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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Oct 22. 2023

프롤로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 마을 어귀 도수로 비탈길에서 신나게 행 복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오는 순간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정신줄을 놓았나 보다. 경옥이네 집 담벼락에 자전거가 쾅 부딪혔다. 갈비뼈 여섯 대가 부러지고 어깨뼈 2 센티미터가 어긋났다. 얼굴은 푹 파였다. 허리뼈가 부서졌고 뇌에서 피가 나고 있는데 자연적으로 멈출 때까지  의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했다. 네 사람이 다칠 걸 한  번에 다쳤단다. 의사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타임머신이 필요하다. 엄마가 항상 말했던 고향 집, 이평초등학교 시절과 행복했다던 한때, 그 시간을 보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엄마가 바랐던 선물을 준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 수 있다.  타임머신은 없다. 동화책에서나 읽을 수 있고 영화에 서나 볼 수 있을 뿐. 열세 번째 종이 울리는 특별한 시계를 상상한 아이처럼 엄마의 정원으로 가고 싶다. 여섯 번째 감각을 상상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야기 한 ‘식스 센스’도 좋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뭐가 됐든  그런 시간여행. 그들만이 보았던 세계를 나도 상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친구가 없다. 한 명 있긴 하지만 멀리 떨어져  사는 도시 친구라 단조롭고 지루한 시골 생활을 함께할  수 없다. 50년 이상 한마을에 살았지만 마음 터놓고 뭐 든 안심하고 말할 수 있는 단짝이 없다. 6.25를 생생하게 겪었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알아챘을 텐데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뒷마당에 빼곡히 자란 대나무처럼 대쪽 같은 성격이라 모든 일은 원칙대로 해결한다. 마음과 다른  표현, 그러니까 생각 없이 던지는 빈말 같은 거, 다른 사 람의 눈치를 살살 살핀다거나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내  진심을 거스르는 말은 아첨 같아 비위가 상한다. 대대손 손 동네 훈장이었다는 박 씨 가문 며느리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은 본심만을 전한다.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바로 알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절대 비치지 않는 늘 생글생글한 얼굴에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는 걸, 또 그런 사람이 정말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도무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나는 엄마의 그런 성격을 탓해선 안 된다. 마지막은 해피엔딩, 부드러운 미소를 띤 현명한 엄마가 선녀처럼  무지개다리를 건너도록, 진짜 현자가 되도록 반전의 기 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생에서 이토록 절실한 때는 없다. 현자처럼 생각해야 한다. 글자를 읽기 시작한 꼬맹이 때부터 기도해 온  일이었다. 행복한 가족, 평화로운 일상, 웃음꽃 피는 집.  얼마나 갈망했던가. 평생 공들였던 기도가 희망고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후유증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오래도록.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건 모르는 것보다 더 어리석을 수도 있다. 없는 것을  보지 말고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다음은 선택과 집중. 다행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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