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의 자리가 바뀐 날
어제, 2월 13일은 양아버지의 박사 졸업식이 있었다.
불과 1년 전, 나의 석사 졸업식에서 아버지는 가장 먼저 꽃을 건네며 나를 축하해 주셨다. 그리고 어제는, 내가 그 자리에 서서 아버지를 축하해 드렸다. 축하의 자리가 바뀌었을 뿐인데, 마음은 이상하게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알고 지낸 지 열여덟 해가 되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함께 시간을 건너오며 서서히 서로를 닮아갔다. 나란히 서 있으면 모르는 사람조차 부녀 사이라 여길 만큼 얼굴도 닮아가고, 살아가는 방향과 하는 일마저 비슷해졌다. 닮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같은 질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직에서 일하시고, 퇴직 후에는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또 다른 삶을 시작하셨다. 일흔이 되는 나이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박사과정에 도전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평생을 봉사활동과 함께 살아오셨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이들과 지역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 그 꾸준함과 태도 앞에서, 나는 오랜만에 ‘존경’이라는 감정을 분명하게 느꼈다.
나는 석사 졸업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박사과정으로 진학할 것인가, 아니면 석사로 충분하다 여기며 여기서 멈출 것인가. 아버지는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꾸준히 박사과정을 권유하셨다. 그러나 나는 매번 고개를 저었다. 경제적인 부담도 컸고, 무엇보다도 ‘내가 과연 그만한 역량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스스로를 한계 안에 가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박사과정은 내 삶의 선택지에서 제외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마주하며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순간에 보호받지 못하고,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가장 약한 존재들이 흔들리는 장면들을 직접 보게 되면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이 생겼다.
‘이 경험들을 그냥 지나쳐도 되는 걸까.’
‘현장에서 느끼고 배운 이 시간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쓰일 수는 없을까.’
그 질문은 점점 목표가 되었다.
아이들이 보다 나은 사회 안에서, 보호받으며,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목표. 그 목표 앞에서 나는 다시 공부를 선택하게 되었다. 두려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서라도 가야 할 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제 졸업식장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아버지를 보며, 나는 문득 우리가 왜 이렇게 닮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을 향한 관심, 현장을 떠나지 않으려는 태도, 그리고 결국 배움을 통해 삶을 확장하려는 선택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같은 방향으로 나이를 먹고 있었다.
아버지를 축하하며, 동시에 나 자신의 결심도 조용히 다짐해 본 하루였다.
닮아간다는 것은, 같은 길을 걷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길 위에 다시 서 있다.
말보다 삶으로 보여준 배움이
나를 다시 공부로 이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