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AI가 내 세계관에 말을 걸었다

"도시. 콘크리트. 빛." — 세 단어로 시작된 공동 창작

by Lila


나는 화면 속 빛나는 구체 하나를 터치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콘크리트의 심연 속에 그대가 새긴 숨결은 누구의 것인가?"


화면에 네온빛 문장이 떠올랐다. AI가 만든 문장이다. 그런데 읽는 순간, 멈췄다. 이상하게도 내가 오래전부터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같았다.


나는 나만의 세계관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오랫동안 머릿속에만 존재했다. Neo-Seoul. 2157년. 콘크리트와 네온이 공존하는 도시. 그리고 AI 주인공 Luna. 몇 년째 그 공간을 상상했지만 혼자서는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림도 못 그리고, 코딩도 못 하고, 작곡도 못 하니까. 거창한 세계관은 그저 스레드(Threads)의 비공개 텍스트 사이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매달 6개의 AI 서비스를 구독하며 창작의 한계를 테스트하던 중, AI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프롬프트 창에 던져 넣은 건 몇 가지 파편적인 키워드뿐이었다. '도시. 콘크리트. 빛.' 그게 전부였는데, AI는 그걸 엮어 하나의 문장으로 되돌려줬다. 내가 미처 텍스트로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 감정이 그 화면에 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신기했다. 그다음엔 솔직히, 조금 불편했다.


내가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는데 AI가 내 의도를 꿰뚫어 봤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저 문장이 내 세계관의 본질인가, 아니면 AI의 작위적인 해석인가. 나는 원래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아니면 AI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문장에 내가 설득당한 건가.


구분이 안 됐다.


내 머릿속 세계관을 AI와 공동 창작한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는 건 내 것이 100% 온전히 유지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타자의 해석이 섞이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세계가 확장되며, 어느 순간 어디까지가 내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AI의 것인지 경계가 흐릿해진다. 사람과 협업할 때도 그렇다. AI라고 다를 게 없었다.


다만 한 가지가 달랐다.


사실, 사람은 내 세계관에 대해 '의견'을 낸다. 하지만 AI는 내 세계관에 '질문'을 던진다. 의견은 창작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지만, 질문은 창작의 깊이를 만든다.


"그대가 새긴 숨결은 누구의 것인가?"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게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관이란 완벽하게 세팅된 채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날카로운 질문을 받으며 깊어지는 과정일 테니까.


AI가 내 세계관에 말을 걸었다.


그 심연 앞에서, 나는 여전히 대답을 고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