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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 Apr 22. 2024

음악과 기억의 양의 상관관계

 유튜브 뮤직 등 여러 플랫폼에서 다양한 음악을 듣다 보면 음악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하나의 노래에 대해서도 음악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댓글이 있는가 하면, 음악이 촉매가 되어 떠오른 기억이 묻어나는 댓글들도 많죠. 그중에서도 누군가는 힘들었던 기억을, 누군가는 아쉬움이 남는 연인을, 누군가는 감사한 사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같은 노래도 누군가에게는 이별 노래로 들리고, 누군가는 사랑 노래로 듣는 것처럼요(yours - 데이먼스 이어). 저는 예술에 대해서는 영 문외한이라 조심스레 들었던 바를 인용하자면, 이 작품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왜 보는, 아니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닐 텐데요. 아마 음악이 기억의 매개체로 기능해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음악은 가역적입니다. 음악을 들음으로써 그 음악을 듣던 과거의 나와 감정선들을 반추할 수 있고, 역으로 그 시절을 떠올리노라면 자연스럽게 자주 들었던 음악을 찾게 됩니다. 전 가장 힘들 때 김동률의 노래들을 자주 들었어요. '동행'을 들으며 지치는 내면을 위로했고, '시작'을 들으며 육신의 활력을 찾았습니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두 노래는 이따금씩 지치는 나에게 안식이 되어 주고, 노래를 듣다 보면 이미 힘든 시절을 이겨낸 나를 복기하게 되며 원동력을 회복합니다.


 아이러니하죠. 상술하였듯이, 힘들 때 음악을 찾게 됨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불쾌한 기억을 매개하는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설령 음악을 듣던 시절이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힘든 과거더라도,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음악을 들으면 괴로웠던 경험보다는 그 경험을 이겨낸 나를 떠올리게 돼요. 잘은 모르겠으나, 마치 음악이 기억으로 결부되는 과정에서 필터로 기능해 주는 것 같습니다.


 연도별로, 시기별로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기도 합니다. 2019년에 입대를 눈앞에 둔 휴학생의 기억에서는 태연의 '사계'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전역하여 본격적으로 사회에 1인분을 할 준비를 하는 복학생의 기억에서는 아이유의 '에필로그'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한참 운동에 집중할 시기에는 라붐의 '상상더하기' 같은 벅차오르는 노래들을 좋아했고, 가장 컨디션이 좋아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듯한 작년엔 아이브의 'I AM'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떠오르고 무엇을 떠올릴지는 머릿속에서 저절로 굴러가는 일련의 data driven일 뿐 제가 알고리즘을 하나하나 조절할 수는 없는 탓인지, 매개체를 잘못 사용할 때도 종종 있어요. 한 번은 티아라의 노래에 꽂혀 학부 시험공부를 하면서 음악을 하루 종일 들었었는데, 시험 때 문제를 보니 멜로디가 자꾸 머릿속에 울려 방해만 하더라고요. 그나마 'Day by Day' 같은 노래가 떠오르면 양반인데, 'Roly-Poly' 같은 노래가 떠오르면 참 어지러워요. 그 뒤로 공부할 때절대 노래를 듣지 않습니다.


 요즘은 너드커넥션의 '좋은 밤 좋은 꿈'을 가장 많이 듣고 있습니다. 유독 요즘 퇴근이 늦어지는데, 밤공기를 마시면서 들으니 칙칙한 대학원생의 하루 끝에 서정 한 스푼 가미하는 기분이에요. 이 노래도 나중에 다시 듣늗다면 지금의 기억을 회상시켜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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