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도 괜찮다.
일이 힘든 것일까
일이 하기 싫은 것일까
솔직하지 못하다
비겁하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뀔 때쯤의 초등시절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했다.
어렴풋이 떠올리기만 해도 꽤 긴 지문과
직관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땀배출이 잘 안 되는 내 피부조직은 덥거나
집중을 하고 나면
볼이 터질 듯하게 붉어 오른다.
근데 이번에는 창피해서 난감해서 아니면 민망해서
볼이 화끈 거림을 느낀다.
어울리는 직업에 주부가 나왔다.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였다
그저 뛰어노는 것만 할 줄 알았던 아이
그때 처음으로 감정이 나를 향했다.
그 어린 마음에도 내키지 않았지만 인정했다.
- 그래 나는 주부가 어울려
- 그냥 그게 맞을 것 같아
학년이 올라가고 그 후에도 몇 번 정도 더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했던 것 같은 데 결과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나는 장래희망이 주부가 됐고
지금도 주부타령이다.
- 아~~ 나는 그냥 살림이나 해야 할 사람인데..
- 안 맞는 일을 하니 이렇게 힘들다 휴
생각의 끝은 뜨끔하다. 어의도 없다.
몇 차례 진행한 검사 중에서도 굳이 젤 미성숙하고
오차범위가 넓을 것 같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일이 안 맞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
자신을 속이고 있는 셈이다.
나는 나를 안다.
어차피 관두지도 못한다.
이러면서 가장 오랫동안 다닐 거라는 것도 안다.
지금은 '그냥'이 필요한 때이다.
그냥 주어진 일을 하루하루 하자.
두루뭉술
세심하고 예민한 나를 깎아서
연필 한 타스에 줄 세워 앉아보자.
그 삶도 거저 되진 않더라
자신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고
또 시시 때때 올라오는 수많은 감정을
모르는 척 무심한 척 덮을 줄도 알아야 하고
무심코 반복되는 일상은 잠깐 회피해서
해결될 것이 없다는 것도 일러준다
참아보는 삶
싫지만 견뎌내는 삶
그 속에서도 분명히 배움은 있더라.
현실이 쓰다면 분명 그건 가장 적합한 처방전의
가장 강력한 약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