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마치며

끝나지 않은 글

by 진시율

이 글을 마치며 전하는 글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에게, 나는 어떤 답도 남기지 않으려 한다.

이 기록은 답을 위해 쓰이지 않았고, 완성을 증명하기 위해 이어진 글도 아니었지 때문이다.

오히려 이 글은 끝내 도달하지 못한 질문들,

아직 말로 다 꺼내지지 않은 감정들,

그리고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삶의 단면들을

그대로 두기 위한 시도에 가까웠다.


우리는 흔히 글의 끝에서 정리를 기대한다.

무엇이 옳았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래서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러나 이 기록은 그 요구 앞에서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삶은 정리될수록 가벼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지나치게 정리되는 순간

누군가의 고통은 다시 설명의 대상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동의받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말해지지 못한 마음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잠시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 글은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너무 쉽게 판단하지 않겠다는 태도,

너무 빨리 이름 붙이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하나의 단어로 접어두지 않겠다는 선택.


그 선택은 언제나 불편함을 동반했다.

왜 이렇게까지 돌아가야 하는지,

왜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지,

왜 끝을 분명히 맺지 않는데.

그러나 나는 이 불편함이야말로

이 기록이 지키고자 했던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본래 불편한 것이고,

사람은 언제나 이해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며

혹시 당신이 몇 번이고 멈춰 섰다면,

어떤 문장에서 마음이 무거워졌다면,

혹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서 고개를 들었다면,

그 반응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응 속에

당신이 여전히 감각하고 있다는 증거가 남아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자신의 반응을 검열한다.

이렇게 느껴도 되는지,

이 감정이 과한 것은 아닌지,

이 생각을 품어도 괜찮은지.


그러나 이 기록이 내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검열의 속도를 조금 늦춰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당신이 이 글 속에서

자신의 일부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특별해서도,

유별나서도 아니다.


그만큼 오래 견뎌왔고,

그만큼 많은 질문을 품어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질문을 오래 품어왔다는 사실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생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는 흔적이다.


이 기혹에는

완전히 회복된 사람도,

완벽하게 이해받는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흔들리는 사람들,

멈춰 선 사람들,

여전히 질문 중인 존재들만이 남아 있다.


나는 그들이 이 글을 통과하며

조금이라도 덜 고립 되지를 바랐다.

적어도 자신이 겪어온 감정들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기를 바랐다.


이 글은 끝나지만,

당신의 관찰은 계속될 것이다.

오늘의 당신을 바라보고,

어제의 당신을 다시 해석하고,

아직 오지 많은 내일의 자신에게

조금의 여지를 남기는 일.


그 여지 속에서 삶은 다시 조용히 이어진다.


어쩌면 당신은

여전히 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 상채로 괜찮은지,

이 속도로 살아도 되는지.

지금의 자신이 너무 뒤처진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이 글이 남기고 싶은 말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이 아니라,

그 질문들을 품은 채로도

존재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나

'괜찮아져야 한다'는 말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러나 괜찮아짐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끝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음은 유효하다.

그 자체로 충분하다.


이 기록은 당신에게 더 나아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상태를 조금 덜 미워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몰하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건네고 싶었다.


혹시 오늘도 크게 이룬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 같다면,

그럼에도 이 글을 끝까지 읽고

여기까지 와 있다면,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움직임이다.

아주 작고, 아주 느리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움직임.


이 글은 여기에서 멈춘다.

그러나 당신의 삶은

이 문장 이후에도 계속된다.

다음 문장을 쓰지 않아도,

다음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오늘을 마친 수는 있다.


부디 이 기록이

당신에게 어떤 의무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아주 짧은 숨,

잠시 멈출 수 있는 틈,

그리고 "이대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작은 확신 하나쯤을 조용히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오늘도 그저 숨을 쉬며 이 자리에 있다면,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고,

아무 덧도 해결하지 못했더라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하다는 말을

이 기록의 마지막으로 남긴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이 문장을 덮는 순간,

자기 자신을

조금 덜 몰아붙이게 된다면,

그것으로 이 글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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