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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Aug 30. 2022

마담 드 스탈, 코린 또는 이탈리아


 마담 드 스탈(1766-1817)의 [코린 또는 이탈리아 Corinne ou l'Italie] 서문을 읽고 있다. 책 산 해를 보니 2002년, 그해 지도교수 수업 때 다룬 작품이라 거의 다 읽은 것으로 기억난다. 


"인생에서 여행은 가장 슬픈 즐거움 중 하나다. 외국 어떤 도시에 머물 때는 그 도시를 고향처럼 느끼기 시작한다. 그런데 모르는 지방을 지나갈 때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들을 때 과거에도 미래에도 아무 관계없는 얼굴들을 마주칠 때 고독과 고립을 맛본다. 이런 서두름과 조바심으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곳에 도착한다. 아마도 호기심이 유일한 이유겠지만 이런 들뜸은 자신한테 그다지 자존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새로운 것들이 옛 것처럼 바뀌고 자기 주변에 감정과 습관으로 만들어지는 따스한 관계가 생겨나기 전에는 그렇다." (p. 32)


 [코린]에서 마담 드 스탈은 몽테스키외(Montesquieu)가 주장한 환경, 특히 기후가 인물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적용시킨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독일(인물로서가 아닌 철학으로 암시)을 포함하여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을 비교한다. 코린은 이탈리아을 형상화한 여주인공으로 모든 예술적 재능이 탁월한 여신적인 존재다. 마담 드 스탈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남자 주인공 오스발드(Oswald)가 영국을 대표한다. 태양의 상징 이탈리아, 침울함의 상징 영국을 대표한다. 오스발드의 아버지 넬빌은 마담 드 스탈의 아버지 네케르와 닮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오스발드와 넬빌은 민주주의와 정치적 진보를 반영하는 미덕과 격조를 갖춘 긍정적인 인물들이다. 

 

 소설이 시작되는 1795년 시점에서 영국은 이탈리아에 훌륭한 정부에 깨끗한 행정의 본보기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오스발드는 도덕과 정치적 사회적 유용성이라는 잣대로 모든 걸 바라보고 역사며 고고학을 경직되게 본다. 지나치게 예술적인 코린이 이런 영역를 따를 수 없다. 아름다움은 무용성에 놓이는 것이어서 도덕적 이유로 비난할 수 없다. 유용성이나 엄격한 도덕성에 맞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사상이 나타난다. 


 프랑스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부차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에르푀이 백작(Erfeuil)을 통해 대표된다. 귀족적인 정신의 소유자 에르푀이 백작은 "품행이 우아하고 친절하고 취미가 고상하며" 정직하고 자비롭고 선량하나 경박하고 허영심 많고 꽤 무식하다. 여행 중인 그는 모든 타인한테 우월감을 느끼는 자기만족적인 완벽한 프랑스적인 인물이다. 파리의 살롱에서 만날 수 있는 전형으로 당시 프랑스 사람들한테 반감을 사는 빌미를 제공한다.


 코린은 긍정적인 면 이외에 극도로 정체된 영국 사회를 비판한다. 남자는 사냥하고 마시기만 하고 여자는 말없이 체념한다. 저속하고 쩨쩨한 오스발드의 어머니의 엄숙함에 숨막혀 죽을 지경이 된다. 코린과 정반대로 순진하고 소극적인 마담 드 스탈의 이복 동생이 오스발드의 사촌 누이 동생 뤼실(Lucile)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너무 엄격한 교육이 성격을 메마르게 하는지 잘 보여준다. 넬빌은 온화하며 조신한 뤼실이 오스발드의 이상적인 신부감이라고 여긴다. 독립적이고 재능있는 예술가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코린 같은 인물은 괴짜로 비춰진다. 이런 인물은 영국 사회에 발 붙일 틈이 없다. 여론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가운데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칙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자신이 속한 위치며 이 위치에 걸맞는 태도를 평생 유지해야 한다. 코린이 보기에 미술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것은 개인의 도덕적 완성에 기여한다. 이런 생각에는 독일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이 드러난다. 레싱Lessing), 빈켈만(Winckelmann), 칸트(Kant), 쉴러(Schiller), 쉴레겔 형제(Schlegel) 같은 프랑스에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독일 작가들을 등에 업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런 새로운 미학적 비전으로 몇 안되는 유식한 프랑스 독자들까지 당혹케 한다.


 주인공들의 감정, 고통이나 기쁨은 그들이 지나가는 장소들의 묘사 방식을 반영한다. 사랑이 싹트는 시절의 로마는 행복감에 젖어 풍요롭고 아름답게 보인다.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포효하는 바다,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 다시 찾은 로마는 온통 슬픔과 죽음 뿐이다. 마침내 거칠고 엄격한 피렌체에서 절망하여 코린은 죽는다. 코린에서 언급된 기념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된 정보가 드러난 경우가 두어 건 있지만 마담 드 스탈은 정확하게 당시 이탈리아를 묘사한다.


 압도적인 주인공은 코린이다. 영감받은 여사제, 시인, 비평가인 코린은 모든 예술 형태를 동원하여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서정성이 분출되는 즉흥시 작가로 계관시인이 된다. 소설 막지막에 나오는 삶과 이별하는 시가 유일하게 즉흥시가 아니다.

 작가는 코린에게 즉흥시인의 능력을 부여하여 그녀를 즉흥적인 창조력을 대표하는 여신으로 만든다. 즉각적인 창조는 방대한 지식과 성찰, 정열의 바탕에서 나온다. 이런 신통한 능력을 가진 코린을 여신의 지위로 끌어올리며 영광스러운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인물로 만든다. 그렇지만 여성의 진실성은 간직한다.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비판적인 거리감을 유지시킨다. 다시 말해 반은 이탈리아 사람 반은 영국 사람으로서 두 나라의 장점과 약점을 다 지적해낸다. 코린은 오스발드로 대표되는 영국과 그가 전혀 모르고 높이 사지도 않는 이탈리아를 매개하는 인물이다.


 1793년 프랑스 대혁명 때 마담 드 스탈은 영국으로 망명을 떠났다가 스위스로 간 다음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한 뒤 9월에 파리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삶은 망명과 여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여성의 조건에 늘 고통당하던 그녀는 사회의 편견 때문에 이해받지 못하고 파괴된 여자를 창조할 수 밖에 없다. 신분상으로나 경제적으로 최상위에 속하는 여성일지라도 여성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억압당하는 조건에 놓여 있었다. 이런 상황을 고발한 그녀의 첫 번째 소설 [델핀 Delphine](1803)부터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제1집정관이던 나폴레옹의 지지를 받는다. 그렇지만 나폴레옹은 처음부터 그녀한테 경계심을 품는다. 마담 드 스탈의 살롱에는 나폴레옹 반대파들도 끼어 있기 때문이다. 

 마담 드 스탈은 점점 더 드러내놓고 정권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델핀]을 발표했을 때 나폴레옹으로부터 파리에서 40리 바깥으로 추방령을 당한다. 1804년 22세의 연하 두 번째 남편과 함께 독일 여행을 떠난다. 독일 여행에서 그녀는 당대 유명한 독일 지식인들을 다 만난다. 괴테, 쉴러, 빈켈만, 쉴레겔 형제...독일 여행 중에 독일 지식인들을 통해 이탈리아를 새로 발견한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코페성으로 되돌아와 [코린]을 쓴다. 1812년 5월 감금 상황에서 영국으로 가려고 출발해서 생페테르부르그로 간다. 그 다음 스톡홀름으로 갔다가 1813년 영국에 도착한다. 러시아, 스웨덴, 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녀를 왕처럼 환대한다. 1814년 다시 파리로 되돌아온다. 그녀는 프랑스의 패배를 통해 나폴레옹한테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결과는 물론 복고왕정이 들어선다. 그녀의 작품 가운데 [독일론]은 프랑스 작가들을 자신들의 문화에 고립된 것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프랑스 낭만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녀가 이탈리아를 여행하기 전까지 이탈리아에 대한 지식은 책을 통한 것 뿐이었다. 고전과 르네상스의 작가들과 예술가들을 통해서만 이탈리아를 알고 있었다. 물론 몽테스키외나 깁본(Gibbon)을 통해 이탈리아에 더 친숙해진다. 아리오스트, 타소, 마키아벨리, 단테를 통해 이탈리아를 알고 있을 뿐 당대의 이탈리아에 대한 지식은 보잘 것 없었다. 이탈리아 음악을 좋아했지만 풍경이나 기념물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탈리아는 망명자들의 피난처 정도로만 비추어졌다. 그녀는 이탈리아 작가와 외교관, 정치 망명객들을 알고 있었다. 그녀 친구들 가운데 본스테텐(Bonstetten), 시스몬디(Sismondi),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등은 이탈리아를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1802년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했다가 1803년에 나폴레옹이 유배를 보내면서 그녀의 관심은 독일쪽으로 쏠린다. 1804년 2월 1일 바이마르 극장에서 살닉스(La Saalnix, "La Nymphe de la Saale") 공연에 참석한다. 님프가 기사를 사랑하는데 이 기사는 상대가 불멸의 존재임을 알아보고 차이를 느끼면서 인간 여인을 위해 님프를 버리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그녀는 남자가 자신과 비슷한 여인을 위해 비범한 여인을 버린다는 주제를 발견한다. 당장 소설의 무대를 이탈리아로 정하고 자유 속에서 아주 예외적인 삶을 사는 여주인공을 설정한다. 이 자유는 다른 데서 온 남자 주인공과 갈등을 빚게 된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고 편견을 무시하는 여주인공과 사회적 가족적 규율에 얽매어 있는 남자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 이미 독서와 이탈리아통을 통해 이탈리아 여행준비를 한다. 그녀가 만나고 싶어한 독일인들은 이탈리아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탈리아에 바쳐진 괴테의 시를 읽는다. 이탈리아 회화도 본다. 그녀는 베를린으로부터 빌헬름 쉴레겔을 자신의 아들들의 가정교사로 데려온다. 


 1804년 12월 쉴레겔과 세 자녀와 함께 몽세니스(Mont-Cenis)를 지난다. 혹독한 겨울 날씨에 범람과 폭우가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된다. 토리노에서 며칠 머무는데 거기서 시스몬디를 다시 만난다. 밀라노에서는 두 달 좀더 넘게 체류한다. 거기서 당대 최고의 시인 빈첸초 몬티(Vincenzo Monti)를 만난다. 몬티를 통해 이탈리아 문학이며 미술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 1805년 2월 3일 로마에 도착한다. 2주 뒤 남쪽으로 이동한다. 캄파냐 지방의 자연에 매료당한다. 바다며 베수비우스 화산, 나폴리,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펼쳐지는 가난... 3월 13일에 로마로 되돌아온다. 5월 8일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향해 떠난다. 6월 4일 막 나폴레옹이 로마 왕으로 즉위한 밀라노에 도착한다. 밀라노에서 코페성으로 되돌아온다. 

 

 여행중 적은 노트 몇 권이 전해지는데 소설의 기초가 될 풍경이나 기념물, 풍습, 이탈리아 서민들과 상류층에 대한 짤막한 노트다. 이 모든 것들은 소설의 바탕이 되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베르질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타키투스 같은 고전작가들도 작품에 들어간다. 고전 역사가들의 작품이 코린의 즉흥시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코린]에서 사회 규범과 전통 고수를 중시하는 오스발드와 자유분방한 즉흥 시인 코린은 합일점을 찾지 못한다. 아버지 넬빌의 바람대로 오스발드가 사촌 누이 뤼실과 결혼하자 버려진 코린은 결국 죽음의 길로 향한다. 델핀과 마찬가지로 코린도 남성 위주의 권위적이고 닫힌 사회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사회의 편견으로 파괴되는 인물이다. 정형화된 규칙에 얽매인 사회며 그 사회의 질서와 미풍양속 그리고 정치 시스템에 틀어박혀 개인의 정열이나 감정의 무질서는 살아남을 틈이 없다. 비극적 결말은 불행할 수도 혼란스러울 수도 있음을 고발한다.


 차라리 [독일론 De l'Allemagne]을 읽는 게 더 나을 듯 한데... 1810년 9월 프랑스 사람들이 뒤떨어진 나라라고 여긴 독일을 "감상적이고 순수한" 정신을 가진 나라라고 추켜세운 이 책이 출판되자 나폴레옹은 이 책을 소각시키고 마담 드 스탈을 스위스의 자기 집 Coppet성과 주네브에 감금 조치시킨다. 코페성은 당시 유럽 지성인들의 아지트가 된다.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알아보던 중 마담 드 스탈을 다시 뒤적이게 되었다.

 마담 드 스탈이 1817년 51세로 죽었을 때 여행기 [10년 동안의 망명]은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코린], [문학론 De la littérature](1800), [10년 동안의 망명 Dix années d'exil]만 내가 가진 책이다.


 계몽주의의 자유 사상에 철저한 마담 드 스탈은 샤토브리앙과 함께 전기낭만주의의 쌍두마차였다. 계몽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마담 드 스탈은 자유분방한 사고로 인해 당대 뿐 아니라 현대에 들어와서 까지도 모든 진영으로부터 배척당한 인물이다. 여성이 가족의 테두리 바깥에서는 아무런 지위라고는 없던 시절, 자신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파리에서 문학살롱을 열어 당대 유럽의 저명한 문학가와 정치인들을 다 끌어모은다. 이 그룹은 나중에 코페 그룹으로 확대된다. 콩스탕, 시스몬디, 본스테텐, 쉴레겔 등이 중심 인물이다.

 

 특히 1870년 이후 패전국민의 증오의 대상이 된다. 1950년에 들어와서야 그녀에 대한 연구가 편견없이 시작되었으니... [델핀]을 발표한 결과 마담 드 스탈은 샤토브리앙처럼 한 동안 나폴레옹한테 밑보여 파리에서 40리 떨어진 곳에 살도록 금족령을 당한다. 그녀는 루이16세 때의 유명한 재무장관 네케르(Necker)의 딸이고 스웨덴 대사 스탈(Eric-Magnus baron de Staël-Holstein)과 결혼했다.

 

 마담 드 스탈을 원조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당당하게 여성의 자유를 부르짖은 인물이다. 스탕달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비범한 여인이다". 벵자맹 콩스탕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예외적이며 비범한 존재다". 나폴레옹은 마담 드 스탈한테 '위험한 자유의 기수'로 "무엇보다 대단한 재능을 지닌 여자임은 인정해야 한다".고 평가한다. 발자크도 [루이 랑베르]에서 루이 랑베르의 천재성을 알아본 마담 드 스탈은 비범한 여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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