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몰랐을 뿐입니다
어머니의 함자는 바를 정(正)이 들어간 정자(正子). 위아래로 뒤집든 옆으로 뒤집든 언제나 바른 정. 어떻게 뒤집든 상관없이 항상 바를 정이라는 것을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 제게 말씀하셨지요. 친정아버지께서 반듯하게 살라고 바를 정을 넣어 정자가 되었다고. 그래서 길가에 떨어진 임자 없는 돈도 줍지 않고 교실에 떨어진 연필 한 자루도 줍지 않으며 성장했다 하셨습니다. 아무리 뒤집어도 정자는 바뀌지 않는데 왜 그렇게 몰랐을까요? 참으로 꽉 막힌 며느리였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이 제게로 오면 정식이 오식이 되듯 정자는 오자가 되었습니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그래서 저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집에 할 일 없이 여자가 둘이나 있으면 되겠냐?” 하셨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집안 살림이나 육아에 빵점이라 풀타임 직장을 구해 다시 집을 나갔습니다. 이제 직장 맘으로 쭉 살아야지 했는데, 어머니께서 떠나셨고, 저는 집을 다시 지켜야 했습니다. 일반 마트에서 시장을 보면 “먹는 건 좋은 걸로 먹여야지.” 하셨고 유기농 농산물을 사 오면, “진짜인지 어떻게 아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들들이 여행 한 번 보내주지 않았다 하셨을 뿐인데, 절대 “네가 보내주라”는 말씀은 안 하셨는데, 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드렸습니다. 무리하지 말라 하셨던 어머니는 "또 언제 기회가 오겠냐"며 태평양을 건너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돌아오실 때는 플라스틱은 좋지 않다면서 원목으로 된 장난감을 사 오셨습니다. 한국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장난감이라 친척에게 돈을 빌려 사 오셨다는 말씀도 빠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사는 게 소원'이라고 그냥 희망 사항을 말씀하셨을 뿐인데 저는 조정경기장이 있는 도시에 아파트 청약을 넣었습니다. 조금만 무리하면 되었는데 은행 빚은 절대 안 된다는 친정엄마 지론에 따라 포기했습니다. 박사과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체 은행 빚을 안 지고 집을 살 수 있는 곳은 친정엄마 사는 그런 시골뿐이라는 걸 모르셨나 봅니다.
밥을 할 때면 “고슬고슬한 밥이 되려면 밥이 되자마자 즉시 압력을 빼야 하는데 너는 왜 안 빼냐?”고 하셨습니다. 밥을 지은 후 곧장 압력을 빼기 시작한 지 한참 된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TV에서 봤다며 “밥의 영양분까지 다 먹으려면 압력이 저절로 빠질 때까지 그냥 가만히 두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입가심으로 식후 과일을 먹으라 하시더니, 과일 먼저 먹어야 한다고, 순서가 틀리다 하셨습니다. 역시 TV에서 봤다고 하셨습니다. 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고 TV를 없애버린 게 화근이었습니다. 아이가 자기 세계에 빠지면 안 되었기 때문에 소통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였는데... TV를 없애고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른 채 화성에 살면서 어머니와 소통하지 못하는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를 찾아 다시 그렇게 오자가 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피곤할 테니 더 자라.” 그러시면 계속 잤습니다. “밥풀이 불어야 하니 설거지는 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시면 그대로 두었습니다. 시아버지 기일에도 “바쁠 텐데 올 것 없다.” 하시면 가지 않았습니다. 명절 때마다 “너희들도 둘 다 올 것 없다. 번갈아 가면서 여행 가라.” 하셨기에 저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혼자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결혼 후 14년 만에 처음 떠난 여행이라 "잘했다." 하실 줄 알았는데, “얘, 너, 정말 너무했다” 하셔서 헷갈렸습니다. 혼자 가라는 게 아니라 가족 여행가라는 거였다는 말씀에 그다음 명절에 아이를 데리고 또 떠났습니다. 딸이 거부한 여행이라 환불수수료가 아까워 아들을 협박하여 떠난 유럽 여행. 어머니께서는 “잘 갔다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절대 제가 듣지 않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칼이 안 들어도 너무 안 든다.” 하셔도 무딘 칼을 갈지 않았습니다. 칼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셰프 식도가 어울릴 어머니께 새 칼을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요리를 잘하지 않으니 칼 쓸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식도 대신 과도를 써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또 요리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어릴 적 보았기에 잘 드는 칼은 싫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