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는 하고 죽자

by 조이스랑

시한부 인생이라 상상해도 안 되는 게 있다. 정리정돈, 정리수납, 정리 대신 재활용하기... 정리는 포기하고, 그냥 버리자. 물건마다 추억과 의미를 부여하는 나에게는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물건이 많다. 1996년 첫 미국 여행 때 선물 받았던 음료수 용기도 가지고 있다. 버클리 대학 선배가 후배들이 미국 여행 왔다며 사 주었다. 맨 꼭대기 층에서 만났는데, 층 전체가 천천히 한 바퀴 움직이는 곳으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선배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이야기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창 공부할 때라 음료수 용기를 보면서 다음에 꼭 다시 공부하러 와야지 결심했었는데..... 몇 번의 이사를 거치다 보니 모서리가 깨졌다. 버릴 만도 한데 무슨 미련인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이젠 안다. 가족들은 모르는 나만의 추억이다. 이제 기억나지 않는 추억으로 버려도 되지 않을까. 신박한 정리의 신애라는 사진 찍어 보관하고 다 버린다는데 나도 사진 한 방 찍고 끝낼까?

가장 쉬운 정리 방법은 내 삶을 시한부 인생으로 상상하는 거란다. 1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6개월만 산다면? 그래도 필요한 것은? 시한부 인생으로 상상해도 정리가 안 되는 건? 그냥 받아들이자.

곧 죽을지 모른다고 아무리 상상해도 그렇게 안되더니, 정말 죽으면 어떡하지? 괜한 걱정이다.

“여보, 혹시 내가 죽으면 물건은 그냥 업체 불러서 싹 치워.”

농담을 하면서도 불안을 떨쳐내진 못한다. 백신 날짜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도 못하고 죽으면 안 되는데... 백신 사고로 죽은 젊은 사람 얘기를 들으면 무섭다. 그래서 오늘도 백신 신청을 못하고 주저한다. 정리는 하고 죽어야 하는데... 정리를 해야 안심하고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이다. 물건 정리는 못 했어도 우리가 부부로서 정리해야 할 불편한 건 없다. 크게 사과할 사건도, 죽기 전에 털어놓아야 할 엄청난 비밀도 없이 우리는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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