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돌리다 한 장면에 멈췄다.
농부들의 얼굴이 굳어 있다.
망가진 밭을 보여주고, 강가에 설치한 덫을 확인한다.
덫 안에는 사람만 한 뉴트리아가 들어 있다.
트럭으로 옮겨 싣는다.
이미 트럭에는 잡힌 뉴트리아들이 가득하다.
뉴트리아 때문에 농작물 피해가 심각하다는 말,
피해 농가를 돕기 위한 대책을 논의 중이라는 인터뷰가 이어진다.
어둠이 내릴 때까지 밭을 고치고, 또 덫을 확인한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고생이 참 많다.
처음 뉴트리아를 들여온 사람들을
괜히 원망하는 마음까지 든다.
해가 지고, 화면이 바뀐다.
농부들이 마당에 모여
솥을 마당 한가운데 걸고 불을 지핀다.
뉴트리아 수육이 익고,
소주잔이 오간다.
분위기는 의외로 떠들썩하다.
누군가 시원하게 웃으며 말한다.
“먹어서 없애자!!!”
순간 웃음이 터진다.
놀라움이라기보다 감탄에 가깝다.
낮에는 재앙이던 것이
저녁에는 안주가 된다.
밭을 헤집어 놓던 놈이
식탁 한가운데 올라와 있다.
비극을 식탁 위에 올려
요리로 만들어버리는 태도.
‘먹어서 없애자’는 말은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는 분노가 아니라,
끝내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인생도 가끔
예고 없이 거대한 뉴트리아를 던져준다.
애써 일군 마음의 밭을
엉망으로 헤집어 놓는 골칫덩이들.
그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밭 옆에 주저앉아 망연해질 것인가,
아니면 솥을 걸고 불을 지필 것인가.
나를 괴롭힌 시련조차
내 삶의 자양분으로 삼아버리겠다는
가장 투박하고, 가장 유쾌한 방식의 복수.
“먹어서 없애자.”
내 마음 밭을 헤집어 놓은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이제 주저앉는 대신 슬슬 불을 지핀다.
자, 오늘은 무엇을 먹어서 없애버릴까.