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24년) 3월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온 집안의 창문을 갈았다. 새집이 되었다고 기뻐하기도 잠시 후유증이 곧바로 찾아왔다. 이러다가 몸져눕지 않나? PVC 창문틀에서 새어 나오는 유독성 냄새로 말 그대로 고문을 당했다. 의사를 만나 진단서를 받고 변호사를 동원해 항의할까. 도무지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어야지. 머리가 아프고 호흡 곤란이 생겼다. 기관지며 폐와 거의 모든 관절에 묘한 통증이 왔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눈언저리도 틱 증상처럼 시큼시큼했다. 자다가 깨면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 어쩔 수 없어 일어나 책상 앞에 앉곤 했다. 집주인한테 고통을 호소하는 문자를 쓰고 창문 업체한테 항의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두 시간쯤 지나 가까스로 곯아떨어져서야 이른 아침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생체 리듬이 깡그리 깨지고 말았다. 잠을 설치니 자연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몸 상태가 나쁘다고 일을 안 할 수 도 없는 노릇. 일은 해야 하는데 몸이 이러니 사면초가. 머릿속은 늘 안개가 낀 듯 띵하니 개운하지 않았다. 낮 동안도 두통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다른 증세들은 낮 동안 잊혔다가 밤에 누우면 귀신처럼 되살아났다. 이걸 어찌 하리요?
일하고 돌아와 출입문을 열면 유독 가스 냄새가 나 보란 듯 먼저 나를 반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양이 두 마리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도 분명 고통스러울 텐데. 가족들이 한국에 다니러 간 사이에 공사를 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게 두려워졌다. 특히 자정 무렵에 침대로 가는 것은 공포심을 자아냈다. 가까스로 잠에 빠져들었다가 새벽에 깨면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몸은 피곤한테 다시 잠들 수 없으니...
창문 문제 이전 체류증 약속 잡는 걸로 골머리를 앓던 중이었다. 서류 준비는 완벽하게 해 두었지만 제출하려면 인터넷상으로 약속을 잡아야 했다. 저녁 8시 정각에 약속 자리가 풀리는데 아무리 동작을 빨리 해도 잡을 수 없었다. 가능성을 높이려고 한 손에 전화기 다른 한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눌렀다. 잡을 수 없는 것이 자리가 없어서 못 잡는 거지 동작이 느려서 그런 게 아닌 것을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다. 자리가 풀리는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 한참 전부터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내가 잡아야 하는 약속은 10년짜리 체류증 갱신이라 매일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뒤 현장 사무실에 갔을 때 오래전부터 낯익은 여직원이 매일 있으니 잡으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였다. 약속 없으면 현장에서는 안 된다! 아마도 10년짜리 갱신 약속이 아닌 일반 약속을 두고 말했으리라. 여덟 시가 가까워지면 모든 걸 멈추고 책상 앞에 앉는다. 심지어 휴대 전화기에 1분 카운트다운하는 기능까지 동원한다. 너무 빨리 눌러도 늦게 눌러도 안된다. 아무리 애써도 잡을 수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무슨 일을 해도 어느 한구석이 불안했다. 이러다가 불법체류자가 되고 말지.
순발력이 떨어져서 안 되는 걸까? 요령 부족인가? 파리에 사는 아는 이는 약속을 잡아 해결했다지 않나. 여기는 파리가 아닌 앙토니. 각 지역별로 조건이 다 다른 걸. 출생증명서를 요구하는 지역은 이쪽 말고는 없었다. 별별 궁리를 다 짜보았지만 결과는 실패. 한두 번은 자리가 떴다. 이게 웬 떡! 막상 해보면 이미 누가 차지했는지 없다는 반응이 나오지 않나! 실낱 같은 희망은 금세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네. 한 가닥 희망을 품고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에 결전 태세로 들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10년짜리 약속 잡는 항목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이건 또 뭔가? 그다음부터는 체류증 관련 아무 약속이나 잡으려고 덤벼들었다. 아무리 해봐야 결과는 말짱 도루묵.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장 가서 부딪히자.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파야지.
혹 재판까지 갈지 모르니 증거로 남기려고 실패한 결과를 보여주는 화면을 캡처해 두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다 갈아 끼우는 공사였다.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거실과 내 방, 아들 방 창문은 첫째 날에 갈아 끼우고 그 이튿날은 부엌 쪽만 갈아 끼웠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새집이 된 느낌! 다른 집들은 이미 다 이중창으로 바뀐 지 오래다. 바깥에서 보면 옛날 건지 아닌 지 쉽게 알 수 있다. 창문틀이 우리 집보다 더 하얗고 두툼하다. 겨울에 창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외풍이 만만치 않았는데 그 문제는 말끔히 해결되었다. 외부 소음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사실 집주인한테 창문 갈아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 불편해도 견딜만했으니까. 창문 틈을 메우는 고무 패킹이 상했어도 작동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한마디 덧붙이면 프랑스 사람들은 제대로 작동만 하면 절대 새걸로 갈지 않고 버틴다. 예를 들면 목재 가구는 몇 대째 물려받아 소중히 잘 쓴다. 옛 창문은 무엇보다 창문 턱이 판판해서 보슬이가 걸터앉아 있기도 마침맞았다. 이중 유리창으로 바꾸면 겨울에 실내 온도가 2도는 올라간다고 했다. 창문 턱이 높아져 보슬이가 창문을 타고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 그전보다 훨씬 불편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녀석이 창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슬그머니 줄어들었다. 나가더라도 혼자 힘으로 쉽게 뛰어오르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빨래 담는 바구니에 줄을 달아 건져 올렸다. 밖에 나가 돌아올 적이면 창문 밑에서 줄기차게 소리를 질러 나를 깨웠다.
그런데 창문 설치가 잘못되어 내 방의 덧창이 부드럽게 닫히고 열리지 않았다. 덧창을 올리고 내릴 때 창문틀과 부딪혀서 삐걱거렸다. 냄새만 나는 게 아니군. 공사도 엉망이잖아. 부품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기술에도 문제가 있잖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체 사무실 직원과 약속을 잡았다. 첫 번째는 약속을 어겼다. 두 번째 창문을 설치했던 기술자가 다시 와서 해결하고 갔다. 창문 위를 덧씌우는 일종의 처마 같은 부품 일부를 잘라내었다. 생각보다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아들 방도 약간 뻑뻑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작동은 되는 지라 부탁하지 않았다. 이날 기술자가 이용한 접착제를 창문 바깥에 떨어뜨렸다. 가져가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도대체 어떤 제품을 쓰길래 이렇게 냄새가 나나. 기술자가 떠난 뒤 건물을 돌아가서 빵바닥에 떨어진 접착제를 가져왔다. 혹 여기서 단서를 찾아낼지도 몰라. 제품 표면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았지만 특별히 불량품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증거로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어 집주인한테 보냈다. 한 동안 지하실 창고에 보관했다가 버렸다.
갈아 끼우는 첫째 날 우리 동네의 영업소장이 공사 현장을 찾아왔다. 키가 2미터에 가까운 소장은 서글서글하니 인간성은 괜찮아 보였다. 말하는 본새가 조곤조곤해서 사기꾼 같지는 않았다. 지금은 냄새가 나지만 이틀 지나면 사라질 거요 하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기술자 역시 묻지 않은 질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이런 말을 했다. 사장님한테 창문틀 재료를 바꾸자고 건의했어요. 내가 프랑스 와서 살던 집 중에 한 번 빼고 다 사는 동안 창문을 간 경우였다. 맨 처음 세들었던 파리13구의 스튜디오(창문 틀이 나무라 냄새가 날 이유가 없었다), 가렌 콜롱브(역시 PVC틀이었지만 유명 업체 제품이었다), 바로 직전에 살던 집(PVC 틀이지만 냄새가 없었다) 다 창문을 갈았지만 이런 냄새가 나지 않았었다. 공사하는 동안 문을 열어놓은 상태로 설치를 한 터라 심한 냄새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창문을 닫으면서 가스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는지 이상이 생겼다. 이 문제는 환기를 열심히 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심하니. 냄새가 많이 난다고 소장한테 말했더니 그 이튿날 효과가 있는지는 몰라도 닦아내는 용제를 가지고 와서 그 큰 키로 사다리도 필요 없이 내 방과 아들 방의 창문틀을 닦고 갔다. 불평에 대해 그래도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준 셈이다. 역으로 가는 큰 길가에 사무실이 있어서 오며 가며 그 소장을 여러 번 마주쳤다. 어떤 때는 냄새 때문에 힘들다는 불평을 늘어놓고 어떤 때는 아 오늘은 많이 나아졌어요 하고 긍정의 소식도 털어놓았다.
업체의 홈 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이용자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불평하는 글이 몇 개 게시되어 있었다. 업체 쪽 답변은 그럴 리 없다. 모함하지 말라. 법적으로 대응하겠다. 이거 심각하네. 자기네 제품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딱 잡아떼었다. 그뿐인가. 항의를 한다고 오히려 모함죄로 몰아넣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질 않나. 후기를 본 다음 변호사를 동원한다는 생각은 접었다. 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 소송을 해 봐야 회사한테 이기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이미 이런 경험을 해서 잘 안다. 결국 노사관련 재판정에서 국가도 회사편을 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한 집 구하다가 사기 당해 재판정에 호소했지만 승소해도 아무 효력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재판하다 늙어죽는다. 워낙 느리게 진행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간다. 그래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시간이 지나면서 냄새의 강도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사라졌나 싶으면 여전히 냄새가 느껴졌다. 창문 가까이 가서 코를 킁킁거렸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마누라는 내가 나이가 들어 면역성이 떨어져서 더 그럴 거라고 했다. 먼저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은 크게 어려움이 없다고 하였다. 이럴 수가. 그 사이에 냄새가 약해진 탓도 있으리라. 냄새가 미미해지기까지는 꼬박 두 달이 걸렸다. 그 뒤로도 냄새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그로부터 몇 달 뒤나 되어서였다. 영원히 새어 나올 것만 같던 냄새가 사라졌지만 처음에 당했던 고통이 트라우마로 아직 남아 있다.
그러다가 창문 손잡이가 망가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건 또 뭔가! 보통 창문은 보증 기간이 10년 정도다. 그런데 사용한 지 몇 달 지났다고 창문 손잡이가 하나는 덜렁거리고 하나는 제대로 잠기지 않았다. 거실 창문의 손잡이는 작동을 잘못해서 생긴 거라 할 말이 없지만 부엌 창문의 손잡이는 스스로 덜렁거리다가 떨어져 나갔다. 거실 창문 손잡이도 결국은 분리되었다. 무슨 창문을 이렇게 만들 수 있나. 냄새 풍기는 재료에다 제작 기술도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집주인한테 원망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싼 업체를 선택하는 바람에 다 이렇게 되었으니...
다시 업체와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 출동한 기술자는 그전과 다른 인물이었다. 기술자들은 모두 친절하게 문제 해결을 시원하게 해결하고 돌아갔다. 나는 고맙다고 둘한테 팁까지 주었다. 결국 창문 제작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손잡이를 고정하는 부분에 나사를 제대로 박지 않은 게 드러났다. 손잡이 망가진 것은 이렇게 좋게 끝났다.
결국 구글 사이트에서 후기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짓기로 했다. 집주인한테 그렇게 알렸다. 그냥 넘어가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 이미 나와 비슷한 체험을 한 사람이 후기 남긴 것을 읽은 터였다. 이렇게 해서라도 다음에 이 업체를 이용한 고객한테 도움을 주어야지. 옆동 어느 아파트에도 이 업체가 공사를 했다길래 결과가 어땠는지 알아보려고 현관문에다 내 연락처를 적어 붙였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옆동이 아니었나? 우리 동네 영업소장이 바로 25번지라고 말했는데... 구글 말고도 이 업체가 홈페이지를 둔 파주존(pages jaunes)에도 후기를 올렸다. 부정적인 내용을 적는다고 후기 등록이 되지 않아 스무 번 정도 고친 다음에서야 겨우 후기를 남길 수 있었다. 광고주를 비방한다고 마음대로 후기를 쓰지 못하게 통제를 했다. 구글에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뒤 구글에서 내 후기의 조회 횟수가 오백이 넘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25년 10월 말 부엌 창문 오른쪽 위 모서리 부분 부품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먼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동네 사무실에 들렀다. 키 큰 직원은 사라지고 다른 직원이 사무실을 지켰다. 그 사이 자리를 옮겼나. 아무튼 창문 갈아 끼울 때 거구의 인물은 그 뒤로 마주치지 않았다. 본사 사무실에 연락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역시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팠다. 직접 본사 비서실과 통화를 했다. 사진을 찍어보내세요. 그러고 집주인한테 연락을 취하라고 하질 않나. 이젠 무료가 아닌 모양이네! 분명 보증 기간일 텐데. 하여 집주인한테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며칠 뒤 집주인이 덧창을 올리고 내리는 케이블 장치에 문제가 생긴 것을 보러 왔을 때 부품이 떨어져 나간 부분을 알려주었다. 작동에는 문제가 없고 미관상의 문제여서 내가 스코치 테이프로 붙여두었다. 어쨌거나 그 이후 집주인도 업체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때 집주인은 창문을 거칠게 열어젖혀서 생긴 거네요 하고 한마디 보탰었다. 창문을 좀 드세게 열고 닫았다고 그게 그렇게 쉽게 떨어져 나갈까. 그렇다고 부엌 창문을 우악스럽게 열고 닫은 적은 절대 없다.
그 뒤 다행 창문에 더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단 가족들한테 창문을 닫을 때 반드시 중간쯤에 설치된 잠금 장치를 끝까지 민 다음 잠그라고 몇 번 강조했다. 이제 고장 나면 다시 못 고친다! 마누라 왈, 자기 집 창문도 겁나서 맘대로 못 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