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도 못 하고 헤어진 내 고향

엄마가 사라진 날

by 안녕하세요

쨍하게 추운 겨울날 조용한 아침,
집박구리 한 마리가 유유하게 날개를 펄럭이며
산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마을을 찾아옵니다.


산 그림자가 머무는 스무 남짓한 가구의 산골 마을을
굴뚝에 피어나는 하얀 연기를 친구 삼아
평화롭고 고요한 지붕 위를
뱅그르르 한 바퀴 둘러봅니다.


해가 빨리 지는 겨울,
어스름이 내려앉은 새벽에
아침을 준비하느라 바쁜 부엌 옆방에는
얇은 창호지가 발린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찬바람에
코가 간질간질합니다.


뜨끈뜨끈한 구들장 아랫목을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삼 남매 미자네 집이 보입니다.


새까만 얼굴에 벌겋게 익은 볼을 한 채

잠들어 있던 미자는
학교 길이 구만 리라며 뭉개고 있는

오빠야들을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에 몸을 뒤척입니다.


눈을 꼭 감은 채
망부석처럼 떡하니 앉아 있는 두 오빠야들 때문에
엄마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더 거칠어집니다.


이불은 방구석으로 쭉 밀려나고
바지런히 차린 아침상이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알록달록 곱게 물든 꽃이 핀
동그란 양은 접이식 상 위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미리 만들어 두었던
짭조름한 깻잎무침과 김치,
그 옆으로 솔솔 김이 오르는 우거짓국,
그리고 밥 한 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밥 한 수저에 김치를 얹고
국 한 모금에 숨을 고르며
서로의 그릇을 힐끔거리다
괜히 더 크게 씹어댑니다.


서너 숟가락 만에 바닥을 드러낸 밥그릇을
박박 긁으며
한 술이라도 더 뜨려는 삼 남매는
이내 포기를 하고
수저를 내려놓습니다.


오빠야들은 아침을 먹고
눈곱을 손등으로 뭉갠 채
학교에 갔습니다.


아침 밥상을 물리고
부엌 옆 세 숫간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씻던
엄마도 사라졌습니다.


오빠야들이 돌아오는
산자락 밑 바위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흔들
돌멩이를 차면서 기다립니다.


지루해지면 작대기를 주어다가
오빠야들 얼굴도 그려보고,
손가락을 쫙 펼쳐서
모양 따라 작대기를 옮겨도 봅니다.


산속 마을에 짙은 어둠이 깔리면
그곳은 까막눈이나 다름없어집니다.

“할매, 오빠야가 안 와.
자꾸 깜깜해지는데 안 와.”


볼살이 폭 파인 할머니는
잠시도 놀라지 않은 얼굴로
건조한 목소리를 내뱉습니다.

“도깨비가 니 오빠하고 엄마하고 물어갔다.”


미자가 밟는 땅이 푹푹 꺼져
이리 고꾸라지고 저리 고꾸라졌습니다.

그 작은 몸덩어리의 가슴이 아픈지
가슴을 쥐어짜며
뒹굴기 시작합니다.


눈을 꽉 감고 입을 벌려
침이 흘러내리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 한참 숨을 헐떡이다
또 입을 벌려대는데도
소리가 없습니다.


한참 후에야
찢어지고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산들의 슬픈 메아리는
온 동네를 흔들어댑니다.

그 후 미자는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걷다가도 귀가 콕콕 쑤셔서
곧 고꾸라졌습니다.


아프니까
도깨비가
엄마를 보내줬습니다.


미자가 엄마 손에 이끌려
대구로 가던 날,
직박구리는 나뭇가지에 앉아
한참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굴뚝의 연기는 여전히 오르고 있었고
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그날의 경계로
그 마을은
미자의 삶에서
다시는 같은 얼굴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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