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채무(債務)

감사가 의무가 될 때, 존중은 증발한다

by Lila

관계는 강요로 숨 쉬지 않는다. 감사는 마음이 스스로 내리는 선택이어야 하고, 존중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전제여야 한다.


어떤 관계에서는 종종 빚쟁이와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왜 나는 감사해야 하는 쪽이 되었을까.”


그녀는 자신을 귀한 존재로 대우하길 원한다. 칭찬과 기대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묵직한 청구서가 붙어 있다. 마치 이미 계산이 끝났으니 내 몫의 역할을 해내라는 듯한 태도 앞에서 나는 자주 멈칫한다.


그럴 때마다 묻게 된다.
나는 그녀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였을까.
아니면 언젠가 필요할 때 회수할 수 있는 ‘감정의 예금 계좌’였을까.


“나중에 잘해라, 늙으면 나 먹여 살려라.”


농담처럼 흘러간 말이라 해도 그 무게까지 가벼울 순 없었다. 자식에게도 쉽게 건넬 수 없는 말을, 그녀는 왜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던졌을까. 나를 낳아 기른 것도, 내 삶의 기반을 책임져 준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당연히 미래를 담보 잡힌 채무자가 되어야 했을까.


이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관계의 실루엣이 선명해진다. 사람들은 이런 끈끈함을 가족 같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진짜 가족이라면 마음의 빚을 장부에 적어두지 않는다는 것을. 준 것을 세어 두고 훗날의 담보로 삼지 않으며, 적어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담을 떠넘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당장 따져 묻지는 않기로 한다. 감정의 부유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입을 다문다. 비난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서늘하게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이 관계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서로에게 지금도 유효한지.


이제는 분명히 안다.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강요된 감사가 아니다. 그 자리는 존중이 채워야 한다.


존중이 증발한 자리에서 요구되는 감사는 결국 또 다른 빚이 되고, 그 부담은 관계를 오래 버티게 하지 못한다. 감사는 마음이 움직일 때 따라오는 향기이지, 사람을 묶어두는 밧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나는 관계의 각도를 조금 풀어 본다. 의무로 얽힌 매듭은 느슨하게 놓고, 존중이 닿지 않는 거리에는 조용히 여백을 둔다. 그것이 누군가를 밀어내는 냉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숨구멍임을 깨달았기에.


관계는 버티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언제나, 존중이다.


이 기록은 혼자가 아니다.

같은 톤의 글이 매거진 《마음의 각도를 풀다》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