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렸을 적에, 마징가 계보학
아빠는 결혼하기 전 내게 이런 얘기를 했어.
“딴 건 몰라도 우리 어머니 문화 수준은 참 괜찮은 분이에요.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분이니까 서로 잘 맞을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결혼 전에도 후에도 잘하지 않았어. 누구나 꺼내기 힘든 삶의 이야기가 있지. 어떤 이야기는 무덤까지 혼자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단다. 나는 아빠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아빠랑 한동네에서 자란 형이 시집을 냈다면서 [마징가 계보학]이라는 책을 사 왔단다. 지레짐작했던 아빠의 불우한 성장기는 그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지. 아빠가 살았던 동네는 재개발지역이었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올라야 다다르는 아빠의 집. 서울 물정 몰랐던 나는 처음으로 봉천동 달동네만 달동네가 아니란 걸 알았어. 혁웅이 형은 그 동네를 탈출하고 싶어서 공부를 했고, 마침내 성공했다는데, 아빠는 왜 여태 그 동네를 탈출하지 못했나 싶었지.
내가 일부러 묻지도 않았고 아빠도 꺼내지 않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 가끔은 할머니께서 ‘그 어려운 환경에서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했던 동네. 아빠 어린 시절은 마징가 계보학에 고스란히 시어로 승화되어 있었지. 눈물 나게 슬픈 이야기들이 재치 있는 풍자 속에서 저마다의 사연으로 소개되었는데 나는 울 수 없었단다. [김약국의 딸들]을 처음 읽었을 때 내 삶이 그렇게 비극적이 아니다는 안도감이 들었는데, 마징가 계보학도 만만치 않았다.
분명 행복한 어린 시절의 추억은 일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거야. 뭐랄까. 아무리 풀고 싶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 같다고 해야 할까. 삶의 고비마다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혹시 이건 내가 어렸을 적 겪었던 불행한 환경 때문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자꾸 연결고리를 찾아 되새김질하게 부추기거든. 오죽하면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나왔겠니. 한 번 지나갔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지나간 죄를 다시 들추며 고백하라는 건지 종교도 비슷한 것 같더라. 고백하자면 나도 후자이다. 그러나 내가 자란 동네에는 혁웅이 형 같은 사람이 없기에 영영 읽히지 않을 것이다.
*사춘기 딸에게 갱년기 엄마가 쓴 글, [엄마의 개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