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글은 아직 부족해요

개떡 같이 썼어도 찰떡 같이 알아들었으면

by 조이스랑

오늘 출판사로부터 거절 메일을 확인했다. 당연히 거절을 예상했지만, 그래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질문 하나. 거절이 예상되는 원고를 왜 보낸 거지?

생각해보면 대학 때 리포트 과제로 A4 3장짜리 글을 쓸 때도 여러 번 고쳐 쓰기를 반복했다.

A학점 받으려면 여러 자료를 읽어보고 진술의 방향이 맞는지 며칠 동안 고민해서 고치고 또 고쳐야 했다. 적어도 최소 세 번 이상은 고쳤다.

거절당한 이번 글은 짧은 A4 세 장도 아니고, 30장 넘는 글인데 시간에 맞춰 급하게 쓴 초안이었다. 그렇다면 허술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란 뜻이다. 내가 봐도 독자 없는 글이었다. 그런데도 여러 번 고쳐 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듬어서 다시 쓰기를 회피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순위에 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변명을 하자면, 콕 집어서 이렇게 고쳐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노력에 대한 보상이 없어서?

중요하지도 않고 시급하지도 않은 재밌는 다른 일이 많아서? 이걸 안 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부끄러운 자신의 글을 마주 대할 용기가 없어서? 다 맞는 말이다. 학생이 아니라서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다고 고치는 법을 샘플링해주는 사람이 없다. 주부라 아이들 끼니 챙기다 보면 하루가 간다.


좋을 글을 쓰려면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이 글의 목적이 무엇이지? 내가 정말로 쓰려고 했던 핵심은 무엇이지? 목적에 부합한 글인가?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연관되어 있는가? 주절주절 구체적인 상황이 이해되도록 썼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생략되면 공감하기는 어렵다. 마무리는 적절한가?

글 한 꼭지 한 꼭지마다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맞는 글인지 처음부터 시간을 가지고 다시 뜯어봐야 한다. 아, 이런 작업이 고통이겠지만, 음악가가 무대의 긴장을 즐겨야 하듯, 나 또한 글을 고치는 고통과 긴장을 즐길 수 있어야 하리라.


내가 쓴 글의 목적은 무엇이지?

갱년기 엄마가 사춘기 딸에게 쓴 인생 이야기, 한 마디로 세대 차이 나는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딸의 이해를 받고 싶어 쓴 글이었다. 엄마가 이렇게 살다 보니, 너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어. 미안해.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 이 말을 하고 싶었나? 이건 엄마 실수였고, 이건 엄마 아픔이었고, 이건 보람이었어. 깨닫고 싶은 건 네가 알아서 깨달아. 개떡 같이 썼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 이런 거였나?


그런데,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은 시장에 나오는 글은 돈을 벌어주어야 한다.

이걸 알아두어야 해. 팔리는 책이어야 책이 되는 거야. 글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10대 딸이 40대 엄마의 글을 돈 주고 사서 읽겠어? 당연히 안 읽겠지. 그래서 독자가 책을 안 읽는 층은 거절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럼 독자층을 바꿔야 해. 그냥 10대 딸 한 명을 위한다면 세상에 나올 수는 없어.

세대 차이나는 10대 딸을 키우는 갱년기 엄마의 심정, 그래서 독자는 10대가 아니라 40대, 50대 엄마들이 되어야 하는 거야. 그런 엄마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40대 엄마의 살아온 이야기와 10대 딸을 키우는 어려움이 같이 버물려 가야겠지. 보람과 어려움, 그러면서도 개인적 이야기가 보편적 공감으로 나아가야만 해.

오늘도 주절 주절 혼자 속마음 쓰고 끝난다. 글 같이 쓰는 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친구 찾아야겠다.

지금은 일단 질문을 던지고 그냥 쓰자. 일단 쓰고 보자. 구성만 생각하다가 하나도 못 쓰고 또 하루가 가겠다.



작가의 이전글명랑한 중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