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1990년대 엄마 젊었을 때 사람들은 “어차피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니, 하고 후회하라”고 했다. 그게 뭔지 아니? 결혼이야. 비혼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대학 철학시간에 교수님께서, "대한민국에서 10대 미혼모와 40대 미혼 여성 중 누가 더 힘들겠는가" 생각해보라고 했을까.
여자 교수 중에는 싱글, 돌싱인 분이 꽤 있었다. 당시에 여자가 이혼을 하고 혼자가 되면 '분명 어딘가 문제가 많을 것이다' 생각하던 때였다. 돌싱도 아닌 40대 싱글인 교수님이 그러시더라.
"아파트 경비 아저씨까지 내연녀는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 봐. 보수공사 때문에 집안에 한 번 들어왔는데, 화장실 칫솔까지 몇 개 있나 보더라고. 아버지가 다녀가실 때 사용하는 칫솔을 놔두었는데 말이지. 나중에 대학교수라는 우편물을 보고서야 아주 약간 시선이 달라졌어."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대야. 사람들은 후회하게 될 것이니 결혼은 가능하면 하지 말라고 한다. 특히 여자들에게 '결혼은 손해'라고 말한다. 너도 그렇게 말했지. 결혼은 절대 안 할 거라고. 엄마의 삶을 보았으니까. 엄마로서 나는 자타공인 빵점 엄마니까.
언젠가 네 숙모는 말했지.
"결혼을 왜 안 해? 세상에는 상냥하고 멋진 남자도 많아. 꼭 그런 남자 만나 결혼 해."
숙모도 요즘 갱년기가 시작되는 것 같던데 지금도 같은 말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 분명 세상에는 멋진 남자도 있고 멋진 여자도 있다. 다만 이것도 타이밍이다. 관계도 시간의 파도를 타고 환경의 영향을 받아. 죽고 못 살 것처럼 좋은 때가 있지만 죽여버리고 싶을 때도 있어. 여러 주변 환경이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나는 기독교인이라 하나님이 허락한 특별한 사람만 결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도 바울처럼 말야. 그런 계시를 받지 않는 이상 평범한 사람은 꼭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브리'를 쓴 프란시스 쉐퍼부부의 영향을 받아 신앙과 관심사, 취미가 비슷할수록 좋다고 생각했지. 아빠는 딱 그런 사람이었다. 기독교인이고 평생학습과 자원봉사까지 딱 맞는 드문 사람이었어. 거기다 엄마의 가족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화목함’이 있는 가정으로 보였다. 물론 이 관계는 나중에 어그러졌지만, 그때는 형제간의 우애가 아주 좋아 보이는 집이었다. 내 손상된 아킬레스건을 재건시켜주는 기도제목에 딱 맞는 사람이었어.
네가 중학교 3학년이 된 어느 날이었지.
"아빠는 딱 여자들이 싫어하는 스타일이야. 진짜 가부장적이야. "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조금 놀랐다. '아빠한테 얼마나 실망했으면 얘가 이런 생각을 할까?' 하는 마음 보다, 이제야 드디어 ‘우리 아이가 남자 보는 안목이 생겼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아빠도 엄마만큼 육아와 집안일에 서투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엄마 생각에는 밖에서 에너지를 100% 다 쓰고 집에 돌아오니 우리에게 줄 에너지는 없었어. '남자가 그렇게 사회생활 안 하면 어떻게 인정을 받겠냐, 다 그게 돈을 벌기 위해서다' 하실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와 점점 다른 가족이 되어가는 걸 아빠는 모른다. 하기야 우리도 각자 방콕하다 닭복음면 먹을 때나 얘기하지. 닭살 돋우는 우리가족, 화이팅이다!
너는 알아서 스스로 컸다고 말할 만큼 엄마가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첫째라서 마루타였다는 것이었지. 동생이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엄마의 삶을 보면 공부 잘했어도 소용없다고.
동생이 있다는 환경을 네가 바꿀 수는 없다. 그러니 억울함은 버리는 것이 좋다. 네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은 그냥 받아들여라.
현재 엄마는 전업주부로 살고 있으니, 학교 공부가 가치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공부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길러졌던 학습 능력만은 지금도 잘 써먹는 중이다.
결혼이야 안 해도 되지만, 공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공부란 네가 죽을 때까지 해야 괜찮은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게 되거든 그 순간부터 바로 공부부터 하렴. 내일부터 아닌, 오늘 당장 시작해라. 오늘도 시작하기 좋은 날이야. 다만 실속있게 공부하렴. 몸으로 하는 공부이든 머리로 하는 공부이든, 배우고 익히며 네 삶에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그런 공부를 하렴. 공부란 끝이 없는 것이지만 분명 네 삶을 보상 해줄 것이다. 그래서 ‘평생학습’이라 불린다.
*사춘기 딸에게 갱년기 엄마가 쓴 글, [엄마의 개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