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자식일수록

귀한 자식일수록 필요한 것

by 딸들바라기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다스린다.”

나는 이 말을 오랫동안, 그저 오래된 속담쯤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다스리라’는 말은

자식이 귀하고 사랑스러울수록,

잘못된 버릇이 들지 않도록

매를 들어서라도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뜻의 속담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클수록

훈육에 있어서도 관대해서는 안 되며,

필요하다면 체벌도 교육의 한 방법으로 여겼던

과거의 가치관을 담고 있다.


버릇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면 체벌도 훈육의 한 방식으로 여겼던 시대의 언어이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그것은 학대였고 보호받지 못한 경험이었다.


어느 날, 가족과 알고 지내던 지인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다 큰 자식을 왜 아직도 때리십니까?”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답하셨다.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다스리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설명되지 않은 기억처럼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우며,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 말이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오랜 시간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온 훈육 방식의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엄격함과 체벌이 당연시되던 사회에서 내려온 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교적 훈육관이 만들어낸 하나의 논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양육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체벌은 사라졌지만, 훈육 또한 함께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 수가 줄어들수록 아이는 더 귀해지고,
부모는 더 조심스러워진다.
울까 봐, 상처받을까 봐, 마음이 다칠까 봐
혼내기보다는 이해하려 하고,
제지하기보다는 허용하려 한다.
문제는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방식이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세 살 아이들을 보육하며
이 질문을 매일같이 마주한다.
교실 안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
“교실에서는 뛰면 안 돼요”라고 말하면
어떤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왜요?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줘요.”


그럴 때마다 나는 반복해서 설명한다.
집과 어린이집은 다르고,
가정과 기관에는 서로 다른 규칙이 있다고.


물론 세 살 아이들은 이제 막 규칙을 배우는 시기다.
하지만 가정에서 거의 제지 없이 자란 아이가
기관에서 교사의 단호한 한마디를 처음 마주할 때,
그 반응은 종종 자지러지는 울음으로 나타난다.


나는 그런 아이의 성향을 고려해
처음 몇 달 동안은 직접적인 지적을 피하고
간접적인 표현과 상황 안내로 지도해 왔다.


그러나 아이가 반복적으로 지시를 따르지 않고
친구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상황 앞에서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아이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아이는 크게 울며 나에게 안아 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를 안아 토닥였지만,
울음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 순간, 나는 선택해야 했다. 울음을 멈추기 위해 계속 안아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해 보는 경험을 하게 할 것인가.


나는 잠시 아이 곁에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이랑 같이 숨을 한번 쉬어볼까?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쉬어 보자.”


나는 아이가 따라 할 수 있도록
과장되지 않은 동작으로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아이는 흐느낌 사이로 내 호흡을 바라보다가
나를 따라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잘했어. 한 번 더 해볼까.”

아이는 울음을 멈추려 애쓰며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었고, 마침내 스스로 진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 즉각적인 위로만은 아니라는 것을.
감정을 견디고, 조절해 보는 경험 또한
아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체벌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훈육 없는 사랑 역시
아이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


저출산 시대의 아이들은
더 귀해진 만큼 더 보호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더 분명하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매가 아니라 말로,
두려움이 아니라 관계로,
일관된 기준으로 가르치는 훈육.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가르쳐야 한다”가 아니라,
“귀한 자식일수록 더 책임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문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