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안녕하세요

IMF시절 모두가 힘들었다는 시절

사실은 우리 집에는 해당되지 않아

우리는 신용격색과 외환위기에 따른 대량해고 기업도산으로 잃을 게 없었거든


아빠는 새볔 5시 30분 알람이 시작되려는 순간 일어나서 가족이 깨지 않게 최대한 동선을 줄이고 민첩하게 옷을 입고 숭늉을 한 사발 들이킨다. 적막하고도 쓸쓸한 어둠 속에 화장실 물 내려가는 요란한 소리에 묻혀 하루벌이를 위해 문밖을 나서는 아빠는 그렇게 오늘도 묵묵히 일터로 나간다.


일이 있든 없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을 그렇게 나갔다.

무능하고 억세며 꼬장꼬장 지저분한 아빠는 성실하고 정확했다

굵게 패인 주름과 땀과 추위에 찌든 살들의 꼬릿한내 속에서도 오뚝하고 날카로운 눈매 속에 믿음이 있었다.



보잘것없는 아빠의 일

하찮은 아빠의 하루는 아빠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어떻게든 공부시켜 보겠다는 아빠의 의지로 빛이 났다.

아빠의 양어깨에는 나와 오빠가 올라타 있었다,


아빠가 사부작히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엄마가 들어온다. 중년 아줌마는 몸이 두루뭉술해서 뭔가 뒤뚱뒤뚱 어기적어기적 새어 나오는 소리를 잡을 수 없다. 그것도 잠시 요란한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엄마의 기척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엄마는 우리 아파트 서울우유아줌마다

주변이 깜깜할 때 사람들이 깨어나기 전에 배달을 마쳐야 하다 보니 이른 새벽에 나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에 내려서 수많은 계단을 225미리 작은 발로 디디며 집 앞 우유통에 넣는다.


두어 시간을 일하고 집에 와서 도시락 3통을 싼다. 입을 앙다문 채 감정변화 없이 주어진 일에 묵묵히다. 일사천리로 척척해내는 엄마는 강인하다.


요령 없이 성한 몸 하나 믿고 몸으로 살아온 인생

허무할 터인데... 내색 없다


"응 차~" 새어 나오는 신음과 함께 주변에 물건들을 집으며 간신히 일어나는

공사장에서 목각을 이고 나르고 , 계단 위를 날아다녔던 당신들은

신경이 눌러서 하반신 마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사들의 말을 듣고서야 아픈 줄 아는 미련한

고집불통 엄마아빠


- 나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저 앉아버리고 싶으셨을 텐데 아빠가 머라고 엄마가 머라고 그게 머라고

- 죄스럽습니다. 당연하게 해 왔던 따신 밥 따신 잠자리 등록금 걱정 없이 보낸 대학생활


어릴 땐 몰랐습니다.

뭔가 팍팍한 삶에 알려주는 이 없지만 우리는 침묵으로 살았습니다.

다정하지 못한 가정, 웃음이 사라진 숨 막히는 집안 분위기

눈을 보고 대화를 하는 것보다 바닥에 웅크려 팔베개를 하고 눈을 붙이고 있는 엄마의 등에다

혼잣말을 하는 것이 흔했습니다.

문제집 사겠다는 말도 목구멍에 돌멩이가 콱박혀 짜증과 볼멘소리로 해댔습니다.

주말이면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누워 과자를 먹어댔습니다.


엄마가 힘이 들어 몸에 붙여서 삶이 겨워서 비틀비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우리 삼 남매 아쉬운 소리 안 듣게 하겠다고 아등바등 살아오셨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흔이 넘은 나는 내 삶에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이제는 결실을 봐야 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달리라고 합니다.

남의 아이는 잘 큰다고 하는데 아직도 손길이 많이 필요하고 회사에서는 경력이 있으니 주어진 일도 쉽지가 않습니다. 이제는 어디다 묻기도 부끄럽지요.


초등학교 필독책 100인 위인 전집에 나오는 어떤 사람보다도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오신 당신들의

울림은 큽니다.

나와 동갑의 아빠엄마는

위축됨도 억울함도 없는 태연하고 당당한 뒷모습을 나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힘이 들면 엄마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어 집니다.

보고 싶어 한 번씩 점심시간에 잠깐 들여다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습니다.

삐삐삐삐 삑~

"안 춥나 밥은? 잠은? 옷이 얇니.."

나는 초등학생 아이가 됩니다.

"엄마 나 밥 안 먹어도 된다. 그냥 좀 누울래"

"아라따. 죽해 줄까? 고구마 있는데 좀먹어라, 지금 냄비 올리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말속, 뒤뚱뒤뚱 거위처럼 진도가 안 나가는 걸음걸이 그렇지만 씩씩한 우리 엄마는 오늘도 당신의 인생을 묵묵히 그리고 바르게 살아가십니다.


잠깐 누운 사이 귀에 피가 날 것 같은 쏟아지는 엄마의 말들로 나는 기운을 듬뿍 얻고 다시 사무실로 갑니다.

보통의 하루를 특별하게 느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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