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지지 않기 위해 나와 마주 서는 용기

코로나 기간 동안 책이 내게 준 선물

by 조이스랑

지난 1년간 어떤 책을 읽었을까. '오늘의 나는 내가 읽은 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지난 1년 코로나 기간 동안 내가 읽는 책 목록이 궁금했다. 기억의 저편을 더듬어보면 운동, 뇌, 식생활 같은 건강 관련 서적, 마을공동체, 글쓰기, 자기 계발, 동기부여 서적일 것이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다시 한번 책 제목을 쭉 훑어보고 싶었다. 리브로피아 앱을 활용하면 대출한 책이 한 권 한 권 소개되는데, 내 대출이력 목록에는 자그마치 2,535권이 떴다. 언제부터 빌린 책 목록이 저장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가 궁금한 건 최근 1년간의 목록이었다.


분명 관리자 엑셀 한 방이면 다 해결될 것 같아 사서에게 도움을 구해보기로 했다. 10년 이상 동네 도서관을 이용했지만 사서에게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 사사로운 도움도 요청한 적이 없다. 하지만 사서가 '바코디언(책에 바코드 작업을 하는 사람)'을 넘어서야 내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사용자로서 솔직히 목록 하나 보자고, 가족 한 명 한 명 홈페이지에 가입하기 귀찮았다. 또 자꾸 잊어버리는 아이디와 비번을 다시 찾아보는 것도 번거로웠다.

관리자라면 바로 서버에 접근하여 목록을 뽑을 수 있다는 걸 짐작하고 다음에는 로그인해서 찾아볼 테니 이번에는 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가 1년 동안 빌려보았던 책 목록을 엑셀로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한 남자 직원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내가 다른 사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우리 가족 전체의 대출 목록이 담긴 엑셀 리스트를 찾아 바로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대출 이력을 보니 2020년 5월 중순부터 2021년 7월 중순까지 약 14개월간 620여 권의 책을 읽었다. 아이들 도서관 카드까지 이용하여 내가 빌린 책 다수 중 '이거야' 했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 아들러의 책이었다. 그랬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코로나 블루와 레드를 넘어 내 마음이 이정표 없이 둥둥 떠다닐 때, 인생에 지지 않기 위해 나와 마주 서는 용기를 가져야 했다. 그래서 뭐든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고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거들랑 원 없이 시도해 보자 했다.


로망 중 하나였던 책 읽기. 빌려 읽으면 되지, 왜 사느냐며 10년 넘게 잔소리를 듣다 백수가 되고 나니, 이제 더 이상 책을 사지 않는다. 최신간은 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한 달 기다리며 도서관에 갔고, 책을 빌려 읽었다. 밑줄을 긋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메모를 남기려 애썼다. 하지만 그 흔적들은 체계적이지 않아 집 구석 구석으로 흩어졌다. 어떤 때는 음성 메모, 어떤 때는 포스트잇, 어떤 때는 노트. 책 메모는 냉장고 앞에, 화장실 문짝 앞에, 때로 손글씨로 둔갑해 내 삶의 공간에 드리웠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여기저기 책 메모를 하면서 읽고 반납하기를 계속했던 1년, 계산해보니 하루 1.5권을 읽은 셈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네.


내 취향은 자기 계발, 동기부여, 리더십 서적이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가지고 가자 했던 대학 때 배운 문학책까지 다 버렸어도 살아남은 건 리더십 책이다. 어쩌다 내 가족들은 책을 읽는 걸 싫어하게 되었을까. 아니, 책이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알지 못할까. 책 읽는 엄마 옆에서 자란 아이들은 책을 좋아한다는 말은 다 화려한 마케팅 전략이었던가.


삶이란 너무 진지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허비할 수 없다 생각했기 때문일까. 대출 목록에서 소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 때문에 빌린 소설 말고 내가 읽고 싶어서 빌린 소설은 없다. 소설은 대학 때 과제로 읽었을 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읽은 게 아마도 창문 너머로 도망친 100세 노인인가 그랬던 것 같다. 하룻만에 다 읽으며 어찌나 깔깔거렸던지... 나중에 영화로도 보았는데 책 보다 시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가가 흘려 놓은 단서를 찾아가며 읽는 재미, 그건 소설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제 시간이 나면 소설을 좀 읽고 싶다. 삶이 너무 비극이라 소설에서 구현된 상상의 세계에서라도 마음껏 뛰놀고 싶어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마당에 마지막까지 진지하고 싶지는 않고, 즐겁게 살고 싶다.


건강서적은 참 많이도 빌려 읽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어찌나 의견이 다르던지... 나중에는 한꺼번에 다 펴놓고 비교 분석할 정도로 관심이 많이 갔다. 내 건강을 어느 한 사람의 의견에 맡길 수 없어서였다. 건강 관련한 책을 읽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었던 건강검진을 했다. 창피해서 20년간 가보지 않았던 비뇨기과에 갔고, 대항문과에 갔다. 치질 수술을 했다. 건강을 생각하며 섬유소 섭취를 늘리고 물을 2리터 마시며 하루하루 내가 먹는 것을 기록했다. 밤마다 땀이 나도록 걷고 달렸다.


마을공동체 책과 글쓰기 책을 읽었던 것은 내 인생을 몰빵한 마을공동체 활동, 10년의 세월을 정리해보고 싶어서였다.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이대로 끝나기에는 너무 안타까웠다.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니 책만 읽고 도통 글은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도서관 글쓰기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어찌 되었든 글쓰기를 조금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외부에 나를 맡긴 셈이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정작 쓰려던 마을공동체 책은 쓰지 않고 지나온 인생을 정리하는 글을 썼다. 한마디로 홧김에 썼다. 사춘기 아이가 갱년기 엄마 말 끝마다 하는 말대답이 싫어서 누가 이기나 볼까 하는 심정을 아는가. 말을 안 들으니 글로 남겨 나 죽은 후에라도 읽게 할 심산이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대상이었는데, 쓰다 보니 점점 대상이 넓어졌다. 아이에서 남편, 친정엄마, 시어머니, 이웃, 교회, 치료실 선생님, 마을공동체, 사회... 면전에서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글로 풀어쓰며 치유의 과정을 경험했다. 개뿔 못난 글도 약이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 인생을 마을공동체보다는 글쓰기에 몰빵 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도록 지금은 이 신비의 약에 취해있다.


요리책도 상당히 빌려 보았다. 아니, 분명 읽으려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좀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볼까 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읽는 것과 요리를 하는 건 다르다. 인테리어 관련 책을 수십 권을 읽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정리 정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제 그런 효과 없는 책은 그만 봐야지 하면서도 손이 자꾸 간다. 내 평생 절대적 열등감의 근원이었던 요리, 그런 요리를 읽기만 하다 어느 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오십이 다 되도록 관심 없던 한식 조리 과정을 등록해 버렸다. 코로나라 수강 인원이 적으니 강사가 좀 더 알려주겠지, 하는 마음도 강좌 등록을 유도했다. 누가 야채 썰기와 콩나물밥 짓기를 배우자고 돈을 내겠는가. 그러나 기초를 배우겠어, 제대로 배우겠어 하면서 한식조리 과정에 등록했다. 내게는 너무 높은 문턱이라 넘을 수 없었던 한식 조리. 막상 용기를 내 배우기 시작하니 시간이 흐를수록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든다. 시간만 투자하면 돼! 기초과정을 배우기 시작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요리에 대한 열등감은 벗어났다. 마치 자전거를 못 타 창피한 성인이 자전거 배우기를 시도해 3일 만에 배우고, 별거 아니네 했던 것처럼 나도 그랬다. 별거 아니고만. 진작 배울걸 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연습을 계속한다.


1년간 매일 읽었지만, 읽어도 읽어도 해소되지 않는 욕망은 지금도 여전하다. 종일 도서관에 있고 싶다. 읽고 쓰고, 읽고 쓰고... 그런 직업이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누군가 정성 어린 지도를 해주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다. 다시 한번 20대의 그 시절로 돌아가 나를 아껴주셨던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싶다. 하지만 이제 선생님은 없다.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읽고 쓰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학점에 매여 잘 써야 했던 압박감이 너무 심해 늘 열등감이 심했던 나. 그 압박감은 다 잊어버리고 그립기만 하다니. 다시 한번 그 시절처럼 책 속에서 나를 마주 대하며 50대의 인생을 새롭게 맞이하고 싶다. 읽고 싶은 욕망이 사라질 때까지 읽고 싶다. 왜 읽고 싶은가. 책 속에서 무엇을 찾고 싶은가. 책 속에 길이 있다는데, 나도 그 길을 한 번 보고 싶어서이다. 그 길을 직접 걸어가고 싶어서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 그 길을 찾아가서 걸어보고 나는 삶의 감사를 배우고 싶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향기, 사랑을 배우고 싶다. 신이 우리에게 주었다는 그 사랑을 배워보고 싶다. 삶이 선물이라는 그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얻고 싶다. 그런 건 책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 있다고 말하면 나는 답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봉사하지 않았냐고. 그래서 내가 실천하지 않았냐고. 나는 지쳤다. 지친 내 어깨를 다시 실천이라는 말로 짓누르지 말라. 제발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와 당신이나 가서 실천하세요. 내 인생의 황금기를 사랑과 봉사, 실천이라는 것에 몰빵해 지금의 나는 너덜너덜해졌으니. 바닥난 내 영혼을 다시 채워 줄 수 있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는 것, 아닌가요? 책 속에 있는 길을 보고 싶을 뿐이니, 저를 그 길로 안내해주세요. 그 길을 찾으면 나는 다시 삶을 마주하며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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