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식을 마치고,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침묵으로 버틴 시간

by 딸들바라기

수료식이 끝난 교실은 유난히 조용했다.


나는 여섯 달 전,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이직했다.

학부모에서 초임교사가 되어 만 1세 반을 맡았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맡게 될 반의 담임교사가 두 번이나 바뀌었고, 내가 세 번째 담임교사였다는 것을.

학부모님들은 갑작스러운 담임교사 교체 사실을 인계인수 당일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계인수를 하러 갔던 날, 두 분의 어머님과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드렸지만 돌아온 것은 무표정한 시선이었다.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직감했다. 이 반은 아이들보다 먼저, 신뢰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의 생활 패턴은 잡혀 있지 않았다.

장난감을 모두 쏟아놓고 친구를 때리는 아이, 몇 숟가락 먹고 일어나 놀다가 다시 밥을 달라고 하는 아이, 교실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는 아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자주 우는 아이...

규칙을 세우기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애착이었다. 나는 훈육보다 관계를 먼저 선택했다.

퇴근 후에도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갈등 상황을 설명하고, 발달 과정을 나누고, 훈육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조금씩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달라졌다. 울던 아이가 손을 내밀었고, 밥을 거부하던 아이가 스스로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수료식 날이 왔다.

과자 파티를 하며 형님 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랑 계속 있으면 안 돼요?” 하고 물었다. 천진한 말에 울컥했지만, 이별을 잘 아는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돌봄은 붙잡는 일이 아니라, 보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수료식은 다른 의미로도 깊이 남았다.

아이들과 부모님들과의 관계는 단단해졌지만, 교사들과의 관계는 쉽지 않았다. 나는 만 1세 다섯 개 반 중 나이가 가장 많았지만 경력은 가장 짧은 초임교사였다. 배우는 자세로 수업준비과정을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말은 “이것도 모르세요?”라는 말투의 반응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질문을 멈추고, 혼자 찾아보고 눈치 보며 따라가게 되었다.

옆 반 교사는 수시로 우리 반 아이들을 지적했고, 내게 일방적으로 지시했다. 교사 회의 시간에는 일부러 나를 소외시키듯 사적인 모임 이야기를 자주 나누기도 했다. 순간순간 기분이 상했지만, 나는 그 감정을 오래 붙잡지 않으려 했다. 아이들 앞에서 흔들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장님이 물은 적이 있다.

“왜 그렇게 함부로 하는 말을 받아치지 않아요?”

나는 대답했다.

“감정이 앞서 말하면 얼굴 보기 어려워질 것 같아요. 제가 참으면 끝날 일이라 괜찮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용기이기도 했고, 동시에 침묵이기도 했다.


침묵이 평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옆반교사의 무례는 점점 더 노골적이 되었다. “모르면 바보 소리 들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웃으며 넘겼다.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하루를 정리했다.

자고 나면 별일 아니라 생각하며 다시 교실 문을 열었다.


결국 수료식을 마치고 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그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날까지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한 시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퇴근 후, 마음이 맞는 몇몇 선생님들과 만났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꺼내자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풀렸다. “잘 참았다”는 말도 들었고, “계속 참아서 더 무례해진 것 같다”는 조언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나는 나답게 마무리했다는 것을.

이번 수료식은 아이들을 보내는 날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돌봄은 아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교사 역시 존중받아야 하고, 관계 안에서 건강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교사다.

하지만 침묵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다음 교실에서는 조금 더 단단한 목소리로,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 앞에서는 따뜻한 사람으로 서고 싶다.

수료식이 끝난 교실은 조용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섯 달의 시간과, 아이들의 웃음, 그리고 내가 지켜낸 나의 태도가 남아 있다.


주말 동안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김상현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인생의 기본값은 고통이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생각해 보니, 고통이 있다는 건 내가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경험도 또 하나의 성장통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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