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유가 있을텐데 그래도 걸리는 마음
이제야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행동하기에 앞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다.
뭔가 찔리면
말이 먼저 질러 버렸다.
덕분에 뒤따르는 몸고생은
감자튀김 짝꿍 케첩이라고나 할까
그랬던 내가
말이 조금씩 늦어지면서 행동이 조금씩 굼뜨면서
간을 보고 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뱉어 버릴 듯한
얍삽한 혓바닥
그것을 우리는 적응이라고 부른다.
한 씨 집안의 며느리로 15년 차
이만하면 혓바닥 날름도 예술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바로 퉤 퉤 퉤
어머님은 대단했다.
막무가내였다.
그렇지만 억울하거나 서러울 게 없었다.
임신한 딸과 사소한 연락의 어긋남으로
손녀가 태어나는 날에도 딸을 보러 가지 않는 어머니
근데, 내가, 며느리 따위가, 뭘 바라겠는가?!
나는 그 이후로 어머니께 납작 엎드렸다.
감히 대들 생각을 못했다.
더러워서 고분 했다.
내 어머니지만 마주하기 싫어 순응했다.
장한 미자 ~ 완벽한 적응이다.
그런데 오늘은 15년의 짬빠에 나오는 간사함도
지금까지 한 귀로 듣고 흘리던 얍삽함도
이 찝찝함을 어찌하지 못하겠다.
어머니가 왕할아버지 그니까 어머니의 시어른댁을
안 가는 건 당연한 거다.
처음에는 의아했고 곧 익숙했으며
아이가 태어날 때 잠시 난감했지만
당당한 시어머니의 행동에 우린 또 당연한 거였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불쑥 던지는 당황스러운 질문에도
우리는 곧 침묵으로 익숙함을 만들었다.
아이들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어색한 날! 당연한 날이 되어가던 평온한 날
왕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흔넘은 왕할머니만 둔 체 홀연히 사라지셨다
- 제사는 어쩐다지? 울 아버님이 맏이인데..
- 명절에 왕할머니 혼자 어쩐다냐....
말부터 내뱉고 봤던 얕지 못한 미자는 없다
짱똘 굴리며 요리조리 눈치 살피며
따져보기 바쁜 미자는 입 밖으로 꺼내길 포기한다
모나지 않게.. 두루뭉술.. 한눈 감고.. 한 귀로 흘리고
노력한 미자는 몸이 편하다
제사도 안 지내고 왕할머니한테는 당일날 얼굴만
내밀면 되니까
"할머니, 안녕하세요~ "
미자는 뻔뻔하게 인사를 하고 지퍼를 잠근다
할 말도 없거니와 몸은 편하지만 입으로 싹싹
입 닦기에는
지도 찔리는 거다.
아흔 넘은 할머니 혼자서 차려놓은 제사 음식
그리고 혹시라도 올지 몰라 차려놓은 밥상
지금까지 쌓아온 영악한 갑옷이
껄끄러워진다.
짬빠 15년 차 미자는 그 와중에도 선뜻 전 부치러
오겠다는 말을 내비치지 않는다.
- 할머니 죄송해요 다음엔 제가 일찍 올게요
라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변해버린 미자
오늘은 맘 여리고 인정 많아 늘 손해만 보던
얕지 못한
미자가 그리운 날이다.
미자야 적응이라는 것도 이제 좀 적당히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