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먹으세요

아스퍼거 아이를 키우며

by 조이스랑

중학교 1학년인 둘째 아이는 요즘 '처' 먹다는 단어에 꽂혔다.

그런 말은 상대방을 무시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몇 주 전부터 여러 번 주의를 주었지만 소용없다.

그 어감에 이미 푹 빠져 한창 재미를 느끼는 중이다.

유튜브나 인터넷 어디선가 보았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사용하는 말이 아니니까.


주말 오후 맛있게 점심을 먹다가, 결국 아빠 앞에서 "처먹을게요."라는 말을 뱉고 말았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싸늘해졌고 남편은 화를 냈다. 요즘 아이들 표현으로 급발진했다.

재밌으라고 한 말인데, 아빠가 화를 내니 아이는 바로 울먹이며 아빠보다 더 화를 냈다.

"죄송합니다."가 나와야 하는데, 자신보다 더 크게 화를 내는 아이 때문에 남편은 더욱 화가 났다.

"그런 말은 어른한테 쓰는 게 아니라고! 아빠 앞에서 '뭔 처먹을게요'야?"


이런 상황을 한 두 번 겪은 게 아닌데, 화를 내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이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엊그제 말했는데 한 귀로 듣고 흘린 건가.

사회성이라는 게 무엇일까?


나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를 소도시로 진학했다.

1학년이 되어 중간고사를 볼 때까지 딱히 친구가 없었다.

그냥 쉬는 시간에도 공부했고, 밥은 제 자리에 앉아 먹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전 학년 성적 석차가 교실 안팎으로 붙었다.

친구 없이 공부만 했는데, 공부를 못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나는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내게 와 말을 걸었다.

과연 사회성이 있었던 아이였을까, 생각해보니 그다지 사회성이 풍부한 아이는 아니었다.


시골에서 자랄 때는 모든 동네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았으니,

공부를 잘 할리 없었다. 노는 데 정신 팔려 있는데, 무슨 공부를 하겠는가.


중학생 때부터는 달라졌다. 친구랑 놀 시간이 없었다.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면 밤 9시가 되었고 스쿨버스를 타고 한 밤 중 집에 돌아왔다.

도시로 고등학교를 가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닦달하지 않았다면, 친구랑 놀지 않았을까.

대학생이 된 후에도 내 생활은 큰 변화가 없었다.

장학금을 받아야 하니, 학교, 도서관, 아르바이트(과외), 교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 밖을 나와 사회생활을 할 때 회식하고, 수다 떠는 시간이 힘들었다.

항상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런 시간이 아까웠다.

책을 읽는다거나 여행을 할 때 역시 적어도 뭔가 배우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좋았다.


갱년기가 된 지금 다른 이들과 어울려 수다를 떠는 시간이 참 즐겁다. 동네 엄마들과 어울려 맛집에서 만나 온갖 얘기를 하는 게 신세계 같다. 그럼에도 혼자 있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혼자여서 마음 편한 걸 부인할 수 없다. 무엇인가 생산적인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같이 있어도 완전히 공감하지 못할 때 목적 없는 수다보다는 목적 있는 수다를 하고 싶은 나의 욕망이 보인다.


아스퍼거 증후군인 아이가 사회성이 발달하려면 친구랑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치료실을 다니며 선생님과 1:1 수업을 했다.

언어, 인지, 작업, 음악, 미술, 연극... 뒤에는 모두 '치료'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런 치료 수업들이 효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리 아무리 가르치려고 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게 바로 상동 행동, 상동 언어이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상동 행동, 같은 말을 반복하는 상동 언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타난다.

상대방의 반응을 다 알고 있어도 똑같이 말한다.

똑같은 질문을 계속한다. 상대방이 무반응이면 대답도 자기가 알아서 한다.


유튜브를 즐겨보는 우리 아이에게 요즘 상동 언어는 "처먹다"가 되었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아이가 얼마나 재밌게 혼자 그 언어를 상상하면서 혼자 씩 웃는지. 그게 하루 종일 아이 머릿속을 점령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굴 만나지 않더라도 혼자 그 언어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은 상동 언어를 더욱 강화시키는 시간이다. 그래서 같이 대화라도 나누려고 하면, 아이는 "처먹을게요.", "처먹으세요." "처먹어라." "쳐드세요."를 즐겁게 말한다.


엄마인 나는 그 언어가, 상대방을 무시하는데 주로 쓰는 말이라고 반복해서 주의를 주었다.

그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그런 막말은 상대방 무시하는 말로 들리니 주의하라고 그리 말했는데... 안 된다.


아이가 그 말을 알아들으면 정상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취약점을 다 아는 아빠도 이해하지 못해 급발진하는데,

집 밖 다른 사람들은 화를 내지 않고, 아이를 받아 줄 수 있을까?


유튜브에서 막말하는 사람들 채널에 아이가 접속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한 번 접속하면 계속 연결되는 유튜브 인공지능으로 비슷한 채널에만 연달아 노출될 뿐이다.


조회수를 높이려고 재밌게 막말하는 어른들은 다 정상인데,

그 언어를 날마다 재밌게 따라 하는 아이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당신 주변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거나, 똑같은 질문을 계속한다면,

사회성이 한참 부족한가 싶고, '참 이상하네.'라는 생각이 들면

아스퍼거 증후군을 의심해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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