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깨닫지 못한 공허, 시작되지 않는 아침
D군의 하루는 언제나 느지막이 시작된다. 아침이라 부르기엔 이미 햇살이 기울었고, 점심이라 하기엔 몸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시간. 그는 눈을 떴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시계의 초침은 움직이고, 핸드폰 화면에는 알림이 떠 있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이불속에서 잠든 사람처럼 느리다. 그의 방은 조용하다. 커튼은 닫혀 있고, 햇빛은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 어둠이 불편하지 않다. 그에게 어둠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빛이 들어오면 세상이 그를 재촉하는 것 같아, 그는 커튼을 걷지 않는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핸드폰을 든다.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SNS에는 누군가의 일상, 누군가의 여행, 누군가의 웃는 얼굴이 올라와 있다. 그는 아무 감정 없이 화면을 넘긴다. 부럽지도,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다. 그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손끝은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밀고, 그의 눈은 그 움직임을 따라가지만, 머리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살아 있는 시체처럼, 움직이지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다.
그는 자신이 언제 잠들었는지 모른다. 어젯밤의 기억은 희미하고, 꿈과 현실의 경계도 흐릿하다. 그는 잠에서 깼지만, 사실은 여전히 '깨어 있지 않은'사람이다. 가끔은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내가 오늘 일어나야 할 이유가 있었나?"그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없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 내일도 똑같을 하루. 그는 굳이 일어나랴 할 이유를 찾지 않는다. 그저 시간은 흘러가고, 그 속에서 자신도 흘러간다.
부엌에서는 냉장고 모터 소리만 들린다. 그 소리는 그의 하루 중 가장 생생한 소리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물도 끓이지 않고, 밥도 짓지 않는다. 그는 식사를 건너뛴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 배가 고픈지조차 모른다. 그의 무기력은 나태함이 아니다. 그건 몸과 마음이 동시에 꺼져버린 상태다. '해야지'라는 생각은 수 없이 떠오르지만, 몸은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머리로 명령하지만, 몸은 그 명령을 거부한다.
그는 가끔 이렇게 말한다."내가 게으른 게 아니라, 그냥 힘이 없어."그의 힘이란 근육의 에너지가 아니라, 살아가려는 의지의 잔여물이었다. 그마저도 이제 거의 사라져 있었다. 시간은 흐르지만, 그의 하루는 정지되어 있다. 밖에서는 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출근하고, 누군가는 사랑하고, 누군가는 싸운다. 그러나 D군의 세상은 조용하다. 그에게 하루란 단지 '하루가 더 지났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의 방 안에는 어제 벗어놓은 옷이 그대로 있고, 책상 위 컵에는 식은 커피 반쯤 남아 있다. 냄새가 배어 있지만 치우지 않는다. 치워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게 '일상'이라 믿는다. '정리되지 않은 삶'이 이제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형태가 되어버렸다. 그는 한 번도 큰 실패를 한 적이 없다. 누군가처럼 폭력적인 상처를 받은 적도 없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문제였다. 그의 삶에는 극적인 계기가 없었다. 그는 너무 무난하게 살아왔고, 그 무난함 속에서 조금씩 의미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가끔 그는 말한다. "내 인생에는 제목이 없어."그 말은 자조 같지만, 사실은 정확한 진단이다. 그의 하루는 이야기로 엮이지 않는다. 시작도, 전개도, 결말고 없다. 그저 '존재하는 중'일뿐이다. 그는 아침을 시작하지 못한 채, 이불속에서 또 한 번 눈을 감는다. 다시 자려는 게 아니다. 그저 '지금'을 피하려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세상이 멀어지고, 생각이 희미해지고, 자신이 잠시 사라진다.
그에게 잠은 탈출구이자, 하루를 넘어가기 위한 장치다. 그는 잠들지 않아도 누워 있다. 시간이 지나면 밤이 되고, 밤이 지나면 또 낮이 된다. 그 흐름이 위로가 된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이 알아서 하루를 넘겨준다. 그건 그에게 가장 안전한 방식이었다. 살아 있는 척하지만,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는 삶. 그는 무너지지도, 회복하지도 않는다. 그저 멈춰 있는 사람이다.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그의 하루는 마치 정지된 영상 같았다. 소리도, 변화도 없고, 다만 시간이 조금씩 묻어나가는 화면. 그 화면 속에서 그는 천천히 희미해지고 있었다.
ㆍ움직이지 않는 시계, 멈춰 있는 몸
D군의 방에는 오래된 시계가 하나 있다. 탁자 위에 놓인, 건전지가 가 된 아날로그시계. 그 시계는 몇 달째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언젠가부터 멈췄고, 그 이후로 그는 건전지를 갈지 않았다. 그는 그 시계를 보며 말한다. "멈춰 있어도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시간은 흘러가니까." 그 말은 역설 같지만, 그에게는 완벽히 논리적이었다. 시간이 가는 걸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시간은 알아서 흘러가고, 자신은 그 흐름의 바깥에 있으니까. 그의 세계에서는 흐름이 곧 피로였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유일한 '평화'였다.
시계가 멈춘 이후, 그의 몸도 조금씩 멈춰갔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고, 저녁이 되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불을 걷는 일이 큰 결심이 되었고, 물 한 잔을 마시는 게 귀찮았다. 그의 손끝은 서서히 힘을 잃었고, 그의 어깨는 구부정해졌다. 그는 자주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등은 굽었고, 팔은 무릎ㅁ위에 느슨하게 올려져 있었다. 그 자세는 한 때 휴식의 모양이었지만, 이제는 정지의 형태가 되었다. 그의 몸은 쉴 때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의 근육은 점점 굳어갔다. 움직이지 않으면 통증이 줄어들 줄 알았지만, 오히려 통증이 더 깊어졌다. 가만히 있어도 허리가 뻐근했고, 손끝이 저렸다. 몸은 '움직여야만 살아 있다'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의지는 그 신호를 듣지 않았다. 몸은 생존을 원했고, 마음은 정지를 원했다. 그 두 욕망이 맞부딪ㄹ히는 곳에서 그는 매일 무너졌다. 가끔 그는 거울 앞에 섰다. 피부가 창백하고, 눈 밑이 푸르다. 그러나 그는 놀라지 않았다. 그 얼굴이 점점 낯설어져도, 그는 무덤덤했다. 그에게 '변화'는 더 이상 경고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스스로를 포기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몸이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말한다. "내 몸은 나랑 따로 노는 것 같아요. 마음은 멈췄는데, 몸은 자꾸 살려고 하니까 피곤해요."그 말은 이상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의 무기력은 단순한 의지의 결핍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서로의 언어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나는 계속 '살자'라고 말하고, 다른 하나는 '그만하자'라고 속삭인다. 그사이에서 그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의 방에는 생의 흔적이 거의 없다. 커튼은 닫혀 있고, 옷은 걸린 채 먼지가 쌓였다. 한때는 메모와 낙서로 가득했던 벽도 이제는 텅 비어 있다. 그의 공간은 그의 내부를 닮아갔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어수선하지도 않다. 그저 멈춰 있을 뿐이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대에 핸드폰 알람을 설정해 둔다. 그는 병원을 다니지 않는다. 그저 '시간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알람은 울릴 때마다 그의 방은 흔들리지만, 그는 반을 하지 않는다. 그 소리는 점점 무의미해지고, 마침내 배경음처럼 사라진다.
그는 말한다. "몸은 움직이지 않는데, 머리가 자꾸 도망가요.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요." 그의 무기력은 게으름의 껍데기를 쓴, 존재의 마비였다. 그는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다. 움직이면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면 감정이 살아나니까. 그 감정이 너무 무거워서 그는 그저 멈춰 있었다. 시계는 여전히 같은 시각을 가리킨다. 그 시각은 그의 내부 시계이기도 했다. 그의 시간은 그곳에서 멈췄고, 그 이후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았다. 나는 그 방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가 진짜로 멈춘 것은 몸이 아니라, 시간을 받아들이는 감각이었다. 그에게 오늘과 어제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는 단 하나의 현재 속에서, 아무 변화 없는 존재로 머물러 있었다.
ㆍ‘그냥’이라는 단어로 덮어버린 하루의 감정들
D군의 말에는 언제나 '그냥'이 있었다. 질문이 무엇이든, 대답은 늘 같았다. "오늘은 어땠어?""그냥 그랬어요""무슨 생각해?""그냥, 아무 생각 없어요" 그의 '그냥'은 무심함이 아니었다. 그건 일종의 방어막이었다. 세상과 감정 사이에 놓인 얇은 막, 그것 하나로 그는 버티고 있었다. 그는 간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날 때조차, 그는 그 감정을 느끼기 전에 이미 단어를 던졌다. "그냥요" 그 한마디면 됐다. 그 말은 모든 설명을 덮었고, 모든 감정을 봉인했다.
그냥.
그 단어는 짧지만, 그 속에는 '살아 있음의 최소한'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대답을 하고 있었고, 그 대답 속에서 자신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대답은 세상과의 연결을 느슨하게 만드는 끈이었다. 그는 그 끈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너 단단해지길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감정을 피하고 있었다. 느끼는 순간, 그 감정이 자신을 무너뜨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번 감정을 허락하면 그 감정이 어디까지 번질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감정을 '그냥'으로 통제했다. 그 단어 하나로 마음의 파동을 지웠다. 그건 생존이었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왜 다 뭔가 느끼려고 해요? 그냥 아무 감정 없이 사는 게 편한데."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감정이 없는 게 비정상이라는 세상에서, 그는 감정이 없는 걸 유일한 안정이라 여겼다. 느끼지 않으면 다치지 않고,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는다. 그의 '그냥'은 무기력의 언어가 아니라, 자기 방어의 언어였다.
그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웃지고 않았다. 웃기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영화 속 슬픈 장면을 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나야 할 때도, 그는 "그냥..."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몸은 감정의 신호를 무시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늘 비슷했다. 슬퍼도, 피곤해도, 놀라도, 그는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감정의 흔적을 잃어버린 마스크 같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지만, 그 안에서 생의 리듬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얼어 있었다. 누군가가 그 얼음을 녹이려 하면, 그는 불편해했다. "괜찮아요, 그냥 두세요."그 말은,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는 따뜻함을 거부했고, 위로를 경계했다. 위로는 그에게 감정의 침입이었다. 그의 세계에서는 감정이 위험했다. 한 번 열리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감정에 휩쓸려 무너진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그를 학습시켰다. 그래서 그는 느끼지 않는 법을 택했다. 감정의 단어를 남겼다. 그것이 '그냥'이었다.
그의 대화는 짧았고, 그의 말끝은 늘 닫혀 있었다. 그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면 감정이 딸려 나오기 때문이다. 감정이 나오면, 다시 흔들린다. 그는 흔들리는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모든 문장을 최소화했다. 감정을 덮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말을 줄이는 것이었다. 나는 가끔 그가 '그냥'이라고 말할 때, 그 안에 숨은 미세한 흔들림을 본다. 그건 아주 짧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떨림이다. 그는 완전히 무감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그냥' 속에는 사실 느끼고 싶어 하는 욕망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그 욕망을 눌러 담고, '그냥'으로 봉인했다.
그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간다. 아침도, 점심도, 밤도 '그냥'이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사건이 없고, 사소한 감정도 없었다. 그는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그냥... 살고 있어요"그 말은 무심한 듯 들리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게 담겨 있었다.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게 전부라는 체념, 그리고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묘한 버티기. '그냥'은 그에게 감정의 종착지였다. 모든 감정은 그 단어 앞에서 멈췄고, 모든 슬픔은 그 단어 속에서 무력해졌다. 그 단어는 이제 그의 언어가 아니라, 그의 존재의 형태였다.
ㆍ잠들어도 피곤하고,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마음
D군은 자주 말한다. "자는 건 자는데, 자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의 말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진실이다. 그는 매일 잠들고, 매일 깨어난다. 그러나 잠은 그에게 '휴식'이 아니라 일시적인 기절이었다. 몸은 눕지만, 마음은 결코 눕지 않는다.
그의 잠은 얕다. 눈을 감아도 머이는 여전히 깨어 있고, 온몸이 피곤해도 뇌는 멈추지 않는다.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눕는 것이 아니라, 단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눕는다. 그건 의식의 꺼짐이지, 쉼이 아니다. 그는 말한다. "자는 건데, 자는 게 아니에요. 꿈꾸는 것도 아니고, 그냥 꺼져요."그 말엔 작은 체념이 섞여 있었다. 그의 수면은 재 충전이 아니라 소진의 연장선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오히려 더 피곤했다. 그는 잠을 자면서도 깨어 있는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그의 피로는 눈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다. 눈동자도 맑고, 목소리도 차분하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의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였다. 그는 여전히 움지이지만, 그 움직임은 '기능'일뿐, '의지'가 아니었다. 그는 피곤의 이유를 모른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몸은 무겁고, 마음은 더 무겁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의 혼잣말은 거의 매일 반복된다. 그 피로는 외부의 원인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천천히 생겨나는 정신의 마모였다.
그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가끔 그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아무 이유 없이 한참 동안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있으면, 세상이 조금 멀어진다. 그러면 자심'존재의 무게'가 줄어든다. 그 잠깐의 무중력이 그에게는 유일한 안식이었다. 그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하루 종일 누워 있어도 피로는 그대로 남는다. 그의 몸은 귀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쉴 틈이 없다. 마음이 쉬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이 아니라 '무'때문인다. 생각이 없다는 게 아니라, 생각이 '멈추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 '아무 일 없음'이 오히려 피로를 만든다. 생각이 많아서 피곤한 게 아니라, 비어 있어서 피곤했다. 공허는 무게가 없을 것 같지만,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었다. D군의 피로는 어떤 사건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건 서서히 스며든 것이다. 그는 일과 사람, 목표를 잃고, 그 빈자리에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채워 넣었다. 처음엔 그것이 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편안함'이 그를 삼켜버렸다.
그는 이제 움직이지 않아도 지치고, 생각하지 않아도 머리가 아프고, 누워 있어도 몸이 무겁다. 그의 피로는 신체의 것이 아니라, 존재의 피로였다. "사는 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의 질문에는 답이 없다. 그는 살아 있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다. 그의 몸은 마치 무거운 물속에 잠긴 사람처럼 천천히 가라앉는다. 숨은 귀고 있지만, 공기가 들어와도 숨이 찾다. 그는 하루를 버티는 대신,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는 종종 창문을 열어 본다. 바람이 들어오면 잠시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바람마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는 다시 창문을 닫는다. 세상의 온도와 자신의 체온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그 차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는 말했다. "쉬면 나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쉴수록 더 힘들어요." 그 말은 단순하지만, 그의 피로를 정확히 요약한다. 그의 무기력은 회복의 부재가 아니라, 회복의 거부였다. 그는 스스로 회복되길 원하지 않았다. 왜냐면 회복되면 다시 움직여야 하니까. 그 움직임이 두려웠다.
그는 피로를 질병처럼 안고 산다. 그 피로는 몸속에 박힌 돌 같았다. 아무리 쉬어도, 아무리 잊으려 해도, 그 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꺼낼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그저 함께 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의 피로는 게으름도, 나약함도 아니었다. 그건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지막 방어의 형태였다. 그는 이미 너무 오래 버텼고, 그 버팀이 결국 피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ㆍ감정의 엔진이 멈춰버린 사람
D군은 한때 잘 웃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았고, 가끔 영화 보며 울기도 했다고 했다. 그가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무표정했다. 그는 말했다. "그게 나였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요." 지금의 그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그의 얼굴은 온도가 사라진 기계의 표면 같다. 감정의 엔진이 완전히 멈춰버린 사람. 그의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는 감정을 느끼는 대신, 감정을 기억한다. "예전에 이런 걸 느꼈었지."그는 감정을 떠올릴 수는 있지만, 지금은 그것을 다시 느낄 수가 없다. 그에게 감정은 사진처럼 낡았다. 색이 바래고, 질감이 사라지고, 이제는 그저 존재만 남았다. 그는 종종 말한다. "요즘은 아무 감정이 없어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그냥 다 같아요" 그의 목소리는 고요했고, 그 고요가 오히려 공허보다 깊었다.
그의 감정은 고장 난 엔진 같았다. 기음은 말라붙었고, 시동을 걸어도 반응이 없다. 누군가가 그 엔진을 두드려도, 이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쳐봤자 또 멈출 텐데요." 그는 감정을 믿지 않는다. 감정은 언젠가 그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었고, 그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이후로 그는 감정을 느끼는 걸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이 천천히 굳어져 이제는 무감각으로 변했다.
그의 감정은 '멈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기 보호의 마지막 형태였다. 느끼지 않으면 다치지 않는다. 울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감정을 차단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무게 없는 삶'이었다. 그는 하루를 살아도, 그 하루가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지만, 자신의 생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내면은 텅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고여 있는 감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느끼지 않기 위해 느낄 때마다 그것을 눌러 담았다. 그 눌린 감정들이 마음속에 쌓여 이제는 움직이지 못하는 진흙처럼 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울음과 분노, 미련이 응고되어 있었다. 그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잊었다. 누군가 슬픈 이야기를 해도, 그는 "아, 그렇구나."라고만 말했다. 그의 말에는 위로도, 공감도, 반응도 없었다. 그는 그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무례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은 낯설 정도로 조용했다. 분노도, 열정도, 불안도 사라진 눈. 그 눈은 세상을 관찰하지만, 결코 참여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바라보되, 그 안에서 살고 있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감정은 죽은 게 아니다. 단, 너무 오래 타버려서 연료가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감정을 태워 살아왔고, 이제 남은 건 그을음뿐이었다. 그 그을음이 그의 피로, 그의 무기력, 그의 침묵으로 변했다.
그는 말했다. "이제는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어요. 좋다는 게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해요."그 말은 슬프지만,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는 '좋음'이라는 감정의 감각마저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그에게 감정은 위험한 것이다. 감정이 다시 움직이면 자신이 흔들릴 것 같아서, 그는 스스로 엔진의 시동을 꺼버렸다. 멈추는 건 슬프지만, 멈추면 적어도 고통은 없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느꼈다. 그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사용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랑을, 슬픔을, 분노를, 모두 한 시절에 다 쏟아버린 사람. 그래서 이제 남은 건 텅 진 엔진의 소리뿐이었다. 그의 방 안은 여전히 조용했고, 창문 밖에는 바람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그 바람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의 세계에는 '감각'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온도가 없는 존재였다.
ㆍ“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은” 상태의 존재
D군은 자주 이렇게 말했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살고 싶지도 않아요."그 문장은 모순이 아니라, 그의 일상의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에게 삶은 여전히 주어져 있었고, 죽음은 여전히 멀었다. 그는 그 두 세계 사이에서 멈춰 있었다. 죽을 만큼 절망하지도 않았고, 살 만한 희망도 없었다. 그는 끝과 시작 사이의 정지된 점이었다.
그는 하루를 "넘긴다"라고 표현했다. 사는 것도, 버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를 '통과'한다. "오늘 하루는 또 넘어갔네요."그의 말은 마치 날씨처럼 담담했다. 비가 오고, 해가 지고, 하루가 지난다. 그 속에 자신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른다. 그의 존재는 미세했다. 크게 울지도, 크게 웃지도 않았다. 감정의 진폭이 사라진 사람은 더 이상 현실과 부딪히지 않다. 그래서 상처도 적다. 하지만 그 무상처의 삶은, 살아 있음의 감각을 잃은 삶이기도 했다.
그는 자주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 말은 안부의 대답이 아니라, 존재의 선언이었다. 아프지 않다는 뜻도, 편하다는 뜻도 아니다. 그저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의 '괜찮아요.'는 생존의 최소 단위였다. 그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죽음을 상상하는 일조차 피곤했다. 그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릴 적 깊은 잠에 빠졌을 때처럼, 의식도, 꿈도, 시간도 없는 어둠 속으로.
그에게 삶과 죽음의 차이는 희미했다. 둘 다 피로했고, 둘 다 무거웠다. 그는 살기 위해 싸우지도, 죽기 위해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는 중간 어딘가,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공간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고통도, 위로도, 다 희미해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을 용기는 없는데, 사는 이유도 없어요. 그냥 이렇게 지내는 거예요." 그 말에서 절망은 느껴지지 않았다. 절망조차 감정의 에너지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절망할 힘조차 잃어버린 사람, 무의의 평온 속에 갇힌 사람이었다.
그의 하루는 반복된다. 늦은 오후에 눈을 뜨고, 핸드폰을 껴고, 식욕이 없어 밥을 미루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눕는다. 그 주기 속에서 그는 산다. 그러나 그 삶은 '진행'이 아니라 '루프'였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는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멈춰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 멈춤 속에도 어떤 생의 본능이 숨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숨을 쉬었고, 여전히 피로를 느꼈고, 가끔은 아주 미세하게 외로움을 느꼈다. 그 미세한 감정이 그를 오늘까지 이끌고 있었다.
D군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단지, 기대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삶에 대한 기대를 끊는 대신, 삶을 지워버리지 않았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방식의 생존이었다. 희망을 믿지 않았야 절망도 덜하다는 계산법. 그는 자신을 유령 같다고 표현했다. "사는 것도 아니고, 떠도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거예요."그 말에는 슬픔보다 관성이 있었다. 삶이 습관이 된 사람은 죽음조차 '노력'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밤이 되면, 그는 누워 천장을 본다. 어둠이 방 안을 가득 채워도, 그 어둠은 그를 삼키지 않는다. 그는 이미 그 어둠 안에 속해 있다. 어둠은 이제 두렵지 않다. 어둠은 그에게 유일하게 예측 가능한 서계였다. 가끔 그는 생각한다. "혹시 나한테 아직 감정이 조금은 남아 있나?" 그럴 깨면 아주 작은, 거의 들리지 않는 한숨을 내쉰다. 그 한숨이야말로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단지, 아주 천천히 희미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ㆍ끝없이 넘기는 화면, 멈추지 않는 스크롤
밤이 되면 D군의 방은 두 가지 어둠으로 나뉜다. 커튼 뒤로 고여 있는 밤의 어둠, 그리고 손 안에서 발광하는 화면의 어둠. 그는 늘 두 번째 어둠을 택한다. 빛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 터치 한 번이면 끝없이 흘러가는 어둠. 그의 손가락은 습관처럼 아래로 미끄러진다. 짧은 영상, 더 짧은 문장, 더 얇아진 의미들. 그는 소리를 끄고, 자막을 켠 채, 참여하지 않는 관객으로 밤을 통과한다. 화면 속 사람들은 웃고 울고 분노하고 사랑한다. 감정은 초단위로 출현하고 퇴장한다. 그는 그 모든 장면에 관여하지 않음으로 안정을 얻는다.
스마트폰의 밝기는 낮게, 푸른빛은 더 낮게. 그 조절된 빛 아래에서, 그의 시간은 마치 물속처엄 굼뜨다. 알고리즘은 그에게 생각을 제안하고, 그는 생각을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을 포기하는 대신, 선택지가 그를 끌고 간다. 스크롤은 '다음'을 약속하지만, 한 번도 '도착'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전하다. 언제든 중단할 수 있고, 실은 결코 멈추지 않아도 되는 길. D군은 그 길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다. 애초에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피드의 흐름이 빨라질수록 그의 심박은 느려진다. 자극은 강하지만, 체감은 희미하다. 짮은 웃음, 짧은 경악, 짧은 감탄... 모든 감정이 소비 가능한 단위로 절단되어 지나간다. 그 절단이 그를 지켜준다. 감정은 오래 머물 때 아프다. 짧게 스쳐가면, 상처의 모서리가 둔해진다. 그는 화면을 넘기며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잊는다. 한참 뒤에야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미세한 단위로 나눠 내쉰다. 호흡조차 스크롤의 리듬에 맞춰진 밤. 신체는 조용히 존재하고, 마음은 데이터의 파도에 떠밀려 다닌다.
가끔, 아주 가끔 그는 멈춘다. 낯선 사람의 문장 하나, 어딘가 공교롭게 닮은 풍경 사진 하나.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잠깐 고인다. 그러나 곧 손가락이 일을 재개한다. 머무는 법을 잊은 사람에게 머무름은 불안이다. 그는 알고리즘을 믿는다. 사람보다 덜 상처 주고, 기억보다 덜 정확하며, 현실보다 덜 아프다. 알고리즘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보다 먼저 알아내려 애쓴다. 그 사소한 헌신이 그를 안심시킨다. 대신 그는 자신을 잃는다. "내 취향"이라 부르던 것들이 '추천'의 이름으로 바뀌어갈 때, 그는 소유 대신 수신으로 살아간다.
메신저의 초록불은 자주 켜져 있지만, 대화창은 드물게 열린다. 그는 '읽음'을 남기지 않기 위해 미리 보기로만 사람을 본다. 관계에도 미리 보기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친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온기. 그는 그 불가능한 조합을 찾다 다시 스크롤로 돌아간다. 밤이 깊어질수록 피드는 가벼워지고, 손목의 열감이 미세하게 오르고, 눈은 모래를 머금은 듯 따갑다. 화면을 끄는 일은 어둠을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받는 일, 즉 혼자 남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조금만 더." 그 '조금'은 무한히 연장되는 단위다. 새벽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새들이 울음을 시작하면 그제야 그는 기계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놓는다. 그러나 수면은 곧장 오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방금 본 장면들이 뒤늦게 뇌의 벽을 스치고 간다. 정보는 사라졌지만, 잔상은 남는다. 그 잔상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 때, 새로운 하루가 구분 없이 끼어든다. 화면은 그에게 세 가지를 허락한다. 참여하지 않는 감상, 책임 없는 공감, 멈추지 않는 시간 이동. 세 가지 모두 현실에선 쉽지 않은 특권이다. 그 특권은 그를 지켜주고, 조금씩 잠식한다. 아프지 않으려는 마음이 살지 않으려는 마음과 갊아가는 과정.
관찰자의 자리에서 보면, D군의 밤은 거대한 강의 표면 같다. 그 빛은 그를 깨어 있게 하고, 그 침전은 그를 더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아침이 올 때쯤, 수면 위의 빛은 꺼지고 오직 침전만 남는다. 그게 그의 피로의 정체가. 보지 않기 위해 본 것들의 무게. 어느 날, 그는 실수로 폰을 떨어뜨렸다. 검은 화면이 잠깐, 정말 잠깐 그의 얼굴을 비췄다. 낯선 사람의 눈빛이 그를 보았다. 그는 서둘러 전원을 켰다. 빛이 돌아오자, 그는 안도했다. "다행이다."무엇이 다행이었을까. 자기 얼굴을 더 오래 보지 않아도 되는 일, 혹은 다시 남의 삶 속으로 숨을 수 있게 된 일.
그의 밤은 이렇게 끝난다. 시작도 끝도, 주인도 없는 이야기들의 행렬. 그 사이로 자신의 이야기는 한 줄도 쓰이지 않는다. 대신 '다음'이 계속된다. 다음, 다음, 다음... 그 끝없는 다음이 그를 오늘로 데려오지 못한 채 또 다른 밤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기록한다. 그가 화면을 넘기는 속도와 그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속도가 어느 순간 정확히 같아지는 장면을 삶의 리듬을 외부 기계에 동기화해 버린 사람의 호흡. 그 호흡은 안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미의 호흡 정지에 더 가깝다.
ㆍ게임, 영상, 채팅 — 현실을 미루는 가상 세계
D군의 하루는 조용하지만, 그의 손끝은 늘 바쁘다. 그는 게임 속에서 움직이고, 영상 속 세계를 살며, 채팅 속 인물로 존재한다. 그의 실제 몸은 침대 위에 있지만, 그의 의식은 언제나 화면 속 어딘가에 있다. 게임은 그에게 세상의 대체물이었다. 현실에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지만, 그곳에서는 작은 움직임 하나로 세상이 반응한다. 버튼 하나로 문이 열리고, 클릭 한 번으로 적이 쓰러진다. 그는 오랜만에 '영향 늘 미치는 인간'이 된다.
현실에서의 무력감은 그에게 너무 거대해서 손댈 수 없지만, 가상의 세계에서는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그 착각이 그를 살게 했다. 그는 그걸 잘 안다. "이건 다 거짓말인데도, 이 안에 있을 때만큼은 내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의 캐릭터는 강했고, 그의 몸은 무기력했다. 그 간극이 그를 더 깊이 끌어당겼다. 게임 속의 자신은 말이 빠르고, 움직임이 날렵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살아 있었다.' 반면 현실의 그는 느리고, 피로하며,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다.
그는 가끔 게임 속 화면을 바라보다 자신의 손가락을 본다. 그 손가락이 움직이는 동안만 그는 살아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전원이 꺼지는 순간, 그 착각은 조용히 꺼진다. 그는 다시 침묵 속의 인간으로 돌아간다. 영상은 그에게 시간의 마취제였다. 이야기를 소비하면서도, 그 어떤 이야기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타인의 감정, 타인의 성공, 타인의 결말. 그는 그것들을 대신 느끼며 자신의 감정을 잠시 '위탁'시킨다. 기쁨도, 분노도, 감동도 모두 대리의 감정으로 충분했다.
그는 영화가 끝나면 종종 허탈해진다. 감동이 아니라, 공백 때문이다. "다 끝났는데, 나는 아무 일도 안 했잖아요."그 말은 슬픔이라기보다 깨달음이었다. 그는 점점 모든 감정을 대리체험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느끼는 대신 '느끼는 사람을 본다.' 살아가는 대신'살아가는 사람을 본다.'그건 고통이 없었지만, 온기도 없었다. 채팅은 또 다름 형태의 피난처였다. 익명의 공간, 이름이 필요 없는 대화. 그곳에서 그는 짧은 문장으로만 존재했다. 'ㅎㅇ', 'ㅋㅋ', 'ㅇㅇ괜찮아.' 그는 말의 최소단위를 택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문장들, 상처 주지도, 상처받지도 않는 언어들.
그는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말이 길어지면 감정이 생기고, 감정이 생기면 다시 피로가 오기 때문이다. 그의 대화는 늘 짧고 가볍다. 그 가벼움 속에서만 그는 안전했다. 때때로 그에게 메시지가 오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럴 땐 이상하게 허전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안심이 된다.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를 상처로부터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는 관계의 부재를 외로움이 아니라 평화의 증거로 여겼다.
그는 밤새 화면 속 세계를 떠돌며, 자신을 잊는다. 현실에서는 정지된 사람, 가상에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 그 두 자아사이의 온도 차가 그를 조금씩 분해한다. 현실의 그가 사라질수록, 화면 속의 그는 더 분주하게 살아간다. 새벽이 오면, 모든 창을 닫는다. 게임을 종료하고, 영상을 멈추고, 채팅창을 나간다. 모니터의 빛이 사라지고 나면, 방 안의 어둠이 갑자기 현실이 된다. 그는 그 순간을 싫어한다. 빛이 꺼진 자리에 남는 것, 그의 진짜 고요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게임이나 영상이 없으면 나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요."그 말은 중독의 고백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는 방식의 진술이었다. 그는 그 안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었다. 가짜의 리듬이라도 있어야, 그는 자신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 나는 그를 관찰하며 느꼈다. 그의 도피는 파괴가 아니었다. 그건 자기 보존의 또 다른 형태였다. 현실이 너무 무거울 때, 그는 가짜 세계로 체중을 옮긴다. 그곳에서는 적어도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라도 가능했으니까. 그 착각이 사라지면, 그는 완전히 무너질 거ㅓㅅ이다. 그래서 그는 계속 접속한다. 끊임없이 로그인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잊는다. 그 잊음 속에서만 그는 간신히 살아 있었다.
ㆍ‘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사랑하게 된 사람
D군은 늘 말한다. "멈춰 있을 때가 제일 편해요." 그는 생각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실수 하나에, 세상의 모든 의미를 과하게 해석하던 사람. 그 과잉의 시절이 그를 무너뜨렸다. 그래서 그는 이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시간은 세상의 소음도, 자기 내면의 목소리도 사라지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이해하지 않아도 되고, 감동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그 단순함 속에서 마침내 편안함과 공허함의 경계를 발견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다. 유튜브 자동재생이 켜진 채로, 자막이 흐르고, 영상이 이어지고, 그는 화면을 보지도, 외면하지도 않는다. 눈은 열려있지만, 시선은 초점을 잃는다. 그는 자신이 [보는 중]이라는 사실로 충분하다. 그때의 마음은 비어 있다. 아무 감정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 비어 있음이 이상하게 따뜻하다. 그는 그 상태를 '휴식'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쉼이 아니라 정지에 가까운 안정이었다.
그는 생각의 부재 속에서 안심한다. 생각은 언제나 자신을 괴롭혔다. "왜 살아야 하지?", "나는 누구지?", "이게 다 무슨 의미야?" 그런 문장들이 떠오를 때마다 머리가 뜨겁게 타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질문하지 않으면, 답을 못 찾아도 괜찮다. 그 단순한 공식이 그를 지탱했다. 그는 점점 더 사유의 노동을 피하는 법을 배웠다. 대신, 화면이 생각해 주고, 사람들이 말해주고, 알고리즘이 선택해 준다. 그는 이제 선택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그 무책임이, 그에게는 평화였다.
그는 말한다."생각이 많을 때는 세상이 너무 시끄러웠어요.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조용해서 좋아요." 그 조용함은 그를 잠재운다. 조용함은 평화지만, 동시에 마취다. 그는 조금씩 잠든 사람처럼 되어간다. 정신은 깨어 있지만, 의식은 반쯤 꺼져 있다. 그는 세상을 보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존재하지만, 살지 않는다.
그에게 '생각하지 않음'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다. 그건 자기 보호의 마지막 형태였다. 생각하면, 다시 무너질 것 같았다. 생각이란 늘 감정을 동반했고, 감정은 다시 피로로 이어졌다. 그는 이제 감정의 시작점인 '생각'자체를 잘라내기로 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 안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그 목소리는 언제나 질문했다. "이게 괜찮은 거야?""이게 진짜 너야?"그 질문에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볼륨을 낮추듯, 그 목소리를 줄였다.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그는 안정을 느낀다. 그는 말한다. "이런 상태가 오래가면 안 좋겠죠?"그 질문에는 약간의 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이 무감각이 자신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그것을 멈출 생각이 없다. "괜찮아요. 그래도 이거 편하니까요."
그의 '편함'은 생존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아도, 생각하지 않아도, 시간은 어차피 흘러간다. 그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는 그 단순한 공식에 기대 산다. 그의 하루는 길지만 짧다. 생각이 없으면 시간은 길게 늘어나고, 의식이 없으면 시간은 금방 사라진다. 그는 그 모순 속에서 하루를 넘긴다. 가끔은 하루가 너무 짧다고 느끼고, 가끔은 하루가 너무 길다고 느낀다. 그의 시간 감각은 이미 자신의 삶과 분리되어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지만, 그 눈빛은 고요하다. 그 고요는 절망의 고요가 아니다. 그건 모든 것을 포기한 끝에서 찾아온 이상한 평화였다. 그의 무기력은 이제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멈춰 있었고, 감정의 언제도 식었으며,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생각마저 끄는 법을 배워버렸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다."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사람."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말속에는 오래된 피로와, 한때 너무 많이 생각했던 사람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는 걸.
ㆍ면접장 앞에서 돌아서는 발걸음
그날 아침, D군은 오랜만에 알람을 맞췄다.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이력서를 보낸 지도 한참 되었고, 기억조차 흐릿했지만, "그래도 가봐야지"라는 생각 하나로 몸을 일으켰다. 그 문장은 다짐이 아니라, 습관적인 생존의 명령 같았다. 옷을 입고, 머리를 다듬고, 거울 앞에 섰다. 오랜만에 셔츠 단추를 잠그며 그는 잠시자신을 바라봤다. 피곤한 얼굴, 희미한 눈빛, 마치 '역할을 준비하는 배우'같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괜찮아. 오늘은 그냥 사람인 척하면 돼."
지하철역까지의 길은 낯설었다. 그는 오랜만에 햇빛을 온몸으로 받았다. 그 빛은 따뜻하기보다 눈부셨다. 그는 잠시 눈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세상은 왜 이렇게 밝지..." 그 밝음이 불편했다. 그에게 세상은 여전히 자신보다 너무 빠르고, 너무 커 보였다. 지하철 안 사람들은 바빴다. 누군가는 서류를 읽고, 누군가는 통화하며 웃었다. 그는 그들의 리듬을 따라가려 했지만, 자신의 리듬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이동했지만, 동시에 그들 곁에서 점점 흐려지는 사람이었다.
면접장은 도시 한복판의 회색 건물에 있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깔끔한 복도 끝에 기업 로고가 붙어 있었다. 그는 잠시 그 로고를 바라봤다. "여기서 일하게 되면, 나는 좀 달라질까?"그 물음은 곧 사라졌다. 달라질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의자에 앉은 지원자들이 서류를 다시 정리하고, 거울을 보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는 그들 큼에 앉아 있었지만, 자신만 다른 세계에 속한 것 같았다. 그는 손에 쥔 서류를 바라봤다. 그 위에는 '자기소개서'라는 단어가 있었다.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를 소개하라... 나는 누구였더라?' 그 한 문장 앞에서,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그는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잃은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조용했고, 그 조용함에는 문장이 붙지 않았다. 면접 시작까지 10분. 번호표를 들고 대기하던 그는 갑자기 가슴이 조여왔다. 어지럽고, 손이 차가워졌다. 바닥이 흔들리듯 했다.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출구 쪽으로 걸었다.
누군가 물었다. "어디 가세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불가능했다. '그냥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발걸음은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단호했다. 그는 문을 나섰고, 햇빛이 다시 그를 덮었다.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그제야 그는 숨을 내쉬었다. 긴장도, 기대도, 책임도 없는 공기 속에서 그는 다시 자신이 돌아온 듯했다. 면접장 안의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에 속한 인간'이었고, 그는 그 사회의 경계 밖에 서 있는 조용한 탈락자였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왜 늘 도망칠까?"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웠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자기 방어였다.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래 세상에서 멀어졌다. 그에게 사회는 전쟁터였고, 그는 이미 싸울 이유를 잃은 병사였다. 그날 이후 그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셔츠의 단추를 풀면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패의 감정도, 후회의 감정도 없었다. 그저 피곤했다. 마치 먼 길을 다녀온 사람처럼.
그는 결국 면접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 말에는 어떤 의지도 없었다. 단지 자기 위로를 흉내 내는 체념의 문장이었다. 밤이 되자, 그는 다시 화면을 켰다. 조용한 배경음악, 익숙한 영상, 반복되는 장면들. 그는 천천히 몸을 눕히며 오늘의 결정을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내일은 안 가도 돼." 그 말은 도피의 선언이 아니었다. 그건 그에게 남은 유일한 자유의 선언이었다. 그는 사회의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그 무대 밖에서만 숨을 윌 수 있었다.
ㆍ“열심히 살아야지”라는 말이 주는 압박
D군은 그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열심히 살아야지."가족이, 친구가, 때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까지 그 문장을 쉰 게 입에 올렸다. 그 말은 쉽게 입에 돌렸다. 그 말은 언제나 부드럽게 들렸다. 그러나 D군에게는,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어딘가가 조여왔다. "열심히 살아야지"... 그 말은 겉으로는 위로 같지만, 그 속에는 너는 지금 충분하지 않다는 전제가 숨어 있었다. 그 문장은 언제나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를 요구했다. 그가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조차 '아직 부족한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다. "열심히 산다는 게 뭘까?"사람들은 말한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사람을 만나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햐해 나아가는 것.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한때 해봤다. 그런데도 허전했다. 그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열심히'의 기준은 언제나 타인이 정한다는 사실은. 그 말은 애정 어린 조언처럼 들리지만, 그 속엔 사회가 정한 속도가 숨겨져 있다. 빠르게, 바쁘게, 효율적으로... 그게 '열심히'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D군의 리듬은 느렸다. 그는 한 걸음 애 딛는 데 하루가 걸렸고, 결정을 내리는 데 며칠이 걸렸다. 그 느림이 세상의 언어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 언어의 속도에서 낙오된 존재였다.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말은 그에게 더 이상 위로가 아니었다. 그건 명령이었고, 그 명령이었고, 그 명령은 늘 그를 죄책감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존재가 작아지는 걸 느꼈다. 그 말은 늘 그가 '아직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말하면서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말 안 하잖아요. 그냥, 열심히만 하래요." 그는 그 말속에서 길을 잃었다. '열심히'라는 단어는 방향이 없었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른 채 계속 달리기만 하는 명령 같았다. 그는 달리려 했지만, 이미 그의 다리는 오래전에 멈춰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속도를 잃고, 세상의 속도에 맞추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의 심장은 이미 지쳐 있었고, 그의 에너지는 '살아내기'보다 '버티기'에 쓰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을 들으면 웃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웃은 게 아니라, 그 말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방어였다. 그 웃음 속에는 피로와 냉소가 섞여 있었다. "열심히 살라고요? 그게 뭔데요? 그렇게 살면 뭐가 달라져요?" 그의 속마음은 그렇게 외쳤지만,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 말들이 입술 끝에서 맴돌다 다시 안으로 삼켜졌다. 그는 반항조차 하지 않는 법을 배워버렸다.
그는 점점 말 대신 침묵을 택했다. 침묵 속에서는 비교 달하지 않았고, 측정당하지도 않았다. 침묵은 그가 사회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벽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열심히 살라'외쳤지만, 그의 내부는 이미 모든 소리를 차단한 상태였다. 그는 어느 날, 가족 모임 자리에서 그 말을 또 들었다. "너도 이제 정신 차리고 열심히 좀 해라." 그 문장은 식탁 위의 반찬처럼 자연스럽게 오갔다. 아무도 그 말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D군은 손끝이 떨렸다. 수저를 내려놓으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도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그의 열심은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생존이었다.
매일 일어나기, 씻기, 밥을 삼키기,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기... 그건 그에게 전갱같은 일이었다. 그는 그 전쟁을 매일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싸움을 '노력'이라 인정하지 않았다. 노력은 언제나 성과로 증명되어야 했다. 그는 결과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열심히'라는 말은 그에게 칭찬이 아니라, 결과 없는 자에게 주는 경고처럼 들렸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열심히"라는 단어를 듣지 않으려 노력했다. 뉴스에서, 광고에서, 사람들의 SNS에서, 그 단어는 너무 자주 등장했다. "열심히 사는 당신을 응원합니다.""오늘도 열심히 살아내세요."그는 그 문장들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그 문장 속 '당신'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 '당신'은 언제나 누군가 더 건강하고, 더 기능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점점 무용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열심히 살 수 없는 인간, 노력의 규격에 맞지 않는 인간. 그는 세상에서 밀려나는 대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그 물러섬은 패배가 아니라, 존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세상은 '열심히 사는 사람'만 기억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기억되지 않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관찰하며 깨달았다.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말은 그에게 더 이상 삶의 명령이 아니었다. 그건 정상성과 무력감의 경계에 선 사람에게 가해지는 가장 조용한 형태의 폭력이었다. 그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고장 난 사람'으로 분류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말은 다정했지만, 그 다정함이 그를 가장 아프게 했다.
그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안다. '열심히 살라'는 말보다 '그냥 괜찮아'라는 말이 훨씬 더 살아 있게 만든다는 걸. 그는 그걸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요즘의 그는 아무도 그에게 조언하지 않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조금은 살아 있다고 느낀다.
ㆍ능력 이전에, 의욕이 사라진 세대의 초상
D군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지금 이 시대의 수많은 젊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의 무기력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세대의 자화상에 가깝다. 지금의 청춘들은 태어날 때부터 경쟁 속에서 자랐고, 늘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그들이 준비를 마쳤을 때,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노력했지만 아무 일도 달라지지 않았다. 꿈은 언제나 더 비싸졌고, 성실은 보상 대신 소진을 남겼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 없다"를 배운 게 아니라,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를 먼저 배웠다. 그들은 피로는 실패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무의미 속에서 자라난 피로였다. 그들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도전하지 않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감정을 줄였다. 그 정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미리 쓰러지지 않기 위한 예방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그들에게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응원이 아니라 속도에 대한 명령처럼 들린다. 그들에게 열심히 산다는 건 자신의 리듬을 잃고 세상의 박자를 맞춰 걷는 일이다. 그 리듬에 맞추지 못한 사람은 게으름뱅이로, 실패자로 불렸다. 그러나 그들은 게으른 게 아니다. 그들은 이미 너무 오래 달려서, 더 이상 달릴 근육이 남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무기력은 소모 이후의 공백이다. 모두가 "꿈을 가져라"라고 말할 때, 그들은 꿈의 비용을 먼저 계산한다. 시간, 체력, 관계, 마음의 소모를 따져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묻는다. "그럴 가치가 있을까?" 그 계산 끝에 남는 건 늘 같은 대답... "아니, 그냥 이대로도 괜찮을지도 몰라." 그 말은 포기가 아니라 자기 방어의 결론이었다.
그들은 다정하지만 냉소적이다. 서로를 이해하지만, 아무도 먼저 나 저시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말한다. "괜찮아, 안 해도 돼." 그 말은 따뜻하지만, 어딘가 슬프다. 그건 공동의 체념, 함께 포기함으로써 유지되는 연대의 형태였다. 포기마저 외롭지 않게 나누는 세대, 그게 지금의 청춘이다. D군은 그 속에서 조용히 흘러간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에 들키지 않으려 한다. 문제없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아무 말도, 아무 감정도 꺼내지 않는다. 그의 하루는 성취가 아니라 유지의 연속이다. 그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루를 버틴다. 그게 지금 세대의 생존 방식이다.
그들의 평온은 생복이 아니다. 그건 의욕이 사라진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정적의 평화다. 그 평화는 고요하지만, 어딘가 비극적이다. D군은 말한다. "열심히 사는 게 무섭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편해요. 오늘을 버텼으면 그걸로 된 거죠."나는 그를, 그리고 그와 닮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 세대의 무기력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건 너무 오래 버틴 사람들의 후유증, 기대가 닳아버린 사람들의 잔향이다. 그들은 열심히 살지 않을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살아내느라 의욕이 먼저 닳아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의 피로는 죄가 아니고, 그들의 침묵은 패배가 아니다. 그건 살아남기 위한, 가장 조용하고도 인간적인 저항이었다.
ㆍ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두려운 이유
D군은 요즘 누군가와 대화하는 게 점점 두렵다. 그 두려움은 미움이 나 회피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말을 꺼내는 행위 자체가 너무 힘들다. 말을 하면 설명을 해야 하고, 설명은 곧 감정을 꺼내는 일이다. 그는 이제 그 감정의 무게를 버티기 어렵다.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그는 잠시 침묵한다. 대답해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오지만 정작 말할 게 없다. "그럭저럭요." 그 한마디가 그의 방패다. 그 말속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지만 그는 그 어떤 것도 꺼내지 않는다. 꺼내는 순간, 그것들이 현실이 되어 자신을 덮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알고 있다. 사람들은 진심보다는 적당한 밝음을 원한다는 걸. 그래서 그는 늘 미소를 흉내 낸다. "괜찮아요, 다 잘 지내요."그 말은 거짓이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의 문장이다. 그는 그 정답을 외우듯 반복한다. 그 반복 속에서 그는 점점 자기 언어를 잃어갔다. 대화는 이제 소통이 아니라 연기가 되었다. 상대의 눈치를 보고, 적당히 맞장구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감정을 닫는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침묵을 택했다. 그 침묵은 외로움이 아니라 방어의 기술이었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과 있으면 괜찮은 척해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피곤해요."그의 피로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사람 사이에 필요한 '에너지의 연기'에서 온 것이다. 그는 대화를 할수록 텅 비어갔다. 대화는 나눔이 아니라, 자기 소모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점점 사람을 피했다. 모임이 있어도 가지 않고, 메시지가 와도 답을 늦춘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죄책감보다는 안도가 커진다. 누군가와 이어져 있지 않아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든 자신을 시맇어한다는 것. 대화 속의 자신은 늘 가짜였고, 그 가짜를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너무 컸다. 그래서 그는 진심을 내어놓는 대신 관계를 줄이기로 했다. 그 줄임은 도망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ㆍ좋아요와 확인 중독의 시대, 존재의 왜곡
D군은 요즘 자신이 살아 이 씨다는 증거를 오직 화면 속 숫자로 확인한다. '좋아요 27개', 조회수 103', 댓글 2'. 이 세상에서 그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의 흔적이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휴대폰을 집어 든다. 새로운 아림이 있는지, 누군가 자신의 글을 봤는지, 어제 올린 사진에 반응이 달렸는지를 확인한다. 그 몇 초의 기다림이 이상하게도 살아 있음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알림이 뜨지 않으면 그의 하루는 조용히 무너진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구나." 그 문장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는 사실, 그렇게까지 관심받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렇게 그를 만들어버렸다. '좋아요'라는 단어는 단순한 피드백이 아니라, 존재의 수치였다. 반응이 없는 게시물은 마치 자신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다. 하루를 기록하기 위한 사진 한 장, 그저 지나가는 감정의 조각 하나.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는 글을 쓰기 전에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사람들이 좋아할까?"그 질문은 창작의 시작점이 아니라, 검열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점점 자기 자신을 꾸며내기 시작했다. 진짜보다 보기 좋은 순간, 고요보다 밝은 미소, 절망보다는 버틴 척하는 문장들. 그는 '보이는 자신'을 위해 '살아 있는 자신'을 희생했다. 그는 점점 더 많은 가면을 썼고, 그 가면이 진짜 얼굴이 되어간다. SNS 속의 그는 항상 괜찮았다.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운 사람,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사람, 때로는 조용히 웃는 사람. 그러나 현실의 그는 커피를 다 마시기 전에 불안했고, 책을 덮으며 자주 한숨을 쉬었다. 그는 두 세계의 간극 속에서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좋아요를 받을 때마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금세 더 많은 숫자를 원하게 되었다. 칭찬은 희미해졌고, 무반응은 고통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 중독은 도파민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였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누군가의 '확인'이 없으면 내가 존재한다는 확신이 안 들어요." 그 말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현대의 인간이 겪는 구조적 결핍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진짜로 보지 않는다. 화면 속 '시선의 교환'은 관심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반사다.
그는 이제 좋아요가 늘어도 기쁘지 않았다. 그건 더 이상 감정이 아니라, 체온이 없는 데이터였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이건 내가 받은 관심일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가짜의 흔적일까.'
그는 자신이 점점 더 '보이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보이면 불편한 역설 속에서 그의 자아는 흔들렸다. 그는 가끔 휴대폰을 거두려 했다. 하지만 불안이 밀려왔다. '지금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그 불안은 그를 다시 화염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점점 현실보다 피드백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의 말보다 이모티콘을, 진짜 시선보다 하트 모양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어느새 삶의 질서가 되었다.
나는 그를 관찰하며 깨달았다. 그가 갈망한 것은 관심이 아니라, 인정의 모양을 한 존재의 확신이었다. 그는 사랑받고 싶은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사람이다. 좋아요의 숫자는 그에게 심장박동과 같은 신호였다. 그 숫자가 멈추면, 그의 존재도 정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ㆍ“혼자인 게 편한데, 또 너무 외롭다”
D군은 요즘, 혼자 있는 게 너무 편하다. 누구와 약속을 잡지 않아도 되고,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됝다. 조용한 방 안,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세상은 조금 덜 무겁게 느껴진다. 그는 이제, 사람보다는 정적을 선호한다. 침묵 속에서는 적어도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요는 어느 순간부터 벼랑처럼 느껴졌다. 그는 혼자인 게 분명 편한데, 또 너무 외로웠다. 편안함과 외로움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하며 그의 마음을 소모시켰다.
처음엔 그저 "혼자 있고 싶다"였다. 관계에 지쳐서, 말에 상처받아서, 조금의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잠깐의 고독'은 어느새 '습관적인 고립'이 되었다. 연락은 줄어들었고, 대화는 점점 어색해졌다. 그는 자신의 세계 속으로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침잠했다. 혼자 밥을 먹는 것도, 혼자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무언가 좋은 걸 봐도, 공유할 사람이 없었다. 웃긴 장면이 나오아도 소리를 내지 않고 웃게 되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기쁨은 나눌 때 생명력을 얻는 감정이라는 걸. 혼자서는 그마저도 금세 식어버린다.
잠이 되면, 편안함은 무게를 바꿔 외로움이 된다. 불 꺼진 방 안, 휴대폰 불빛만이 깜빡일 때, 그는 자꾸만 알림 창을 확인한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 단순한 질문이 가슴을 묘하게 쓸어내린다. 외로움은 감정이라기보다, 존재가 비워지는 감각이었다.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을 때, 자신의 형태가 흐려지는 기분. 그는 이따금 스스로에게 붇는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걸까?"
혼자 있을 때의 평화와 외로움의 파도는 늘 붙어 다녔다. 편안함은 잠시였고, 그 뒤에는 텅 빈 공기가 따라왔다. 그 공기 속에서 그는 자신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가끔 사람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면, 대화 몇ㅂ마디만에 지쳐버렸다.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피로가 같은 속도로 자라나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말한다. "함께 있고 싶지만, 막상 함께 있으면 숨이 막혀요"그 모순이 그의 일상이었다.
그에게 고독은 안전하고, 외로움은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두 감정 사이를 줄타기하듯 오갔다. 가끔은 혼자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가끔은 그 혼자가 너무 무서웠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그는 그 안에서 점점 조용해졌다."혼자 있는 건 두렵지 않다. 다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까 봐 두렵다." 그는 결국 이렇게 살아간다. 편안함과 외로움의 경계에서, 누구의 기대도 받지 않으려 하면서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모순 속에서. 그에게 고독은 선택이었지만, 외로움은 늘 뒤늦게 찾아오는 경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