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한국 탐방기

2015년

by 파샤 pacha

인천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분당에 내린다. 큰 짐 가방과 작은 가방에다 손가방을 끼고 택시를 기다린다. 어두워진 겨울 저녁 너른 도로에 줄지어 달리는 덩치 큰 차들의 불빛이 현란하다. 웬 버스가 이렇게 많지! 승용차는 소형이 없군. 요란한 네온사인을 내뿜는 사각진 상가 건물이 무척 낯설다. 사각진 것은 상가뿐이 아니다. 아파트는 온통 길쭉한 직육면체다. 직육면체 레고를 질서 정연하게 꽂아둔 숲들이 온 국토를 뒤덮고 있다. 야트막한 뒷산보다 높이 자란 숲들도 숱하다. 언뜻 보아 길로 걸어가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차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만 있네. 드디어 한국에 왔군.


가끔 택시가 와서 멈춘다. 잽싼 손님들이 먼저 타고 떠난다. 어떤 이는 마중 나온 사람의 차를 타고 자리를 뜬다. 나처럼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줄어간다. 저렇게 차가 많은데 택시가 부족한가? 이미 손님을 태운 택시에 대고 손을 저어 흔든다. 이제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다. 리무진 버스 정류장에서 너끈히 삼십 분을 기다렸지 싶다. 알고 보니 택시를 잡는 데 순서가 없는 모양. 남보다 먼저 타려고 차량 진행 방향으로 슬쩍 거슬러 올라가 남보다 먼저 택시를 잡는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다 없어지고도 한참 더 기다린다. 마침내 구세주가 나타난다. 엘피지 가스로 움직이는 차량이다. 아직도 가스를 쓰나!
트렁크에 큰 가방 하나만 실었다. 아파트 이름과 동을 알려주었다. 행정적인 동네 이름도 함께.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약간 헤매면서 그래도 제대로 찾아갔다.


칠 년 만의 귀국은 낯설다기보다 참혹하다. 옛 흔적을 찾기 힘들 만큼 변한 환경은 이미 짐작하였다. 그 변화의 방향은 안타깝게도 탐탁하지 못하다. 하늘을 찌를 듯이 더 높게 솟은 아파트와 빌딩들이 나를 거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주변 환경에 견주어 너무 크게 뚫은 도로들도 나를 놀라게 하진 않는다. 요란스레 덕지덕지 삐져나온 간판들도 나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분당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서울 도심에 내린 나는 통 좌표를 잡을 수 없다. 종로 2가와 종각의 위치가 아득하다. 광화문으로 가려면 어디가 더 가깝지? 종로 2가에서 내린다. 어느 쪽이 세종로일까?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건물도 있다! 교보와 세종문화회관!! 그대로 있네. 추운 날씨에도 종로 쪽 교보 입구 벤치에 염상섭이 혼자 앉아 있다. 세종문화회관 맞은편에는 역사박물관이 새로 생겼다. 나지막한 한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먹자골목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삼치구이를 즐겨 먹었는데... 교보 뒤쪽에서 옛 프랑스 문화원가던 뒷골목길도 재정비되었다. 낮은 건물들이 자취를 감추고 길이 제법 크게 나 있다. 새로 솟은 빌딩이 여기저기 하늘을 가린다.

이순신 동상만 있던 세종로 공원엔 세종대왕 동상이 조잡한 측우기와 해시계를 앞세우고 새둥지를 털었다. 그쪽에 서울 온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붐빈다. 대부분 외국인들! 한류를 타고 온 관광객!! 단체들도 제법 보인다. 관광객은 눈으로 구경하는 게 아니고 사진기로 보고 본 것을 소유한다. 부질없지만 그래도 사진 찍는 걸 곧 정복이라고 생각한다. 기념사진이 아니라 정복 증명이다.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개척을 꼭 빼닮았다. 남의 땅에 쳐들어가서 새 땅을 차지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 깃발을 꽂고 북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고 이름을 붙이면 게임 끝이다. 맨 나중의 이름 붙이기가 가장 중요하다. 원주민이 살고 있던 땅에 들어가 해적의 우두머리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 부르고 도착한 날을 기념해 플로리다로 이름 붙였다.

교보빌딩을 돌아 건널목을 건넌다.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향한다. 텐트가 줄지어 나온다. 대자보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텐트 안에는 농성하는 이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자료를 보여주는 화면도 보인다. 철거민을 떠올리게 하는 텐트촌을 한 바퀴를 빙 돌아본다. 빌딩 숲을 헤집고 모질게 뿌리내린 잡초더미 같다. 건널목 쪽에서 전단을 나눠준다. 노란 리본도 끼워 준다. 모금함에 만 원 한 장을 집어넣는다. "잊지 않겠습니다.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발걸음을 광화문 쪽으로 돌린다. 세종대왕이 나오고 광화문이 다가오고 저만치 북한산이 경복궁을 병풍치고 있다. 아 근데 뭔가 허전하다. 총독부 건물이 사라졌네!

세종로가 넓은 줄 알았지만 이토록 넓고 큰길이었나?! 그 새 더 넓힌 게 아닐까? 양쪽 건물이 제자리를 지키는 걸 보면 폭은 똑같은데 왜 이리 커 보이지? 파리의 길들이 비좁아서 일 거야. 신호등이 바뀌는 시간은 한없이 길다. 기다리다 숨 넘어갈라. 그보다 더 긴 시간은 고등과 대학 시절 오후 몇 시 몇 분에 강제로 울려 퍼지던 애국가 방송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그 시간이 되면 일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대학 시절 강의가 끝나고 정문 쪽으로 걸어 나오다가도 길을 멈추었다. 신정동으로 가는 303번 버스 안 영등포 시장을 지날 때도 기계적으로 오른손을 가슴에 대었다.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거의 호흡 정지하다시피 했다. 갑갑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신호가 바뀔 때 차도 사람도 꼼짝 않는 죽은 시간이 있다. 차가 직진이나 좌우회전 하지 않는 순간에 사람이라도 이동하면 안 되나. 움직여야 하는 도로와 보도가 동시에 멈춘 죽은 시간을 그냥 두다니... 성질 급한 한국 사람들은 문화 시민답게 교통신호는 잘도 지킨다. 운전자보다 보행자가 훨씬 더 잘 지킨다. 참 희한하다. 이렇게 법칙을 잘 지키다니! 국기에 대한 맹세나 학도호국단의 제식훈련이며 교련 말고도 좌측통행이며 파란불에 건너는 규율도 일제의 잔재인가? 교복이며 교모, 왼쪽 가슴에 붙이고 다니던 이름표...

수도권 전철이 새로 생기고 연장되기도 했다. 노선도가 복잡해서 번지수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단순화시켜 그린 지도는 한참을 들여다보고 궁리해야 감이 올까 말까. 동서남북이나 다른 역과의 관계를 알아내기 힘들다. 그냥 노선에 역이름을 붙여놓은 셈. 생략해서 간단히 그려도 원형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수도권 노선도는 실제지형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지도를 참조하고 전철을 제대로 탄다면 머리가 참 좋은 사람이다.

전철 칸에서 앉아 있는 사람은 죄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화면만 뚫어지게 본다. 서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음성 통화를 하는 사람보다 문자를 보내거나 이미지를 보는 사람이 더 많다.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런 사람은 아마 인간 천연기념물일 테다. 종이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드물다. 그저 검색을 하거나 발작적으로 화면을 눌러대며 문자를 보내거나 아니면 그냥 비디오를 본다. 화면에 대고 혼자 웃음을 흘리기도 얼굴을 찌푸리기도 한다. 음성 통화 하는 모습은 별로 없다. 스마트폰에 메신저 기능이 생기면서 그리 되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기만 있으면 심심할 짬이 없다. 오락도 하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본다. 녹음기나 카메라가 되기도 하고 동영상 촬영도 가능하다. 컴퓨터로 하던 작업을 스마트폰으로 거의 다 할 수 있다. 예약도 구매도 하고 메일을 읽고 쓸 수도 있다. 채팅도 길 찾기도 한다. 라디오며 텔레비전도 된다... 이럴진대 어찌 화면에 달라붙지 않으랴!

화면을 보면 먹을거리가 절로 나오지 않을까. 화면을 보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어쩐지 불안하다. 혼자 있어도 남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전화를 하든 문자 메시지를 나누든 채팅을 하든 누군가와 이어져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이젠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만남보다 채팅을 하며 관계를 만드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기 전 삐삐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었다는 경험을 한 바 있다. 말만 들었지 난 삐삐를 써본 적은 없었다. 스마트폰을 쓰면서부터 문자메시지뿐 아니라 이미지까지도 쉽게 교환한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전화기에 붙어 산다. 채팅을 하고 문자질을 하고 사진과 이모티콘을 날려 보내 보아도 혼자임을 벗어날 수는 없다.


한국에서는 전철이나 버스탈 때 거의 모든 사람이 교통카드나 신용카드를 쓴다. 현금으로 버스 요금 내는 건 가물에 콩 나기다. 통일성과 단일성을 좋아하는 우리네 근성인가. 어쨌든 참 편리하다. 이런 카드가 없거나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미 작은 지폐를 갖지 않아 봉변당한 얘기를 누구한테 들었다. 돈이 있어도 천 원이 아닌 만 원권으로 버스요금을 지불 못하고 곤경에 빠진 사태가 벌어졌단다. 거스름돈을 내줄 수 없기 때문에 만 원권을 받을 수 없다고 기사님께서 말씀하셨다나. 안 내겠다는 것도 오만 원도 아닌데 만 원으로 버스비를 못 낸다!
버스에 오를 때도 내릴 때도 카드를 단말기에 갖다 맞춰야 한다. 이걸 모르고 그냥 내린 적이 여러 번 된다. 이런 실수로 벌금을 꾀 물었을 게 분명하다. 어쩐지 충전 금액이 너무 빨리 줄어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구에서 내가 똑같은 일을 겪게 될 줄 몰랐다. 수성못 가까이서 사촌형과 저녁을 먹고 헤어져 동대구역 쪽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교통카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만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엔 교통카드가 지역별로 달랐다. 오천 원으로 지불하려던 순간이었다. 잔돈을 내드릴 수 없다는 기사님의 말씀이 귀를 쾅쾅 두들겼다. 그런 돈은 못 받는단 완강한 거부!

« 그럼 어떻게 하죠? »

« 내려서 다음 차 타시든가? »

무슨 해괴망측한 발상! 이 으스스한 겨울밤에 다음 정류장에 내려 돈을 바꿔 다음 버스를 타란다! 안 낸다는 말도 아니고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천 원이 아닌 오천 원이라고 다음 차를 타란다!! 먼저 오른쪽에 앉은 남자 손님한테 오천 원 바꿀 돈 있냐고 물었더니 짤막하게 부정의 대답이 왔다.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왼쪽에 앉은 중년 여인이 사태를 알아차렸는지 자신의 신용카드를 선뜻 내밀었다. 정말 뜻밖의 호의였다. 오 자기 카드로 지급해 주겠다는 선의! 응급결에 여인이 내민 카드를 받아 들었다. 운전석으로 되돌아간다.

« 안 됩니다. 지불할 수 없어요. 올라올 때 말해야지 두 사람 분을 결제할 수 있단 말이오. »

무슨 비루먹을 훈시! 이래도 안 돼 저래도 안 돼! 그냥 머쓱해하자 운전기사님은 그래도 자신이 조작하면 결제를 할 수 있다고 시혜를 베푸신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그 여인의 신용카드로 버스비를 지불한다. 카드를 돌려주면서 이천 원을 건넸다. 이백 원인가 모자라는 액수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 되풀이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천 원권으로 내려다 이런 봉변을 당하다니. 만 원도 아니다. 거스름돈이 충분치 않다고 오천 원 받기를 단칼에 거절한 기사님의 사고는 아무리 헤아려도 이해할 수 없다. 그다음에 학생이 타면서 천 원권으로 지불하니까 아무 말 없이 잔돈을 내주었다. 손님이 왕이라는 한국에서 기사님의 승객에 대한 횡포는 그야말로 폭력적이다.
동대구역에서 내렸다. 이젠 안심이다. 전철은 기계로 표를 사면 되니까. 파리나 한국이나 직원이 일하는 창구 찾기가 힘들다. 기계로 표를 살 수밖에 없다. 인력을 줄이자는 발상은 알지만 서비스는 뒷걸음질 쳤다. 한국 같은 서비스 천국에서 게다가 비교적 싼 인력시장에서 표 파는 직원은 없다. 기계에 달라붙어 용을 써야 한다. 이튿날엔가 허허 실수로 서울 교통카드로 대구 전철을 탔는데 통과되었다. 미리 알았다면 그런 희한한 일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분당의 어느 한정식집. 국수를 먹고 싶다고 했더니 괜찮은 집이 있다고 세욱형은 그쪽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날이 장날. 닫혀 있다. 아직 전날의 술기운에서 헤어나지 못해 몸이 말이 아니다. 늦게 일어나 약속 시간을 좀 뒤로 미루었는데도 정상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머리는 흐리멍덩하고 속은 거북하다. 도저히 음식이 넘어갈 것 같지 않다. 수없이 나오는 요리와 반찬이 그림의 떡이다. 대부분의 요리는 국적 불명의 퓨전 음식. 젓가락을 대는 둥 마는 둥 했다.

요즘 대세는 한정식집인데 다 퓨전 일색이다. 양재역에서 사당동에서 대구에서 먹은 한정식은 분당에서 먹은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유행은 정말 무섭다. 대규모에 체인점 음식집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 요리도 이젠 대규모에 균질적이고 화학적인 공장제품이다. 한국 사람들은 평등을 지향하고 평균을 좋아한다. 내가 우겨서 갔던 국숫집들도 대동소이였다. 영통에서 영등포에서 대구에서 시지에서 먹은 고급 국수보다는 사당의 허름한 분식집 국수가 내 입맛에 맞았다. 현대본사 옆 골목 안쪽에 있는 한옥 한식집의 비빔밤이 손맛이 느껴져 괜찮았듯이. 사당동의 평범한 국숫집이나 나이 든 아줌마 몇이 운영하는 보통 한식집이 값도 싸고 맛도 나았다. 적어도 칠 년 만에 한국을 간 내게는 그랬다. 분당에서 누나네랑 갔던 국숫집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강화에서 온천을 하고 나와 기식이가 데리고 간 한식집은 퍽 좋았다. 음식 맛에 장만하는 이의 정성이 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맛은 없고 겉만 번드르르한 빛 좋은 개살구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새 유행어는 맛집이다. 한물간 웰빙이나 한참 유행 중인 힐링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듣고 보는 말이다. 오만 블로거들이 맛집을 소개하고 선정된 음식점은 맛집이라고 광고한다. 블로거들이 식당 주인한테 맛집 광고비를 뜯어내기도 한다나. 한국사람들은 뻑하면 인터넷에 올려버린다는 말을 밥먹 듯하니 익히 짐작이 간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블로그엔 맛집이란 항목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럼 맛집에 뽑히지 않은 집은 맛이 없는 집이란 말인가? 그 맛집이란 말도 영 정감이 가지 않는다. 얼핏 보아 맛있는 집을 줄인 순우리말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귀에 와닿는 느낌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이십 수년 전부터 갑자기 많이 쓰기 시작한 "먹거리"란 말도 "먹을거리"가 본딧말이고 어감이 더 낫다. 먹거리 하면 어쩐지 품위 없이 들린다. 한편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란 뜻의 "길라잡이"도 언제부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길라잡이보다 "길잡이"가 듣기 좋은 듯한데 이 경우 굳이 네 글자의 길라잡이를 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게 속도전인 현대인의 언어습관 속에 한 글자 늘려 길라잡이를 고집하는지 참 희한하다. 개인의 특이한 언어 습관이라면 별 문제될 게 없다.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그렇게 쓸 때는 분명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예전에 욕으로 여겨지던 상스러운 표현 « 존나 »가 흔히 쓰는 말이 되고 그냥 들어서는 그 뜻을 짐작하기 힘든 약자가 난무하는 사회가 되었다. 뭐든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여 최최상급(초대박, 왕대박, 초일류…) 아니면 주의를 끌 수 없는 쪽으로 우리네 언어 습관이 흘러가고 있다. 말할 때는 고함치듯 소리 지르고 같은 말을 꼭 되풀이하는 게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그램에서 돋보이는 말버릇이다. 모든 언어 습관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라면 폭력적인 언어 구사다.

먹을 수 없는 상태여서 밥을 사주는 세욱형한테 미안했다. 이런저런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형이 혹 볼일이 있어 온 거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형은 내가 뭔가 일거리를 찾거나 알아보려 오지 않았나 짐작한 모양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볼일로 온 거냐고 묻는다. 하도 오랜만에 나타나니까 내 출현이 수상쩍었나 보다.

« 순전히 놀러 왔지. 주로 사람 만날 요량으로. »

식사는 뚝배기 누름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어주는 걸로 끝났다. 마지막에 가서야 숟갈질을 좀 할 수 있었다. 이게 요즘 한정식집의 피날레!?

식당을 나와 카페로 갔다. 마실 걸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직원이 건넨 동그란 재떨이처럼 생긴 기구를 탁자에 올려두었다. 형이 화장실을 가고 혼자 앉아 있는데 그 기구가 온몸으로 떨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시끄러워서 끄려고 해 보았다. 아무리 째려보아도 끄는 버튼이 보이지 않는다. 이리 만지고 저리 만져도 빨간불을 깜박이며 계속 울어댄다. 부르르르 따르르릉! 저게 과연 뭘까? 처음 보는 놈인데 뭐에 쓰는지 원! 고 참 이상한 놈이네!! 화장실 다녀온 형이 그놈을 들고 계산대로 간다. 그놈을 돌려주고 음료수를 가져온다. 그 전날에도 분당의 제과점에서 저 놈을 본 거 같은데 그때는 동행한 사람과 같이 있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 탁자에 놓인 그놈을 지키다 생떼 부리는 녀석을 발견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당에는 노인들이 많다. 은퇴한 노년층이 어디고 보인다. 전철에는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 식당에 가면 여성들이 압도적이다. 항덕 형과 양재역 지하상가의 유명하다는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가까이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손님들 가운데 젊은 층보다 중장년층이 더 많다. 게다가 거의 여자 손님! 그새 판도가 많이 바뀌었군! 평균수명이 늘고 일찍 은퇴해서일까?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면 전철에는 딱 두 부류밖에 없다. 젊은이들과 어르신들. 언제부턴가 노인네를 말할 때 어르신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지. 역시 공경하고는 거리가 먼 얄팍한 존칭법이다.

분당 누나네 집 가까이 있는 이발소에 갔다. 오며 가며 푸르고 희고 빨간 띠가 회오리로 돌아가는 간판을 여러 번 마주쳤다. 간판들이 워낙 수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지라 상가 건물에서 이발소를 찾는데 꾀 헤맸다. 면도를 하려고 들렀다가 내친김에 이발까지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가방을 싸면서 면도기만 챙기고 충전기를 빠뜨렸다. 세 주를 버텨줄까? 이삼일에 한 번씩 써야 하는데...
커다란 안락의자가 세 개 놓이고 이발사를 돕는 중년의 여종업원이 둘이다. 흰 수건이 널대에 잔뜩 늘려 있고 올드팝스가 흘러나오는 에프엠을 틀어놓았다. « 요즘은 이발소가 사양길에 접어들어서 찾아보기 힘들지요. 그나마 이 동네가 은퇴한 부유층 어르신들이 많아 유지가 돼요. 이발사 자격증은 주로 바리깡으로 드륵드륵 미는 미용사완 다르죠. »

다행 안마 서비스가 없다. 칼로 하는 면도라고 전기면도기보다 깨끗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실로 오랜만에 이런 면도를 받게 되었다. 고향 이발소 주인 어실댁 아들이 면도칼을 가죽에 갈아 면도하면서 내 얼굴에 핏자국을 얼마나 남겼던가! 피부 마사지도 해주었다. 물론 비용은 미용실의 몇 배다. 이발 기량이 뛰어나다고 주장한 것과는 딴판으로 모양은 영 아니었다. 가위질로 주로 자른다고 장땡이 아니다. 모양을 잘 내어야지!

« 담에 면도하러 또 올게요. »

면도 시간이 너무 걸리기도 하거니와 의외로 면도기 충전이 오래갔다.

한국 가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은 사우나다. 역시 찜질방의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동네 목욕탕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아야 했다. 찜질방이 맘에 들지 않아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목욕탕이 자취를 감추어서 동네 목욕탕의 사우나를 가지 못했다. 삼 주 동안 강화 엠티를 마치고 온천 간 게 전부다. 동네 목욕탕도 이발소처럼 이젠 추억의 장소가 돼버렸다.

한국 와서 한 가지 놀란 점은 말투 아니 정확히 말해 발성법이 달라진 거다. 귀에 거슬린다든지 속되다든지 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일어난 변화다. 이미 관광객들을 통해 느낀 바지만 현장에서는 바로 알아차렸다. 말을 맺을 때 한 박자를 더 길게 늘어뜨리는 현상이다. « 가세요. »가 아니다. « 가세요 오~ » 마지막 앞 음절을 높이면서 늘였다 내리면서 묘한 멜로디를 만들며 말을 맺는다. 특히 젊은 여자들의 말투가 그렇다.
말버릇 가운데 또 한 가지 눈에 띈 현상은 쓸데없는 존칭법이다. 상대편 사람에 대해 존대법을 쓰는 경우야 이상할 게 없다. 우스꽝스럽게도 사물을 언급할 때도 존칭법이 뒤섞여 나온다. 상대를 존대하려는 생각보다는 어투를 존칭으로 칠갑해서 공손한 어투를 만들겠다는 어쭙잖은 말버릇일 테다. 끝맺을 때만 존칭어미를 쓰면 될 것을 앞이고 중간이고 없이 존칭 어미를 갖다 붙여 말을 내뱉는다. 아이고 젊은 이고 중년이고 노년이고 구분도 없다. 어떤 표현이 뜨면 너 나 할 것 없이 품위 없는 줄도 모르고 곧잘 쓴다. 한국의 공해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말의 오염이 아닐까?

한국에서 칠 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몇 번 변한다! 더욱이 자연환경은 더더욱 그렇다. 산자락이 뚝 끊기어 큰 도로가 되고 산기슭이나 들판은 택지로 개발당했다. 야트막하던 구세대 아파트들은 하늘을 가리는 초고층 아파트로 새롭게 변신했다. 서울과 교외로 연결하는 전철 노선이 몇 개나 새로 생기고 연장되기도 했지만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보인다. 대학 시절 엠티 갈 때 이용하던 교외선은 사라지기도 했다. 현대 자동차의 로비인가. 엄청나게 넓은 순환도로와 강변도로가 새로 생기고 서울로 들어오는 고속도로는 계속 넓어지고 있다. 서울 외곽을 연결하던 교외선들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구실을 앞세워 특별 관광열차나 가끔 다니는 할 일 없는 추억 속의 철도가 되었다. 대신 승용차 전용도로가 시원스레 뚫렸지만 출퇴근 때면 여전히 교통량을 감당하기 벅차다. 이러다간 남아도는 땅이 있을까 걱정된다. 서울과 그 주변은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으면 도로가 들어선다.


시간의 흐름 앞에 변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터다. 조카들이 결혼해 그 자식들이 무섭게 커가고 부모 세대들은 거개가 후손들한테 자리를 물려주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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