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대로 잘 살기 위한 연습
꿈의 집이란 아마도 매일 아침 삶에 대한 절대적 자신감을 안고 눈뜰 수 있는 곳이리라. 책 속 한 구절에 고개를 끄덕인다. 땅콩처럼 작은 이 집에 이사와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파트보다 비싼 돈을 주고 이사 온 집인데, 10년이 지나니 집값이 역전되었다. 아파트로 이사 가려면 다시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하니, 이 작은 집에서 앞으로 10년을 더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작은 집의 일상을 기분 좋은 추억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 이 집에서 좋은 건 뭘까. 딱 이 집이라서 내가 마음껏 누리고 있는 일상이 뭘까. 찾아보기로 했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단층이 아닌 피트층과 다락이 있는 계단 있는 3층 목조 주택이다. 이곳에서 제일 좋은 것은 시간의 구애 없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상이 있다는 점이다. 한 밤 중에 먼지가 거슬릴 때 청소기를 돌려도 된다. 빨래가 다 될 때까지 새벽을 기다릴 자신만 있다면 한 밤 중 세탁기를 돌려도 된다.
늦은 시간 땀이 나게 뛰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뛰든 걷든 홈트를 마음껏 해도 아랫집이 없으니 층간소음 같은 불필요한 스트레스는 없다. 아들도 한 밤 중 거실에서 공을 던진다. 공을 멀리 던질 수도 없는 작은 집이지만 아들은 소프트 공을 마음껏 던진다. 아파트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상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 층간 소음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2층에서 뛰면 1층에 영향을 준다. 2층 내 방에서 운동할 때 1층으로 쿵쿵 울리는 소리가 심하게 난다. 하지 말라 말하지 않더라도 1층에 누군가 있다면 당연히 불편하다. 3층 다락에서 아들이 공을 던지면 2층에 있는 딸이 즉시 짜증을 낸다. 아들과 나는 1층 거실에서 마음껏 뛰고 던지고 걷는다. 시끄럽다면 1층에서 하지 뭐! 선택의 자유는 이 주택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거실 창으로 맞이할 수 있는 햇살 또한 작은 기쁨이다. 흐린 날을 제외하고 언제나 찾아오는 이 따사로운 햇살은 축 처진 기분을 순식간에 바꿔준다. 겨울 아침 손바닥만 한 거실을 지나 주방 싱크대 앞까지 길게 드리워진 햇살은 작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좀 더 넓은 창에서 좀 더 근사한 풍경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지 않는다. 내게 필요한 것은 햇살을 맞이하기 위해 아침을 좀 더 일찍 시작하는 부지런함과 깜박하지 않고 날마다 찾아오는 이 친구를 맞이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매일 놓치지 않고 마음껏 누리고 싶다.
나뭇잎 한 개 없이 가지만 드러낸 앙상한 겨울나무가 인생에 대한 철학을 갖게 한다. 5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마당에 떡하니 자리한 그는 인생의 겨울을 어떻게 맞이할지 생각을 재촉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삶의 열매는 무엇인지,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꽤 무거운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침묵으로 물으면서도 큰 울림으로 던진다.
지난가을 손바닥보다 더 큰 낙엽이 수북이 쌓여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가을 흐드러지게 피었던 국화가 다 시들어 볼품없었지만 그대로 두었다. 손질하지 않은 작은 마당이 눈에 거슬렸지만 이것도 인생이려니 하며 놔두었다.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군대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도 쓸데없다며 마음껏 무시해 버렸다. 하고 싶지 않은데 나와 깊은 소통 없는 사람들 눈치 보며 억지로 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너저분한 마당에 무관심한 덕분에 캣맘을 덜 욕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덩치 큰 그놈의 고양이,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가 우리 마당에 마음껏 똥을 싸도 마당에 들어가지 않으니 날마다 치울 필요가 없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살자. 개똥철학이다. 뭘 하든 어떻게 살든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눈치는 이제 그만 보자.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는 잘라버리자 했다. 어쩌면 나는 사소한 불편함은 괘념치 않고 냉담함으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삶의 또 다른 방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봄이 되어 드디어 마당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날, 아들과 나는 적당한 만큼만 일하기로 했다. 우리가 화나지 않을 만큼. 왜 우리만 해야 하냐고 억울해하지 않고 짜증 나지 않을 만큼. 마당에 나오지 않는 딸과 남편을 탓하지 않을 만큼. 다 같이 일해야 공평한 것 같은데 내 마음 같이 안될 때 보다 관대해져야 함을 배운다.
낙엽이 바스러지니 부피가 확연히 줄었다. 거름 되라고 그대로 둘까 하다 큰맘 먹고 봄맞이 대청소하듯 낙엽을 싹 긁어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겨우 내 마당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고양이가 실례를 범한 걸 확인한다. 오래된 똥이든 이제 막 싼 구린 똥이든 다시 보지 않으려 전에 치지 않았던 그물을 쳤다. 막 올라오는 수선화와 튤립에 무적의 고양이가 똥오줌을 누면 다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작년 봄 새로 심은 구근이 녹아버린 것도 고양이가 내 화단을 화장실로 맘껏 사용했기 때문이다. 고양이 똥 때문에 아파트로 이사 가야지 했는데,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이는 지혜가 생긴 건가. 마당을 정리하다 구근의 싹이 어디서 올라오나 찾아본다. 마당이 없으면 치우는 수고도 없겠지만 요란하게 한바탕 정리하더니 꽃에 대한 소망을 갖는다. 하루하루 다르게 올라오는 작은 잎을 본다.
자연이 집안 구석구석으로 스며든다.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자연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 이 집의 선물이다. 계절이 오고 가듯 수많은 인생이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감을, 내 인생도 이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마음에 자연이 스며들면 닫힌 마음 문이 열린다. 내 인생에 똥을 싸버린 그 놈들이 다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리라 마음을 고쳐 먹는다. 우울이 찾아오지 않도록 마음에 그물을 치고 남겨진 싹을 다시 틔우기 위해 작은 집의 일상을 애찬 한다. 매일 아침 절대적 자신감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늘과 내일 아침 눈을 뜰 때 자신감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싶어서이다. 없는 대로 잘 살고 싶고, 있는 대로 마음껏 누리고 싶은 나의 하루를 적어도 오늘만큼은 애찬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