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레시타티브(서창)-엄마의 독백
"엄마는 진지충이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난 화가 났어. 하지만 부인하기 힘들더구나. 난 진지충 맞아. 여덟살 때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으니까. 지금까지 항상 따라다니는 고민거리 중 하나가 죽음이란다.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은 내 인생의 주제거든.
2016년 어느 날이었어. 마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핸드폰으로 영상 만들기였다. 아주 짤막한 10분 내외의 동영상을 제작해 엄마들만의 독립영화제를 하자고 했었지. 그 때 죽음을 주제로 유언장을 작성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팀이 있었단다. 우리 마을이 ‘학습마을’이었기 때문에 나는 ‘학습’을 주제어로 선택했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총괄을 맡았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어. 하지만 죽음을 주제로 가족과 소통하는 그 팀이 내심 부러웠단다. 내가 총괄 책임자만 아니었다면 나 또한 죽음을 주제로 영상을 제작했을 거야.
내게 ‘엄마는 진지충’이라고 했을 때 크게 화를 냈지.
“어떻게 엄마를 벌레로 표현할 수가 있니? 어떻게 그렇게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냐? 생각 좀 하고 말하란 말이야.”
“다른 애들도 다 쓰는 말인데 왜 그래? 그러니까 엄마를 진지충이라고 하는 거야!”
너는 억울해 하면서 막 울었지. 시간이 흐른 후 너희들이 쓰는 ‘진지충’의 의미를 알고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꽉 막힌 엄마라서 네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실은 네 말마따나 난 인생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라서, 허를 찌르는 네 말이 야속하게 들렸다.
살아가는 동안 아주 가끔은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단다. 내가 ‘인상파’임은 어쩔 수 없다고, 내 인생을 들여다보면 내가 어떻게 인상을 팍 쓰고 다니지 않을 수 있겠냐고 말하고 싶었지. 언젠가 한 번쯤은 너와 진지하게 얘기를 하고 싶었어. 엄마도 너한테 이해받고 싶었으니까. '그런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막연한 생각만 했다.
무슨 말만 하면, 요즘 너는 “뭔 개소리?”라고 하는데 말야. 그 옛날 나를 ‘진지충’이라고 할 때만큼 화내지는 않아. 하지만, 툭하면 ‘뭔 개소리’라니. 너무 심하지 않니? 억울한 마음에, ‘그래, 내 책 제목은 [엄마의 개소리]다. 기어이 [엄마의 개소리]로 출판해야겠다고 말했지. 아빠는 그러더구나.
“툭하면 하는 말 또 있잖아. 뭔소리?”
아빠와 난 한바탕 웃었어. 엄마의 개소리와 뭔소리, 출판은 하지 말라더구나. 하지만 마냥 세월만 보낼 수 없어 엄마는 즉시 글을 쓰기로 했다. 물론 책을 좋아하지 않는 너에게는 글보다는 짧고 굵은 영상이 좋다는 걸 알아. 그런데, 비주얼이 안좋아서말야. 영상 만들기에 취약한 나한테는 글도 괜찮은 수단이야.
너와 네 동생이 하도 ‘뭔 개소리?’를 짖어댔기 때문에 이 글을 쓸 수 밖에 없었어. 왜냐고?
난 늘 말하잖아. 엄마는 아빠랑 결혼하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도서관이나 서점에 나들이를 가고, 식탁에 앉아 서로의 생각을 알기 위해 토론하는 가족이 될 줄 알았다고 말야. 그건 지금도 내가 허공 속에 부르짖는 산산이 부서진 꿈이라는 걸 알아.
그래서 이 책이 출판되어도 네가 읽을 가능성은 희박해.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야. 항상 바쁘니까. 예의상 아빠 책장에 꽂히긴 하겠지만, 읽기까지는 얼마의 세월이 필요할지 알 수 없지. 그래서 마음 놓고 내 개소리를 지껄이기로 했다. 자, 본격적으로 아주 합법적인 내 소리를 들어보렴.
*사춘기 딸에게 갱년기 엄마가 쓴 글, [엄마의 개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