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마을활동가가 무급일까. 마을공동체 활동은 체계 없는 이벤트성 마을 행사에 가까워 보인다. 아무나 하는, 누구나 될 수 있는 마을활동가에 의해 주도되는. 체계가 없어 보인다고 서운하게 말해도 어쩔 수 없다. 그만큼 마을활동의 역사가 짧아서, 현장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서이다. 왜 마을활동가는 급여가 아닌 소정의 활동비라고 불리는 비용밖에 받지 못하는 걸까. 딱 그만큼의 일이라고 생각해서이지 않을까? 누가 그렇게 생각할까? 냉정해 보이지만 행정이나 마을이나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급여만큼의 돈은 주고 싶지 않은 일, 그만큼의 일은 아니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마을에서 알아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주든지 말든지 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마을활동은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계속 실적이 나오기를 바라고, 성공적으로 진행하길 바라는 것이 행정의 마음이다. 행정이 원하는 방향이 되려면, 사명감에 불타는 언제나 열정적인, 세월이 변해도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일하는 마을활동가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마을의 현실은 냉정하다. 초기에는 너무 좋아서, 몰입하고 돈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일한다. 자신을 쏟아붓다 못해 갈아 넣는 일을 하는 것은 활동가가 마을에 대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흡사 이제 막 마을과 결혼한 신혼의 새색시처럼. 쑥스럽지만 용기를 내 이런저런 일을 해보고, 시어머니 같은 행정에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신랑 같은 마을공동체를 위해 모든 뒷바라지를 다하며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서서히 깨닫는다. 아, 내가 이렇게 계속 살면, 82년생 김지영이 되는구나. 소일거리, 뒤치다꺼리만 하다 자기 경력은 끊어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행정에서는 배 놔라 감 놔라 하고, 너희 마을이 이런 보조금 사업지원비를 이렇게 받아가니 정말 큰 혜택을 받는 것 아니냐, 예고도 없이 아무 때나 갑자기 찾아와 자료를 내놓으라고 하지를 않나, 상다리 부러지게 마을공동체 실적을 쌓으라고 하지를 않나,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냐고 요구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모든 영수증을 샅샅이 뒤져서 회계를 딱 맞춰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이런 일은 오차가 없어야 한다. 백 원, 천 원도 안 맞으면 내 돈으로라도 대체하고 그만 회계서류를 마무리하고 싶은데, 절대로 안 된다 하니, 빼도 박도 못하고 몇 날 며칠 본 서류를 다시 봐가면서 딱 맞춰내야 한다. 모든 게 전산시스템이 된 시대에도 변함없이 수작업은 늘 계속된다. 영수증과 서류가 없으면 마을공동체 활동도 안 한 걸로 다 치부하는 것 같은 행정. 그러면 정나미가 떨어져 ‘시’ 자 들어간 모든 것이 다 싫어지는 것처럼 ‘보조금’ 들어가고 행정과 연결된 모든 마을 일이 다 싫어지는 거다.
마을의 일거리는 또 어떤가. 해도 해도 표시 나지 않는 집안일처럼 왜 그렇게 잔 업무가 많은지, 왜 그렇게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은지, 애지중지 아이 키우듯 달래주어야 하지, 잘못 짜증 냈다가는 다 도로아미타불 된다. 감정 노동이 따로 없다. 또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마을활동가가 뭐든 다 해줘야 하는 걸로 생각하면서 모든 민원을 가져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도 활동가에게 묻고 활동가가 알아서 처리해 주길 바란다. 활동가라면 늘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활동가도 사람인데... 마을에서 행사하고, 모임 하면서 만날 놀고먹는다고, 행정이 주는 돈에 마을 사람들 뒤치닥거리 해야 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런저런 고생을 다 한 후 경력을 인정받아 중간조직인 마을지원센터로 자리를 옮길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또 생계와 관련된 뭔가가 마을과 연결되어 조금이라도 마을의 혜택을 받으면 다행이다. 물론 후자인 경우 마을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이를 본 적은 거의 없다. 다들 마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코가 꿰어 공방을 한다고, 카페를 운영한다고, 마을반찬을 만든다고, 작은 도서관을 운영한다고, 생태학교를 한다고, 협동조합을 한다고 한숨 아닌 한숨을 짓는다. 하지만 그런 코라도 꿰어있는 사람은 그나마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활동가로서 일한 경험이 산산이 흩어지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성장하다 말았다는 기분은 들 수 있지만 함께 할 동료라도 남아있으면 다행스러운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해 즐겁게 시작했던 마을활동은 행정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일이다. 실적이 확실하게 나와야 하는 보조금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생태적으로 힘들고 섭섭한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행정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정나미가 떨어진 활동가는 버티다 버티다 그만 헤어지기로 결정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이사를 가는 것이다.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지? 안 하면 그만인 걸! 차라리 돈이나 벌자. 이런 마음이 들 때 가능하면 온종일 마을과 헤어질 수 있는, 종일제나 시간제 일거리를 찾게 된다. 아주 적극적으로.
마을활동가가 직업적으로 가능성이 있을까? 유급직원으로 일할 가능성 말이다. 20만 원, 50만 원 하는 소액의 활동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성으로 잠시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최저임금보다 더 열악한 수준의 시간제 최하 임금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최저 임금보다 열악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실질적인 실무 역할이라는 게 시간에 딱 맞춰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예산은 비목별로 상세하게 정해져 있는데, 마을활동가의 일이 시간상 초과되었다고 해서 초과시간에 대한 수당 같은 건 아예 예측조차 하지 않는다. 거기다 돈까지 주는 게 어딘데, 이쯤이야 그냥 봉사차원에서 일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식의 자원봉사 마인드가 현장에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프로젝트를 운영하기 때문에 행정서류뿐만 아니라 현장을 책임져야 하는 활동가라면 딱 부여된 그만큼만 급여를 받는다. 그 수준이 초보가 아니라 현장 최고의 경력을 가진 수준이더라도, 늘 기준은 똑같다. 해가 바뀌어도, 경력이 쌓여도, 어느 수준에서 일하든지 최저를 벗어나기 어렵다. 가능하면 마을사업비에 더 많은 비용을 써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활동가에게 지불하는 비용을 최소 수준으로 잡을수록 괜찮은 마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누가? 행정이,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마을공동체가 태생적으로 자원봉사라고 보는 시각이 크기 때문이다. 마을활동가 유급 이야기는 내가 2014년부터 듣기 시작했지만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이유는 행정과 마을 사람들의 근본적인 시각적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