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줄은 몰라도 읽는 눈이라도 있었으면

에세이도 스타일이 있어

by 조이스랑

구구절절 일상의 사소함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는 분명 내 취향이 아니었다. 삶의 철학이 진하게 물들여 있던지 오프라 윈프리처럼 아주 알려진 사람이 감동적인 언어를 쏟아내야만 겨우 시간을 내서 읽었던 몇 안 되는 에세이. 시, 소설, 에세이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던 것은 대학 시절 잠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인물을 분석하고 토론했던 그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는 않았다. 고민 많았던 청춘, 내게 항상 좋은 질문을 주었고, 명쾌한 저마다의 답에 항상 감동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난 그 길을 계속 갈 수는 없었다. 졸업 후 문학이라는 카테고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작가의 의도를 탐할 시간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오십이 다 되어갈 때까지 내가 공들여 읽은 책은 대부분 자기 계발서, 동기부여, 리더십 관련 서적이었다. 그러던 내가 다시 문학 카테고리를 기웃거린다. 시간만 있다면 원 없이 빠져보고 싶다면서. 시, 소설을 쓸 깜냥은 안 되니 나중에 배워보자 싶고, 지금은 그냥 에세이, 쉽게 쓰는 에세이나 읽어보자. 만만해 보이는지 에세이를 기웃거린다. 일단 많은 에세이를 읽다 보면 글의 구조가 보일 거야. 내 목표는 초심자답게 읽는 눈을 갖기 위해서였다.


에세이를 읽다 보니 이 책 끝까지 읽어야 하나, 고민되는 책이 한 두 권이 아니다. 처음엔 작가를 존중하며 뭔가 시작하면 끝을 보고자 하는 내 성향답게 끝까지 읽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요즘은 지루하면 그냥 책장을 덮는다. 아니 벌써 쓸 줄은 몰라도 읽는 눈이라도 생긴 건가? 아니면 내 취향의 글이 아니어서 그런가? 노래는 못하면서 듣는 귀만 발달한 음악 애호가처럼 지적질이다. 공감 가지 않는 에세이를 향한 지적질,

'출판사 호황일 때 출판했나 보네. 요즘 같은 불황에는 어림도 없어. 자비출판인가?'

'뭐야. 지난번 읽은 책은 번역판을 비스무리하게 살짝 돌려놓은 느낌이잖아.'

'이거 그냥 일기인데, 왜 나온 거지?'

'제목은 근사한테, 내용 공감 포인트가 뭐라는 거야?"


그러면서도 내심 부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종이책이잖아.'

'읽는 눈도 없냐? 글빨이 되니까 책이 된 거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자비출판이라도 세상에 나왔겠어?'

'감동이 없는 건, 읽는 네 마음이 문제라는 거야. 그렇게 삭막해 가지고서는! 뭔 글을 읽어도 감동 근처나 가겠어?' 결국 내 탓으로 끝난다.


내 에세이 취향이 뭔지도 모르면서 날마다 서가를 기웃거렸다. 이 책 저 책 뒤적뒤적. 읽다 말다 읽다 말다. 그러다 만났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 취향을!


생가지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건 내 취향이다. 어릴 적 시골 마당에서 따 먹었던 가지. 손가락만 한 어린 가지도 내가 좋아한다면서 챙겨주셨던 할머니. 할머니와 어릴 적 추억이 만나 지금도 나는 생가지를 먹는다. 아무리 사람들이 이상하게 먹는다며 한소리를 해도 생가지를 고추장에 푹 찍어 먹는 순간 나는 감동한다. 사랑을 먹는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향기와 사랑의 추억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다. 행복을 먹으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에 푹 빠진다. 허기를 채운다.


아, 에세이! 생각해보니 내가 그리워하는 에세이 취향이 있었다. 장영희 선생님의 에세이는 읽어도 읽어도 감동이었다. 아니, 왜? 그건 선생님과 같은 공간, 시간 아래 한 때를 보내서였다.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함은커녕 감동인 것은 그 분과의 향수가 남아서이다. 지적질은커녕 나는 절대 못 따라갈 거야, 그러면서 또 읽는다.


그런데, 서가를 서성이다 색다른 내 취향을 알아버렸다. 장영희 선생님과는 완전히 다른 풍이다. 시리즈로 빌렸다.

'오, 이거 정말 재밌는데...'

그렇게 읽다 갑자기 에세이에 로망이 생겨버렸다.

'나도 이런 풍 이었으면... 근데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데...'


글과 그림이 재밌게, 읽는 눈도 편하게 디자인된 에세이. 글을 읽다 빵 터지는 순간에 마음껏 낄낄거리게 만드는 글, 그게 바로 내가 로망으로 삼아버린 에세이 취향이다. 진지하다 못해 심각한 글을 좋아하더니 갱년기 때문인가. 웃고 싶다. 웃으면서도 철학이 담긴 글, 둘 다 잡아주는 글. 그런 글을 계속 읽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글을 마음껏 쓸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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