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마을 1교시
마을활동이 시작되는 첫 시간, 강사를 소개하고 곧장 활동이나 학습, 교육으로 직진하기 쉽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첫 만남의 자리라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배정하자. 시간이 너무 없으면 번개처럼 짧게 말해도 좋다. 참가자가 예전에도 비슷한 자기소개를 했다면, 질문을 살짝 바꾸면 된다. 또 서로 알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서 궁금한 것 몇 가지만 나눠도 좋다.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잘 아는 친구가 된다. 만약 마을학교 개강 첫날, 1교시라면 자기소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자.
“00에는 사는 00 엄마예요. 아이는 몇 살이고 00 학교(유치원) 다니고 있어요.”
이런 수준에서 소개하고 끝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서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나눔의 시간을 가질 것인가.
“안녕하세요? 저는 000이에요. 좋아하는 음식은 초밥, 회냉면, 생선 이런 건데, 식구들이 안 좋아해서 집에서는 잘 못 먹어 아쉽네요. 생선 좋아하는 분 계시면 같이 먹으러 가요.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는 가족과 세계 여행? 아직 한 번도 네 식구가 여행 가본 적이 없어서요. 로망 중의 로망은 책을 쓰는 거, 작가가 되고 싶은데요. 지금 글을 쓰는 건 아니고 나중에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취미는 노래인데, 4년 정도 배우다 쉬고 있네요. 제가 생각하는 마을은 진짜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공동체이다. 아파트가 많이 삭막한 곳인데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으면 좋겠어요.”
마을공동체교육 초기에는 목적, 취지부터 이름 있는 분들의 인사말, 참가자들이 지켜야 할 수칙, 수료 조건을 안내하고 끝날 때가 많다. 그런 분위기에서 갑자기 자기소개를 하고, 처음 만났는데, 개인의 꿈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부담스럽다. 집에 남아있기를 선택할 때 자신의 꿈은 잊고 아이들의 꿈, 배우자의 꿈을 더 많이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비전, 사명서라는 말보다 버킷리스트가 첫 만남 때 딱 좋다. 소소한 희망거리를 말하면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비전은 뭔가 심오한 걸 말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준다. 하지만 버킷리스트는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고민 없이 소소하게 말할 수 있다. 수료증을 나눠주는 시간, 대체로 자기를 돌아보거나 사명선언서를 작성하고 비전 선포식을 하면서, 종강 때가 되어서야 서로를 조금 알게 된다. 작심하고 공유하는 사명선언서도 교육의 흐름상 마지막을 장식한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버킷리스트, 취미, 내가 하고 싶은 활동, 내가 잘하는 활동 같은 것은 사람들이 술술 말할 수 있는 소재이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공동체의 방향을 설정하면 일단 성공적인 시작이다. 따라서 이런 시간을 교육의 끝이 아닌 시작에서 충분히 나눌 필요가 있다.
관계는 친숙함에 기초할 때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쉽다. 자기소개 시간을 갖고, 자신의 꿈을 나누는 이유는 마을공동체로서 심리적 결합, 사회적 결합 측면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자신의 개인적인 꿈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마을 전체의 꿈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마을활동가의 역량이며, 진행자의 노하우이다. 공공적 리더십, 마을공동체를 전체적인 흐름 속에 녹아내리게 하는 것이다.
나다운 삶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을
그대, 어떤 마을을 꿈꾸는가? 공동육아만이 전부가 아니다. ‘나답게 사는 삶’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의 강점, 나의 미래, 나의 꿈을 구체화할 수도 있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꿈을 그려 볼 수 있다. 이웃과 더불어 마을이라는 일상에서도 가능하다. 같이 한 걸음씩 행복한 삶을 위한 작은 실천을 시도해볼 수 있다. 마음을 터놓고 뭐든지 얘기할 수 있는 진짜 이웃을 만날 수 있다면 서너 명도 좋다.
흔히 사람들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도 마을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도 온 마을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다운 삶을 생각하고 끝까지 자신을 소중히 여기도록, 마을이 필요하다. 이제 죽는 것만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마을에 나와 누군가를 만나면 '다시 한 번 해봐야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우리 각자가 꽃이라면, 자신이 꽃피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고, 열매 맺고, 시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사람일지라도, 행복한 삶을 위한 작은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곳, 바로 마을이다.
존엄한 죽음, 그것은 내가 마을공동체 활동을 시작한 이유이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절친을 만나면 속마음을 내비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면 얼마든지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존엄한 죽음, 자살예방, 이런 거창한 말은 쓰지 않는다. 부담스러워 피하고 싶을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반면 우리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이웃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는 모임을 시도해볼까요? 소통을 위한 마을모임을 해보자고 표현 하는게 접근성에서는 더 낫다.
엄마아빠들에게는 공동육아를 할 수 있는 마을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다 성장했고, 삶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의 고독한 중년 이후의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높은 것도 행복하지 않은 노인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런 고독한 사람들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노인정? 노인정에라도 나올 수 있으면 차라리 낫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제 발로 정신건강센터나 병원을 찾아갈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한민국 자살률이 보여주듯 행복하지 않아 죽고 싶은 사람이 많지만, 대개 드러나지 않는다. 조용히 삶을 마무리한다.
공부는 많이 했는데, 전업주부로 살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우울증을 앓는 주부들도 많다. 손주를 키워주기 위해 딸네집에 온 친정엄마, 시어머니, 시골에 혼자 남은 친정아빠, 시아버지... 나는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우울해서 너무 힘든,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친해지자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분들이 있었다. 친해지기 전에 첫 자리에서 털어놓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듯, 한 사람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삶의 가치를 찾는 이들에게는 마을공동체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마을공동체를 시작하며 했던 고민이다. 누구나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좀 더 열정적일 수 있지 않을까. 과정이 힘들어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결과에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쁨으로 벅차 시간의 흐름도 잊게 만들 수 있는 마을 모임이 가능할까. 하고 싶은 일이 부리는 마법에 빠져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이 확 올라올 수 있게 도울 수는 없을까.
마음이 힘든 사람도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낄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이되, 소통이 자연스럽게 깊어져야 지속될 수 있을테니, 한두명도 좋다. 삼삼오오도 좋다. 마을의 공식적인 보조금 사업은 없어도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내어서, 모임이 해체되어도, 흩어지지 않는 관계를 만들자. 계속 모일 수 있는 이웃 친구를 만들자. 소통하는 마을 모임은 그렇게 초기부터 계획 되었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은 관계의 이웃, 그것이 마을 공동체의 방향이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뭔가 기여까지 할 수 있도록 공동체성을 엮어 모임을 정착시키려 노력했다.
내가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타인과 지역사회 전체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더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꿈을 마을의 꿈과 연결한 것이다. 이런 과정이 마을활동을 지속하게 되는 비결이다. 마을에서는 봉사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봉사는 강요해서 억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질적 보상은 줄 수 없더라도 하는 일에 대한 보람, 만족감, 자기효능감만큼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을 세심하게 배려해, 마을공동체 활동 과정을 설계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마을공동체의 활동이 개인의 소소한 혜택 수준에서 머물지 않으려면? 전체를 위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함을 추구할 수 있으려면? 참가자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동시에 그 일에 합당한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공동체를 안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출발은 개인의 꿈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모두의 꿈, 마을의 꿈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첫 시간, 워밍업 단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루한 주제를 재밌게 풀어내고, 참가자를 즐겁게 하면서, 집에 돌아갈 때, 참 잘 왔어! 다음에 또 와야지! 라고 행복한 마음을 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