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이었다. 동장군이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릴때가 되면 그의 무서운 칼날을 피해 사람들은 일찌감치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저녁 겨울은 유난히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그런 이유로 한겨울이 되면 얼어붙은 밖의 공기 때문인지 출동도 그 횟수가 조금은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날은 동장군의 철권 통치에 반발이라도 하듯 유난히도 출동이 많은 날이었다. 출동이란 존재는 긴급차가 달리는 시간을 주식으로한다. 그래서 구급차가 달리는 동안에는 우리의 식시시간은 언제나 그 다음차례다.
출동 벨이 울리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출동 차량으로 뛰어가는 일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한 이유가 특별히 내가 점심, 저녁 두 끼를 모두 먹지 못한 탓은 아니었다. 점심 시간을 놓치고 저녁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같이 출동을 했던 직원들과 설마 저녁까지 못먹게 되겠냐며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말이 씨가 되듯 저녁때를 놓치고 약 9시간을 넘게 굶게 되자 우리는 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저녁 8시쯤 환자를 병원에 인계하고 병원 밖을 나왔다. 병원 밖을 나온 우리는 우리 중 누구도 병원 근처에서라도 밥을 먹고 복귀하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자연스럽게 구급차로 돌아가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눈빛이 어느때보다도 진지했음을 서로의 필사적인 눈빛과 기운으로 알 수 있었다. 마치 추운 겨울날 산속에 먹을 것이 없어지자 사람들이 사는 마을까지 내려와 코를 바닥에 붙이고 콧김을 내뿜으며 킁킁대는 멧돼지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때의 우리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변두리 외곽에 위치한 병원 근처에는 불이켜져있는 곳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식당을 찾지 못한 우리는 패잔병과 같은 모습으로 말 없이 한 장소에 다시 모였다. 분명한 건 병원을 나서면 고속도로를 올려야 했고,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내리면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질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날이 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그런 날. 그 날은 불길한 예감(계속해서 밥을먹지 못할 예감)이 계속해서 적중했다. 그래서 식당을 찾지 못해 처량해진 얼굴로 모여있던 우리는 누구하나 밥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지만 없는 식당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누군가는 말을 꺼내야했다.
'근처에 뭐 없는데 그냥 가시죠.' 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말이다.
침묵이 조금 길어지려고 할 때 우리중 누군가 한 명이 말을 꺼냈다.
"저기 죽집있던데 거기라도 갈까요?"
죽이라는 것은 소화가 잘되지 않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식사가 아니던가?
죽집이란 단어를 듣기전에 우리의 식사는 최소 국밥이어야 했다. 우리 모두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찾고 있었다. 뭔가를 먹는 상상은 각자 달랐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는 국밥이었다. 하지만 '죽집'이라는 단어를 듣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죽을 한숟갈 떠서 입에 넣는 모습이 빠르게 머릿속 국밥의 이미지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얼른 먹으로 가자."
난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동료들의 동의와 의견을 구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때만큼은 평소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단번에 메뉴를 결정하고 죽집으로 향했다. 딱히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초저녁이긴 했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었고, 죽집 특성상 포장이나 배달 주문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가게에는 우리 셋과 사장님까지 해서 4명이 전부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얼어붙었던 몸이 아이의 입속에 들어가는 솜사탕처럼 녹는듯했다. 한 명은 의자에 앉자 마자 주문할 것을 정하고는 팔짱을낀 채 턱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또 다른 한 명은 메뉴를 고르고 있었고, 나는 내가 먹을 것을 정하고는 죽집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가게 였지만 아늑함이 느껴졌고, 그대로 잠들 수도 있을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이런 시간이 '망중한'이라고 하던가. '바쁜중간에서 쉬는 시간' 이런 시간이 주는 특별한 기분은 일을 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망중한의 시간에는 멍해지기도 하고 때론 잡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 날은 그 중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잡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날이었다. 우리가 입은 옷을 보고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죽집 사장님을 보면서 두세마디 인사말에서도 사장님의 다정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어서오세요, 아이고. 소방관님들이네요. 춥죠? 어서 앉으세요. 여태 식사 못하셨구나"
단 몇 마디 말이었다. 난 왜 이렇게 사장님이 다정하게 느껴지는 지에 대해서 저절로 생각이 흘러가는 것을 멈출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시작된 생각은 실수로 쏟은 물이 울퉁불퉁하게 경사진 내리막을 여러줄기로 나뉘어 내려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흩어져 흘러갔다. 그 물을 닦아내지 않는 이상 쏟아진 물이 다 소진되기전까지는 그 흐름을(생각이 뻗어나감)을 멈출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생각을 애써 막을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창 밖으로 보이는 낯선 장소의 겨울 야경을 보며 흐르고 있는 의식에 생각을 맡기기로 했다.
내가 지치고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을까? 아마 그것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배가고팠던 모든 날 내가 들어갔던 식당 가게의 사장님이 이렇게 다정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럼 다른 이유도 섞이지 않았을까? 두번째는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던 이유다. 우리 밖에 손님이 없었기때문에 모든 손님들에게 하는 인사치례의 말이 아니라, 오직 우리만을 위한 인사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흘러가니 그런 이유들로 내가 사장님의 짧은 말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일한 손님으로 식당안에서 밥을 먹은 경험은 많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이런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드물었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던건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그럼 뭘까. 그때였다.
"식사 나왔습니다."
사장님이 우리 테이블 옆에서 죽 3그릇을 들고 계셨다.
"아.. 감사합니다."
나는 사장님이 주시는 죽을 하나씩 받아서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어이고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이고' 또는 '아이고' 같은 추임새 때문이었을까?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고소한 냄새를 품고 눈앞에서 아른 거리자 안경이 하얗게 변했다. 안경과 같이 나의 생각도 하얘졌다. 먹을것 앞에서는 모든 생각이 일시 정지했다. 우리는 말없이 죽을 먹었고, 나는 죽 한 숟가락을 입에넣고, 창밖 풍경의 구석구석을 젓가락으로 집듯 나의 눈에 조금씩 담아서 음미했다. 낭만 가득한 반찬과 함께 죽을 빠르게 비우고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믹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가 목을 넘어가자 반사적으로 창 밖을 향해 나의 눈길은 돌아갔다. 따뜻한 액체와 겨울 풍경은 여름날의 소나기와 야경만큼이나 아름다운 조화이기 때문이다. 창밖에는 조금씩 사락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겨울 바람이 바쁘게 장소를 이리저리 옮기자 사락눈이 아스팔트위를 스치듯 날아다녔다. 이따금씩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전조등 앞에서는 비가 아닌 눈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조명에 몸을 맡기는 듯 했다. 낯선 곳에서 따뜻한 죽과 한겨울날의 바람에 흩날리는 사락눈이 만들어낸 풍경은 그 해의 겨울을 완성시켜 주었다.
"어이고 눈이 오네요. 밖에 많이 춥겠는데요. 정말 고생하십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정말로."
사장님은 이번에도 '아이고' 추임새를 넣으시면서 우리중 누구에게 거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정한 말씀을 하셨다.
사장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나는 나의 생각과 의문에 대한 정답을 찾아내며 기분좋게 가게를 나설 수 있었다.
사장님의 말에서 따뜻함을 느낀 것은 내가 피곤했던 것도,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던 것도 아닌 그 말을 했던 누군가의 '진심'때문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이의 진심이 아니었다면 모든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그 말은 흩어질 뿐일 거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