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 간 마을활동가

by 조이스랑

화성시 최초의 민간 마을활동가

활동가 유급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괜찮은 급여를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일하는 마을활동가가 나오다 보면 아파트마다 유급 활동가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유급 활동가가 확실하게 보여주는 마을활동 실적이 가시적으로 보일수록 유급 활동가의 필요성이 대두될 것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자발적으로 시작한 협택 지역의 마을공동체를 떠나 민간건설사가 주도하는 임대아파트의 공식적인 마을활동가가 되었다. 회사 소속으로 마을활동가가 되어서 마을공동체를 시작했다. 건설사가 마을공동체 활동비로 임대아파트 수입의 일부를 마을에 환원하는 방식이었다. 회사 브랜드 이미지에 마을공동체는 민간임대아파트 고품질 ‘주거서비스’로 바뀌었다.

혼자서 시작했지만 어렵다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았다. 공용공간이 없는 마을에서 그동안 겪었던 시행착오는 대부분 공간이 없는데서 발생했고, 모두에게 알릴 홍보 수단이 짧아서였다. 세대도 적었다. 겨우 350여 세대를 대상으로 5년 이상 꾸려온 마을사업을 생각하면 공동주택은 누워서 떡먹기로 보였다. 설계 때부터 미리 공동체 활동을 반영해 만들어진 공용공간이 많았다. 공간 해결! 관리사무소가 있고, 임대사업소가 있어 마을사업을 알리는데도 전혀 무리가 없다. 엘리베이터와 방송시스템도 있다. 공용 공간 게시판도 있다. 홍보 해결! 기획만 잘하면 되는데, 기획은 내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분야라 걱정할 게 없었다. 주민들이 딱 하고 싶은, 참여하고 싶은 활동을 기획하면 되니까. 사업비는 건설사가 제공하고, 필요하면 보조금 사업을 하면 된다. 사업비 해결! 참여 가구 대상, 천 세대가 넘으니 못할 사업 없다! 오히려 그동안 못했던 사업도 여기서는 가능하겠다 싶었다.

입주가 시작되면서 나의 세대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었다. 통상 임대아파트가 분양아파트보다 마을 사업이 어렵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일하러 가기 때문에, 낮에 마을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그냥 쉬고 싶지 뭔가 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 참여자가 적다. 자기 집이 아니라 어차피 이사 갈 집이라는 생각도 마을공동체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든다. 임대아파트가 누구나 쉽게 참여 가능한 이벤트 사업을 하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다들 한 번 해보라고, 임대아파트가 더 힘들다고 했다.

나는 임대아파트보다 더 어려운 곳이 세대수가 적은, 신도시 젊은 세대의 협택 마을이라고 생각했다. 젊다는 건 그만큼 합리적이다. 마을 사업도 합리적이어야 가능하다. 더치 페이 하는 것처럼 일거리를 나누지 않으면 힘들다.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아이들 사업은 잘 될 수 있지만, 육아를 후순위에 두면서까지 마을 일을 책임지려 하지는 않는다. 사업 자체도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학력 수준까지 높다. 그만큼 강사를 잘 선택해야 입맛 까다로운 마을 주민을 만족시킬 수 있다. 이런 힘든 여건에서 주민이 마을 강사로 참여하도록 독려했고, 외부강사는 확실하게 검증된 강사를 섭외하려고 노력했다. 마치 열악한 출판사가 기획출판을 위해 검증된 작가를 잡으려고 경쟁하는 것처럼. 높은 평가를 받은, 경험이 많은 강사를 섭외하려고 노력했다.

아파트보다 협택 마을이 자가 비율이 높다. 그만큼 이사를 오고 가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마을 사업이 초기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매년 동일한 대상으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질적으로 수준을 높여야 참가가 지속된다. 세대수가 적은 데 막 공동체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과 지속적으로 활동했던 사람이 섞여 있다. 어떤 마을 사업이 적절할지 활동가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연차가 늘어날수록 참여도 높이기 위해서.

이에 대해 나는 지자체 행정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의 연대가 필요한데 지자체가 마을의 연대를 추진해주면 된다. 세대수가 적은 마을에서는 활동의 한계를 맞기 쉽다. 연차가 쌓일수록, 동아리가 성장할수록, 성장한 리더가 충분히 많아야 가능한 사업이 있는데, 자체 인원 풀이 적으니 비슷한 상황의 다른 마을과의 연대가 절실하다. 그런데, 마을의 연대는 단독 마을의 자력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생업이 연결된다거나 공동의 과제가 없는 한 연대를 위한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 초기 활동은 쉽다. 동아리 첫 모임처럼 입문자가 많기 때문에 쉬운 것을 하면 된다. 하지만, 수준이 올라가면 달라진다. 동아리가 4년만 되면 중급이 된다. 리더 수준으로 성장한 마을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 단독 마을에서 우쿨렐레 초급반은 열 수 있다. 반면 자격증을 취득한 후 몇 년이 지나 수준이 높은 고급반은 계속되기 어렵다. 강사가 되면 된다고? 강사가 되기는 어렵다. 마을 주민이 취미로 5년, 6년을 배워 제법 수준 높은 우쿨렐레 강의를 할 수 있어도 강사가 되기는 어렵다. 행정 경험상 강사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기관은 대학 전공을 따지기 때문이다. 절대 같은 조건일 수 없다. 피아노 전공에 3개월 우쿨렐레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지, 음악 비전공에 우쿨렐레 자격증 취득 5년 된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런 동아리 회원은 마을에서밖에 강의 자리가 없다. 마을의 연대가 아니면 어디에서 강의를 할 수 있을까.

또 고급 수준의 동아리는 지자체 단위에서 지원해 주면 마을에서 흩어지지 않을 수 있다. 다른 마을과의 연대도 쉽다. 더 수준 높은 강사를 초빙하여 모임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작위, 선착순 수업이 아닌, 고급강좌가 필요하다.


1년차 마을공동체를 막 시작했을 때 4회기의 요리특강을 진행했다. 특강이 끝나고 후속모임을 조직했는데, 강사 없이 주민끼리의 모임이었다. 격주로 모여 한 번에 서너 가지 반찬을 만드는 모임이었는데 1년 지나니 웬만한 반찬은 다 달통한 것처럼 쉽게 만들었다. 모임 초기에는 꿈도 못 꾸었는데 1년이 지나니 마을공동체 행사 때 부스를 책임지고 알아서 운영할 만큼 빨리 성장했다. 2년차에도 요리 특강을 열 수 있을까? 비슷한 수준의 요리 수업은 강좌를 열어도 별 인기가 없을 것이다. 고심 끝에 2년 차 요리 특강 때는 호텔조리학과 교수를 섭외했다. 마침 재능기부 수업을 열어주는 분이 있었다.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간단한 호텔요리. 특강 만족도는 높았다. 일부 대학에는 교수가 의무적으로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대학은 재료비를 지급했고 교수는 재능을 마을에 기부했다. 교수의 재능기부 덕분에 즐거운 요리 특강이 가능했다. 이런 기회가 지자체를 통해 쉽게 연결될 수 있다면, 성장한 동아리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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