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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 May 23. 2024

대학원생의 스톡홀름증후군

 3월에 석사 1학차로 입학한 이래로 장학재단 문제 때문에 아직까지 저와 몇몇 동기들은 인건비를 한 번도 못 받았는데요, 참 통탄스럽지만 그러려니 합니다. 아쉽지만 제가 뭘 조치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늦게 주면 주는 대로 받아야죠... 


 주변에서 인건비에 대해 하도 말이 많아, 나름 생각하다 보니 랩 생활과 적성 비스무레한 것에 대해 또한 사유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누에고치처럼 인내의 과정일 뿐인 대학원생한테 적성이란 표현 자체도 조금 웃긴데요, 학부 때부터 고작 1년 남짓 한 소소한 연구실 경험이지만 새파란 1학년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글을 적습니다. 무엇보다 밖에서 말하고 다니기엔 부끄럽기도 하고요.


 1. 원하는 공부를 하는데 인건비를 준다

 학부 때 가장 진절머리 났던 것은 바로 교양수업이었습니다. 몇 백은 되는 등록금을 꼬박 내며 다니는데 왜 재미도 없고 원치 않는 교양을 들어야만 졸업이 가능한 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교양 공부는 손을 놓다시피 했습니다. 교양 졸업요건을 6학점 남기고 A+을 처음으로 맞아봤으니 오죽할까요. 그 전 교양들은 전부 B+로 도배되어 있었고 교양이 갉아먹은 낮은 학점은 전공학점으로 겨우 메꿨죠. 하기 싫다는 이유로 쉬운 교양을 내팽개치다 보니 참 효율 떨어지게도 공부를 한 셈인데, 아주 멍청하지 않나요? 

 지금은 하고 싶은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며 레퍼런스를 찾고 있는데 그 과정이 너무 재밌습니다. 심지어 새로운 게 계속 나오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옆에 붙어 있어요. 학부 때는 하기 싫은 공부를 돈을 내며 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데도 돈을 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아직은 못 받았지만). 너무 행복해요.


 2. 돈 쓰는 취미가 없다

 돈도 써 본 사람이 잘 쓴다는 것과 같은 맥락인지, 운이 좋게도 적잖은 돈이 드는 무언가에 취미를 붙여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월 200을 받든 450을 받든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요. 또한 남의 벌이와 씀씀이에 배 아파하는 정도도 살짝 덜한 것 같아요. 사람이니 당연히 부러움과 질투가 있지만은, 잠식되지 않는 정도라고 할까요. 둔감하고 별 생각이 없는 성격이 이럴 땐 그나마 다행이라 느낍니다.


 3.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솔직히 좋은 건 아닌데요.... 아무래도 공부할 때 습관이 잘못 든 거 같습니다. 원체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늘 스스로를 하지 않으면 안 될 환경에 박아 넣어 왔는데, 그런 의미에서 연구실은 참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결과로만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짧지 않은 장기적인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강한 동기로 작용해 주거든요. 만약 취업을 했다면, 분명 퇴근 게임하거나 등등 놀기 바쁠 겁니다. 저는 같은 놈을 알아요. 


 몇 년 후에 이 글을 다시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요? 고된 생활에 염증을 느껴 2024년의 이 생각들이 부끄러워질까요, 아니면 변함없을까요? 아직 스스로의 한계를 맛보지 못해 낙관적으로만 전망하고 있다는 게 글에서도 느껴지는데, 어떻게 생각이 변할지 참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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