별했다. 죽고 싶은 만큼 힘들 때 자신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한 두 명이라고 있는 마을이라면, 자살 지수가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소통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도시의 마을 풍경에서는 그런 소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살률이 현저하게 줄어든 헝가리는 ‘도움을 요청한 권리’가 있어야 함을 시민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국가적으로 20년간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헝가리의 자살률이 50% 감소했다. 헝가리 사례는 ‘소통’에 대해 ‘도움을 요청할 권리’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의 ‘민폐’라고 치부했었다. 아이들은 부모와 소통이 안 되어서 친구를 찾고, 친구와 소통이 안 되면 고립감을 느낀다. 가족 안에서 소통이 잘 되었다면 친구가 없어도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가족도 힘들고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도 없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마음 나눌 이가 없을 때 극단적 생각으로 죽음을 선택하기 쉽다. 홀로 된 중년 남성도, 병들고 고독한 노인도 비슷하다.

내 이야기를 맘 놓고 해도 되는 사람이 한 두 명이라도 있으려면, 깊은 소통의 관계여야 가능하지 않을까. 식구든 이웃이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이웃 관계에서는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구조화된 만남이 가능해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마을에서 함께 하는 배움은 구조화의 좋은 수단이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평생학습 프로그램, 그것이 내가 선택한 소통 방법이었다. 진입과정으로 처음은 쉽게 만나도록, 학습에 모두를 초대한다. 비용 부담 없이 누구나 오도록. 특별한 강의를 열고 친숙한 관계를 만들 기회를 마련한다. 정말 좋은 강사를 물색해서 만족도 최고로 나오도록. 다음에도 또 배우면 좋겠다고 막 간절함이 생기도록. 그렇게 일정 기간의 학습이 끝난 후에는 동아리로 엮거나 후속 모임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질적 수단으로 개인의 꿈을 공유하는 것이 지속성의 담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잘 알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꿈을 공유할 때 깊은 관계가 맺어지고, 공동체라는 이름이 없어도 소통은 쭉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소통 중심의 마을공동체 활동, 그 불씨를 댕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내가 사는 우리 마을부터 소통하는 마을이 되기를 희망했다. 평생학습마을의 시작이었다. 내가 마을활동을 시작할 때 화성시에는 마을지원센터가 설치되기 이전이었다. 하지만 경기도에는 평생학습마을 조성 사업이 있었다. 평생학습을 사랑하는 우리 부부에게 학습마을 프로젝트가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딱 걸렸다.


마을활동가로서 10년을 지나오면서, 개인의 꿈과 마을공동체의 꿈을 엮은 다양한 시도를 했다. 협택 지역과 아파트에서, 무급 자원봉사자로, 유급 마을활동가로, 실천 방법도 그만큼 다양했다. 개인의 꿈을 바탕으로 마을의 꿈을 동시에 실천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추구한 전체적인 마을공동체 방향이었다. 이 생각은 활동가로서 연차가 쌓일수록 더 확실해졌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초기에 나눴던 꿈을 끝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답게 사는 법을 알아가고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 준다면, 이미 끈끈한 관계다. 보조금 사업이 없어도 마을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마을활동에 적극적일 수 있다. 마을의 꿈뿐만 아니라 서로의 꿈을 알아가는 것, 소통을 위한 통로이자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진행자 TIP : 개인의 꿈에서 시작하되 꼭 마을의 꿈으로 확장하여 진행한다.

개인의 꿈만 말하다 헤어지면 마을공동체 활동으로서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 반대로 마을의 꿈만 있으면 나와 상관없는, 지루한 첫 경험이 될 수 있다. 나는 없고 마을만 있을 수는 없다. 마을에서 공허하지 않으려면 각자 나답게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동시에 바깥세상, 마을과의 균형이 필요하다.

익명의 불특정 다수를 위한, ‘모두의 마을공동체’는 멋있게 들린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두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는 어렵다. 활성화가 되기 전까지는 잘 알지 못하고 별 관심이 없다.

마을공동체 모임이 뭘까. 궁금해서 처음 한 번 와봤는데 소위 ‘지금, 여기에 없는,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의 다수’를 위해, ‘참여한 소수’가 총대를 매고 다 같이 마을공동체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강조하면, 그 소수마저 흩어질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보자. 정말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아무 준비 없이 마음의 뚜렷한 동기도 없이, 모임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나누는 이야기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라면? 듣고만 있다가 왔다면, 다음에 또 참석하고 싶을까?

초기 활동에서 마을 만들기를 하자면서, 마을의 의제를 정하자고 많은 사람을 불렀다고 하자. 프로그램명은 일명, ‘우리 마을 만들기-마을공동체 교육’이다. 누군가 미리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마을에 대해 토론하고 결론을 내리고 끝날 수 있다. 심지어 몇몇 사람만 열띤 토론을 하고 다수는 침묵하며, 결론도 없이 끝나기도 한다.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채웠다고 하자. 마을 ‘논의’를 했으니 겉으로 보기엔 괜찮은 ‘마을공동체 특강’ 일지 모른다.

어쨌든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석하길 잘했다’가 아니라, ‘가능하면 다음에는 참석하지 말아야지, 자리 채워주느라 시간만 낭비했네’라고 느낀다면 어떤 결과가 돌아올까.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모임은 실패했다고 본다.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몇 번이나 더 모임을 할 수 있을까? 위원회를 구성해서 1년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몇 년이나 지속할 수 있을까?

일방적 마을공동체 특강이나 거창한 마을 의제를 첫 단추에 무겁게 넣지 말자. 마을 의제를 넣고자 한다면, 탁월한 진행자를 섭외해야 한다. 즐겁게 의제에 빠져들도록, 자신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진행자를 섭외하자. 심오한 마을의제를 내 일처럼 끌어당길 수 있도록 말이다. 처음부터 친밀감을 주도록, 마을의 꿈도 쉽고 가볍게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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